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탐 - 길 내는 여자 서명숙 먹으멍 세상을 떠돌다
서명숙 지음 / 시사IN북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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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얼마나 사소한 것에 마음을 붙이고, 작은 근거에 희망을 품고 사는 존재인가. 라면 한 봉지가 살을 에는 듯한 교도소의 스산한 초겨울과 무료한 나날을 견디게 해주었다. -54쪽

"전 소바가 싫어요!"
그날 우리는 여자 편집장의 난동에 놀란 대표가 중재안으로 제안한 한정식집에서 2만 원짜리 정식을 먹었다. 보신탕의 두 배, 모리소바의 네 배나 되는 비싼 한정식이었지만 모래알을 씹는 기분이었다. 좌중의 누구도 아까 벌어진 일을 입에 올리지 않은 채 겉도는 이야기만 나눈 '내 인생 최악의 오찬'이었다. 그 뒤 후배들은 걸핏하면 날 놀려댔다.
"이승복의 '공산당이 싫어요'이후 최고의 명대사였어요."
"그럼, 광복절에 일본 모리소바는 좀 그렇지."
"보신탕 하나 때문에 윗사람 앞에서 난동 부린 사람은 드물 걸. 그것도 여자가."-88쪽

다른 맛이어서 싫다니? 다른 맛을 맛보려고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게 아니었나? 난, 다른 맛에 강렬한 호기심을 느낀다. 왜? 다르니까.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으니까. 먼 곳에 왔음을 실감하게 되니까.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명품 백이나 비싼 화장품은 안 사도 가끔 외국 향신료나 소스는 사들고 온다. 가끔 병을 열어 그 냄새를 맡다 보면 그 나라, 그 땅에서의 기억이 절로 떠오른다. -147쪽

파리 시내에서도 손꼽히는 초일류 레스토랑의 요리사였지만, 프랑스 혁명 와중에 가족을 다 잃고 이국의 땅끝 마을에 흘러들어온 바베트. 그녀는 이날 단 한끼의 만찬을 위해 복권 당첨금 1만 프랑을 몽땅 쏟아부은 것이다. 금욕적인 사고방식 때문에 지옥불에 떨어질 것을 염려했던 자매 중 한 여자가 마침내 인정하고야 만다.
"당신의 예술은 하늘의 천사를 기쁘게 할 거예요."
그렇다. 음식은 만드는 이에게는 예술이요, 먹는 이에게는 지상에서 누리는 천상의 기쁨이다. <영화 바베트의 만찬>-264-2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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