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1 - 부자들이 들려주는 '돈'과 '투자'의 비밀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로버트 기요사키, 샤론 레흐트 지음 | 형선호 옮김 / 민음인 / 200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부자 아빠를 두었다.

내가 어린 시절 일요일 아침이면 “짝”이라는 드라마가 했었다. 주 배경은 스튜어디스의 생활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이였다. 그 드라마의 인기를 타고 주인공이었던 김혜수의 주가가 올랐다. 그리고 배경이 되었던 스튜어디스들의 인기도 최고를 달했다. 그 후로도 종종 스튜어디스라는 직업은 드라마의 배경이 되곤했고, 스튜어디스라는 직업은 소녀들이 한 번씩은 꿈꾸는 직업계의 로망이 되었다. 그 시절, 나도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아빠, 나도 스튜어디스가 되고 싶어요.”

파일럿이라는 드라마가 유행했던 적도 있었다. 그땐 오빠가 그런 얘길 했었다. “아빠, 전 파일럿이 되고 싶어요!”

그때마다 아빠가 우리에게 한 이야기는 같았다. “비행기를 조종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비행기를 가진 사람이 되거라.” “비행기 안에서 서빙하는것과, 음식점에서 서빙하는게 뭐가 다르냐, 비행기 안에서 서빙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비행기를 가진 사람이 되거라.”

그 후로도 어떤 직업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땐, 항상 그의 우두머리가 되라고 하셨다. 이 정도면 책속에 등장하는 작가의 부자 아빠와 비슷한 면모가 있지 않았나 싶다. 물론, 아빠가 공부를 잘하란 이야기를 하지 않은 건 아니다. 늘 공부를 잘하라고는 하셨다. 최고의 부자가 된 빌 게이츠는 결론적으로는 대학 중퇴이긴 하지만, 공부를 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는 비상한 머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학문적인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끊임없이 공부를 했다며, 공부도 잘해야 한다고 하셨다. 오히려 책속에 등장하는 두 아빠를 적당히 섞어 놓은 듯 우리를 길렀다.

오히려 작가가 제시한 두 종류의 아버지를 적절히 섞어 놓은 우리아빠 밑에서 자란 나는, 작가보다 더 부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자기 사업을 할 것.

작년에 인터넷서점에서 공짜로 얻게 된 “35세 독립 - 가와사키 히로시”이라는 책을 읽었다. 책의 내용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핵심은 단 하나. 35세가 되기전에 자기 사업을 시작하라! 였다. 마흔이 넘어가면 실패하게 될까봐 두려워하게 되고, 책임 져야할 가족들도 늘어나고, 아이는 커가기 때문에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창업을 해서 실패하게 되더라도 젊음이라는 무기로 다시 일어서라.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빠로부터 계속해서 들어왔던 이야기였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이야기이다. 전공은 중국어이면서도 경영학을 복수전공 하게 된 계기도 나의 사업을 위해서였다. 게다가 작가도 이렇게 강하게 스스로의 사업을 하길 주장하니 진짜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꼭 내 사업을 하고 말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당장 내 눈앞에는 취업이라는 녀석이 발목을 잡고 있지만, 취업이라는 과정도 내 사업을 하기 위해 기본적인 자금을 마련하고,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고, 실질적인 실무의 과정을 배우면서 나 자신의 경력을 키워나가는 일도 중요하다. 물론, 취업을 위해선 이 회사에 뼈를 묻을 것입니다. 라고 말하겠지만...




자산과 부채를 알 것.

집이 부채라는 이야기는 꽤 충격이었지만, 굉장히 설득력 있는 이야기였고, 다시 한 번 아빠를 존경하게 만드는 구절이었다. 나의 23년 인생에서, 이사에 대한 기억은 겨우 두 번이다. 초등학교 2학년때와 작년 겨울. 아주 어릴 때 우리 집은 찢어지게 가난했고, 우리 네 식구가 방에 누으면 겨우 하나 있는 방은 가득 찼었다. 그러다 열심히 일한 아버지, 어머니 덕에 대출없이 초등학교 2학년때 스물 두 평의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그땐 집이 광장같이 넓어보였고, 오빠와 나는 그곳에서 10년 넘는 세월동안 자랐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즈음에 우리의 키와 덩치는 커졌고, 집은 좁았다. 내 방엔 책상 하나 놓으면 다리 펼 공간도 나오지 않아 늘 거실에서 잠을 잤다. 이사를 가자고 조르고 졸랐지만, 부모님은 꿈쩍도 하지 않으셨다. 그러다 작년에 전에 살던 집보다 두배 이상 큰 집으로 이사를 했다. 역시 대출은 받지 않으셨다.

이상하게도 한국 사람들은 집에 집착을 한다. 멋대가리도 없는 아파트에서 말이다. 전세에 살면 부끄러워하고, 집을 샀다고 하면 인생에서 넘어야 할 산을 넘어버린 듯 생각한다. 물론, 나도 그런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출받아서 큰 집을 산들, 그것은 부채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가난한 아빠가 되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게다가, 건물도 자동차도 언제나 감가상각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자산이 아니라 부채라는 사실이다.

요즘은 체크카드 사용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지만, 여전히 신용카드 사용에서 발생하는 부채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3개월 무이자, 6개월 무이자는 결국 내 돈이 아닌가? 언젠가는 갚아야 할 돈인데 굳이 빚내어서 살 필요는 무엇이 있을까?! 애시당초 나는 그런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지만은, 앞으로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부자가 되려거든, 아니, 부자가 아니라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거든 절대 부채를 만들지 마라.




어떻게 살 것인가?!

아빠는 이제 제법 잘 살게 되었다. 엄마와 함께 혹은 친구와 함께 자주 골프를 치러 다니기도 하고, 외제차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좋다고 하는 까만색 차를 몰고 다닌다. 하지만, 아빠의 스타일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늘 일을 하는 사람이다. 여전히 아침, 저녁으로 바쁘고 아빠의 손을 거치지 않으면 일이 안된 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반면, 아빠의 친구분인 A사장님은 김해에서 꽤 큰 가구점을 하고 있다. 그 분은 가구점 말단 직원에서부터 시작해서 약 2000여평 규모를 가진 가구점을 가지고 있다. 그 분은 1년에 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낸다. 언제나 골프여행이었다. 어떻게 하여 그럴 수 있나 봤더니, 원래는 1층은 모두 세를 주고, 2층에서는 자신도 사무용 가구들을 판매했는데, 수익이 썩 좋지 않아서 2층까지도 모두 임대를 해주고, 자신은 임대료만을 받는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보니 그 안에 입주되어 있는 개별 가구점은 20여개도 넘어보였다. 한 점포당 임대료를 작게 잡아봐도 한 달 수입이 만만치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사장님이 하는 일이라곤 신문지상에 광고를 하는 일밖에 없었다. 아니, ‘광고를 하라’라는 지시만을 할 뿐이었다.

또, 아빠의 고향 친구인 B사장님은, 젊은 시절에는 우리 아빠처럼 밤낮 없이 일을 하셨다. 하지만, 어느 정도 자산을 모은 뒤로는 땅으로 더욱 큰 부자가 되셨다. 이 분도 언제나 해외에 계셨고, 땅값은 자신이 특별히 일을 하지 않아도 올랐다. 그리고 어찌나 정보력이 좋으신지 노른자위 땅만을 헐값에 사들여 되팔곤 했다.

자, 우리 아빠도, 그리고 A사장님도, B사장님도 모두 남부끄럽지 않게 잘 살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 아빠처럼 밤낮 없이 일하고 또 일하고 일할 것인지, 아니면 A사장님처럼 혹은 B사장님처럼 여유롭게 생활하면서도 쉽게 돈을 벌 것인지 조금 더 고민해봐야겠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돈만 벌면 되는 거라면, 솔직하게 쉽게 벌어서 마음껏 쓰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번 돈이 정말로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까? 성취감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은 든다. 물론 경제학적으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가장 돈이 많은 사람이겠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

욕심일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돈은 쉽게 벌어 마음껏 쓰면서 누구보다도 따뜻한 마음으로, 베풀줄 알고, 내 삶도 조금 더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부자아빠에 대해 완벽한 이해를 하며 실천할 수 있고, 또  아이들에게는 자상하고, 내겐 다정다감한, 멋진 남자와 함께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부자인 엄마가 되어 행복한 삶을 꾸려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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