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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내가 있었네 (양장) - 故 김영갑 선생 2주기 추모 특별 애장판
김영갑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인상깊은 구절
*눈에 보이는 고개만 넘으면 끝인줄 알았다. 하나를 넘으면 더 높은 고개가 나타났다 산을 넘으면 또 산이다. 나아갈수록 바람은 세고, 숨이 가쁘지만 멈출수도 하산 할 수도 없다.
마음이 무겁다. 필름도 인화지도 끝이 났다. 쌀도 바닥났다. 돈을 구하려도 백방으로 연락을 해본다. 형제들에게 도움을 청해볼까? 그들이 무슨 잘못이 있어서 늘 나로인해 괴로움을 당해야 하는가. 답답하다. 한바탕 크게 웃어본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벼랑은 아직 멀었다고 스스로 위로한다.
*폭풍이 치는 그믐 밤, 망망대해에 나홀로 내던져진 느낌이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온통 어둠뿐, 별빛이라도 보인다면 직감으로나마 방향을 잡으련만 칠흑같은 어둠이다. 보이지도 않는 길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며 기력을 소모할 것이 아니라 날이 밝기를 기다리자. 대책이 없을 때는 무대책이 최선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내가 생각했던 삶이 아니다. 나에게 허락된 하루를 절망속에서 허무하게 떠나볼 수는 없다. 쓰러지는 그날까지 하루를 희망으로 채워가자. 내일이 불안하다고 오늘마저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긴장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 하루하루를 희망과 설렘으로 살아가자. 또 다시 오늘이 시작되면 새로운 하루에 몰입하는 것이다.
내가 이런 평가를 할 만한 독자 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 책이 좋다. 아무리 다듬어도 거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글쟁이'가 아닌 '보통 사람'의 거친 글쓰기가 좋다. 거친 글솜씨에 한번 반했고, 책에 실려있는 수 많은 사진에 두 번 반하고, 글 솜씨보다 더욱 거친 그의 인생에 세번 반했다. 물론, 최후엔, 그가 루게릭 병에 걸리게 되어 눈물 펑펑 쏟으며 읽었지만, 그의 삶은 멋지다. 나는 절대 그처럼 살 수 없지만, 그저 책을 읽으며 대리 만족하며 살지만, 멋진 인생을 살았다. 비록 가난했으나, 그의 글에서는 그가 행복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쌀을 살 돈이 없어, 반찬 살 돈이 없어 구걸해 겨우 끼니를 때우며 살았지만, 자신이 가장 하고 싶던 일을 했기에, 그는 행복했다. 사진을 찍을때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행복했다. 직접적으로 행복하다 말하지 않아도, 그가 행복했었음이 느껴진다.
혼자 눈물을 쏟으면서 읽는 내가 부끄러워졌다. 그는 자신의 루게릭 병에 대해서도 너무 덤덤하게 써내려가고 있었다. 그의 아픈 몸을 이끌고서 갤러리를 완성해내는 그의 모습에 눈물 흘리는 내가 부끄러울 정도다.
그는 지난해 5월에 결국 세상을 등졌지만, 사진에 대한 편집증적인 애착은 그를 성공한 사진 작가의 반열에 올려두었다. 유명해져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언론이나 각종 매체를 통해 '그'가 알려지면서 그의 작품들이 창고에서 습기가 차 불태워버려지지 않고, 전시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으니, 그가 원한 대로 된 것이 아닐까. 어쩐지, 그는 이제 하늘에서 또, 천국의 모습을 열심히 찍고 있을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