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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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아침 출근길, 여느 때처럼 지하철은 칙칙폭폭 지루하게 선로를 달리고 있다. 뒤로가지도, 하늘을 날지도 않는다. 네모난 상자에 빽빽이 들어찬 귤처럼 혹은 나무 궤짝에 겹겹이 줄 맞춰 누운 죽은 갈치처럼 실려 나는 영혼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운 좋게 좌석을 차지하고 앉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이 칸의 승객들 대부분은 인간의 존엄권 수호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조차 확보하지 못한채 그저 견디고 있을 뿐이다. 떠밀리거나 넘어지지 않기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 말고, 지금 여기서.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때론 갈팡질팡하는 내 삶에 내비게이션이라도 달렸으면 싶다. "백미터 앞 급커브구간입니다. 주의운행하세요." 인공위성으로 자동차 위치를 내려다보며 도로 사정을 일러주는 내비게이션 시스템처럼. 내가 가야할 길이 좌회전인지 우회전인지 누군가 대신 정해서 딱딱 가르쳐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느낌표 두개가 안쓰럽게 꼿꼿했다.

*스무살. 그런 나이가 나를 지나갔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목구멍이 괜히 칼칼해진다.

*사람은 왜 선을 넘는가. 끊임없이 선을 의식하고 살기 떄문이다. 선을 밟으면 안 된다는 억압에 짓눌려 있기 떄문이다. 선을 밟으면 안 된다는 억압에 짓눌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사소한 충동이 고장난 신호등처럼 깜빡인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대형 연쇄 폭발이 일어난다.

*그러나 역사에는 가정법이 통용되지 않는다. 미묘하게 어긋났다가 다시 '친구'로 정착하는 것이 나와 유준 사이의 운명인가 보았다. 한때 조금 어색해진적도 있었지만 우리의 우정은 금세 회복되었다. 한번 삐그덕하면 결코 예전으로 돌이킬 수 없는 남녀관계에 비해, 우정이라는 이름의 관계는 얼마나 유연한가. 

 


결코 달콤하지만은 않은 도시라는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는 서른 두살의 오은수 이야기다. 드라마 결혼 하고 싶은 여자, 내 이름은 김삼순, 시트콤 올드 미스 다이어리, 영화 싱글즈 그리고 섹스 앤 더 시티를 재미있게 봤다면, 이 책을 절.대. 강추한다!

 

물론, 조금은 진부할 수도 있다. 위에 나열된 각종 드라마나 소설속에 등장해온 노처녀들의 이야기다보니, 그게 그거라는 생각이 아주 잠깐 스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주제가 각종 예술 장르의 변치 않는 주제가 되듯이 서른이 조금 넘은(물론 소설속에선 그렇지만 현실에선 20대 중반의 미혼인) 아가씨들의 이야기는 피부에 살갑게 다가올만치 현실적인 이야기가 된다. 주인공 은수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이제 곧 20대의 중반으로 들어갈 나는, 소설속 대부분의 이야기들을 절대적으로 공감하고, 이해하고 주인공과의 동질감을 느껴버린다. 등장하는 배경장소도 스타벅스거나, 맥도날드거나, 무슨무슨 스시집이거나, 친구와의 대화는 메신저로 이루어지거나.... 아무튼 현실세계에서 우리의 발걸음이 흔히 닫는 장소 속으로 주인공들은 이동한다. 그런 이동들을 머릿속에서 생각하면서, 나는 재미있는 시트콤이나 드라마속으로 빠져들어간 듯한 느낌을 받게된다.

 

여자들에 대한 복잡한 심리묘사도 너무 좋고, 205호에 사는 오은수라는 여자가 느낀 305호 여자, 206호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정말이지 남일같지 않게 다가왔다. 부모님들의 이야기라거나, 김영수의 이야기들 그리고, 재인과 유희의 작은 에피소드들까지도 너무너무 현실적이다. 나도 늘 그렇다고 여기던 것을 너무 예쁜 말들로 포장을 잘 해주었다. 또, 소설 중간 중간에 나타나주신 새로운 한글에 대한 생각도 하게해주었다. 꼭 상상플러스에 나올 듯한 언어들을 참 많이도 발견했다. 알것 같긴 한데, 모르는 단어들을 마주하면서 한글 공부 멀었구나...하는 생각도 하게되었다.

 

아무튼, 간만에 참 재미나고, 생각도 많이 하게된, 게다가 국어공부까지 하게 된 아주 멋진 소설 한 권 읽었구나 싶다.

 

상큼 발랄한 30대 초반의 여성 작가가 자기 이야기를 일기쓰듯 쓴 소설을 보면서 너무도 공감을 많이 한 독자의 서평은 여기까지....

좋았던 기분과 감정들은 여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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