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얄의 추천 4 - Seed Novel
오트슨 지음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전에 모 뻘글에서도 썼었지만 얘네들 다 귀신크리. 특히 미얄은 완전 그거라 놀랄 정도.
   대대적인 감상을 준비하느라 3권까지 재독하며 미얄의 정체는 아마 독서감상부 ■■■■ ■■이 아닐까 생각했지만.....야 임마 이렇게까지 딱 맞아떨어지면 당혹스럽다고. 이제껏 미스터리 읽어오면서 그 흔한 범인(?) 한번 맞춰본 적 없는 나놈이 왠일로. 아, 두세번 한번 맞춘 적 있구나. 근데 그게 온다 리쿠 책이란 게 문제지(........................).

   뭐 이렇게 츤츤대며 시작했지만, 재밌게 읽었어요.
   컬러페이지에 곧잘 있던 본문 발췌문 인쇄가 전혀 없는건 의도된 건가요? 아님 인쇄 미스인가요. 덕분에 활자에 침범당하지 않은 일러를 감상할 수 있는 건 좋았지만.
  
   [미얄의 추천]을 미스터리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치명적인 게, 갑툭튀가 너무 많다는 거다. 랄까 이야기의 구조가 갑툭튀에 의존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번 4권에선 ■■인 줄 알았던 놈의 정체 같은 것이 아무런 복선 없이 "훼이크다 이 병신들아!!" 하고 튀어나와 버린다. 야 이자식아 네놈이 그놈인지 어떻게 아냐 그놈에 대해선 이제껏 일언반구도 없었는데, 라고 독자가 대들면 그걸로 끝이다. 논리성을 중요시하는 독자는 그런 점에서 지대한 불만과 일말의 모욕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위기나 정서의 효과를 중시하는 감각적인 독자에게 미얄처럼 매력적인 이야기는 드물다. 논리성을 중시하기 위해 설치해야 하는 여러가지 작위들이 제거되었는데,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이야말로 "미스터리 같은 분위기" "기이함" "의외성" "놀라움" 같은 느낌들이 잘 유발되는 게 신기하다.
   하긴 미스터리 소설에서 느끼는 그 소름끼치고 뇌가 간지러운 '분위기'는 논리성과는 그다지 상관이 없다. 오히려 그런 느낌들을 연출하기 위해서는 비논리적인 '감각'이 중요하다. 이야기를 마무리짓는 단계가 되면 관건이 되는 것은 '정합성'이 아닐까. 어째서 이러한 이야기가 나와야 했는가, 이런 식의 '진실'이 있어야 했는가의 필요성이 준비되어 있고, 그것이 작품의 세계를 해치지 않는다면 그걸로 됐다.
   이것은 미스터리의 전 단계, 모 뻘글에서도 썼듯이 고딕 로맨스에서의 내적인 논리와 무척 닮았다고 생각한다. 거슬러 올라가자면 민화, 설화다. 고딕 소설에서의 "유령"은 비합리적인 존재이고 그들의 출몰도 논리성과 거리가 멀다. 그들은 초자연적인 존재인 한편, 소설 속에 숨겨진 '무언가(시대상부터 인물의 심층심리, 끝까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진실에 이르기까지)'를 반영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민화나 설화에서 보이는 신화적인 인물이나 몬스터도 반쯤 초자연적이며, 반쯤은 숨은 무언가를 강하게 상징하면서, 합리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독자적인 원리(신성 혹은 마성, 계시, 운명이나 저주 따위일지도)에 의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미얄의 추천]의 이야기는 이 가려진 원리, 말하자면 "운명" 에 의해 좌우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미얄의 플롯은ㅡ플롯이라고 부르기 뭐한 느낌이 있다. 가려진 이야기의 전체상은 이미 설정되어 있지만(이것을 운명이라고 부르자), 그것에 대한 힌트(복선)은 없거나 당췌 알아먹지 못할 수준으로, 불가사의한 "전조"들만 횡행한다(3권 말에서 민오가 느낀 복통 같은 것. 미얄을 비롯한 인물들의 수수께끼스런 헛소리들도 여기 속할지도). 미얄에서는 "뭔가가 온다. 곧 일어난다" 는 느낌을 적절하게 불러일으키는 예언자의 포어사이트가 현재형의 이야기 속에 빈번히 삽입되어 있다. 현재형의 사건 자체도 불확실하며, 주인공은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고 심지어는 자기가 뭐하는 놈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미스터리 소설에서 자주 보이는 이야기구조이지만, 명탐정과는 달리 탐정 역의 미얄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끝까지 정확한(합리적인) 해설을 하지 않으며, 사실은 그 정체조차 불분명하다.

   미얄은 각 권 라스트에서 '운명'의 일부가 드러날 때까지 불길한 전조들을 제시하며 이야기를 이끈다. 그 이미지는 생경하고 강렬하며 기발하다. 앞으로 무엇이 일어날지 궁금한 한편, 이대로 영원히 이야기가 연장되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소설을 읽는 독자에겐 영원히 흥미를 유발하며 끝나지 않는 이야기야말로 네버랜드이므로, 그런 감각을 맛보게 하는 이야기는 어떤 형태이든 매우 뛰어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으로 독자가 막연히라도 '운명'에 대해 눈치채고 그것을 작가가 가공해서 드러내는 패턴에 익숙해지면 마력은 효력을 상실한다. 논리적이지 않기 때문에 더욱 위험한 약점이다. 보통 미스터리 소설의 독자는 막연히 '패턴'에 의해 진상을 눈치채더라도 그 진상을 도출해내는 논리의 정교함에 감탄할 때가 많다. 그러나 미얄에서는 치밀함을 감상할 기회가 빠져 있다.
   쉽게 말해서 이 시리즈는 발상의 기발함에 의존하고 있다. 그것을 지탱하는 시스템이 약하다. 따라서 작가가 발상한 바를 직관하게 된 독자에겐 재미가 약해지는 것이다.

   내 경우는.............좀 운이 없는 경우였다. 남들 다 칭찬한 4권이 3권보다 김빠졌으니. 소설 초반부터 극중 주요 인물(■■, 석선생, 미얄, 이쯤되면 자동적으로 '노예'까지 OTL)과 관련한 기믹을 다 눈치채 버렸으니 뭐 말 다한거(....................).
   아마 시리즈가 더 진행되고, 작가의 스타일에 익숙해진 독자들이 늘면 운 없는 케이스는 얼마든지 증가할 것이다.
   그렇다더라도, 작가 고유의 문체와 쾌적한 템포, 끝나지 않는 이야기에 대한 환상과 기이함이 감도는 묘하게 아름다운 분위기는 독자적인 매력을 갖고 있다. 중독성이라고 해도 좋다.
   라노베 관련해서 덧붙이자면, 만약 이 작품이 '캐릭성'만을 강조해서 기획되었더라면 지금 갖고 있는 독특한 매력은 대폭 감소했을 것이다. 캐릭터를 중시한 작법으론 절대로 이 작품처럼 히로인(?)은 물론 1인칭 화자(남자)주인공까지 정체가 모호한 소설은 나올 수가 없다. 이것은 작가의 개성이 충분히 반영된 결과다. 물론 겉보기의 캐릭터성 역시 훌륭하게 구현되어 있다는 점 또한 간과해선 안 되겠지만, 이 [미얄의 추천]은 라노베를 쓰려는 사람 혹은 쓰는 사람들이 라노베적인 것에 대해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사고를 자극받기에 좋은 작품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동시에 우리나라 토양에서 나올 수 있는 이례적이면서도 대표적인 라노베로 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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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의 심장 애장판
하기오 모토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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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배경은 겨울, 독일의 한 기숙제 남학교. '아무르(사랑의 신)'처럼 누구에게나 예쁨받던 미소년 토마 베르나가 철도 위에 몸을 던져 죽는다. 소년의 죽음은 기숙사 전체를 술렁이게 하지만 누구보다도 깊은 충격을 받은 것은 유리스모르라는 학생이다. 생전의 토마는 유리스모르를 유혹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걸고 '내기 연극'을 했고, 그 계획을 안 유리스모르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토마를 거절한다. 유리스모르는 자신의 책상에 놓인 토마의 유서를 읽고 그 죽음이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죽은 토마의 그림자에 사로잡혀 괴로워하는 유리스모르의 눈앞에 어느날 토마와 꼭 닮은 소년 에릭이 나타난다. 전학생 에릭은 모든 이들이 자신에게서 토마의 모습을 찾는 것을 알고 토마의 죽음에 대해 흥미를 가진다. 필연적으로 에릭은 유리스모르에게 다가가고, 유리스모르의 어두운 비밀이 점점 드러나기 시작한다.

   풍문으로 이름만 계속 들어 온 전설의 명작 [토마의 심장]이다. 내가 이걸 한국어판으로 손에 들 날이 오리라곤 바로 어제 영풍에서 기웃거리기 전까진 몰랐다. 

   온다 리쿠 박순희로서 [네버랜드]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등과의 유사성을 발견하지 않을 수 없다. [네버랜드]에 대해 리쿠 여사가 "토마의 심장 같은 이야기를 쓰려고 했는데 전혀 다른 얘기가 되어 버렸다"고 고백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차라리 [보리바다]가 훨씬 닮았다. 클라이막스의 고백 부분, '사랑하는 소년'의 죽음의 그림자라는 요소는 네버랜드가 상당히 유사하다. 라스트 가까이 도서관의 책 속에 끼워  죽은 사람의 글을 읽는다는 연출은 보리바다가 생각났다. 

   아름다운 소년의 죽음, 그에 얽히는 미스터리. 간단히 이야기의 방향성을 말하자면 그렇다. 옛날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이 세련돼서 낡았다기보단 고전적이라고 하는 게 어울린다. 기숙사제 학교에서 비밀을 품고 죽은 남학생이란 것도 뭔가 하나의 영원한 테마가 아닐까. [사육계 리카]의 테츠 같은 변주가 있는가 하면, [K의 장렬] 역시 이 계통의 방계인 듯하다. 열거하라면 의외로 몇 개 떠오르는 게 없지만, 이 테마에는 아득하게 가슴을 설레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성별이 없는 천사(혹은 타천사) 같은 아름다운 소년들의 청춘과 죄, 순진함과 잔혹함, 즐거움과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는 그 정도로 절묘한 상황설정이 더는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폐쇄된 공간에서 죽은 이의 그림자를 쫓는다는, 변형된 고딕-유령이야기로서의 딱히 집어낼 수 없는 기묘한 긴장감이 그들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이 책 [토마의 심장]은 그런 불온한 아름다움의 원형질이 살아 있는 이야기다. 유리스모르-(토마)-에릭의 (삼각)구도는 전형적이면서도 전형성만이 갖는 깊은 맛이 있다. 여러가지 자기만의 내면과 역할을 가진 조연 소년들의 매력도 상당하고, 특히 유리스모르의 룸메이트 오스카는 정말 멋지다. 오스카가 등장하지 않는 부분을 읽으면서 그 녀석 언제 등장하나 기다렸을 정도로.

   하기오 모토의 팬뿐 아니라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적극 추천하는 한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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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감각은 범죄다- '저항의 미학'으로서 성 미학
이희원 지음 / 이루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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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용어 사전
데이비드 스탯 지음, 정태연 옮김 / 이끌리오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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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에드워드 사이드를 위하여
빌 애쉬크로프트.팔 알루와리아 지음, 윤영실 옮김 / 앨피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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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
토니 마이어스 지음, 박정수 옮김 / 앨피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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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박 넘기
스티븐 모튼 지음, 이운경 옮김 / 앨피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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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적 텍스트 롤랑/바르트
그레이엄 앨런 지음, 송은영 옮김 / 앨피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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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1 본격추리 1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소영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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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이건 별점을 떠나서 "전설"급이다.
  표지를 언뜻 보고 "웬 배트맨이 창문을 기웃거리지? 배트맨이 란포랑 무슨 상관?"이라고 갸웃거렸다.
  물론 저 검은 실루엣은 고양님이시다...

  재패니즈 미스터리는 내가 한창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인 90년도 초반에도 꽤 꾸준히 국내에 유입되어 일정한 독자층을 확보해 왔다. 비록 정식계약작이 아닌 소위 '해적판'도 슬쩍 끼어들어 있었고, 기껏해야 매니아의 전유물 혹은 말초적인 삼류소설 취급을 받았다고 해도 말이다.
  2000년대 중반에 들어 재패니즈 미스터리의 위상이 크게 상승되었다. 근래의 장르소설 붐도 일조하여(혹은 붐에 일조하여) 재패니즈 미스터리는 손에 꼽히는 거물급 작가의 이름과 한묶음으로 일종의 브랜드네임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에도가와 란포의 무려 '전단편집'이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된다는 것은 감히 '사건'이라 칭할 일이라 사료된다. 에도가와 란포는 재패니즈 미스터리의 시원임과 동시에 역사를 나타내는 아이콘이기에, 이를 수용한다는 것은 즉 그만큼 우리의 재패니즈 미스터리에 대한 수용의 깊이와 수준이 무르깊어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실로, 원색적 표지와 원색적 제목(대부분 번역 출판사 측에서 멋대로 바꾼)으로 화려하게 치장된 책을 어른 몰래 보던 어릴 적과 격세지감을 느낀다.
  각설하고, 에도가와 란포의 저작들은 이전에도 여러가지 판본과 편집으로 국내에 소개된 바 있다. 주로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들의 편집판으로, 개중에는 어린이용 책의 외장을 하고 거울지옥이나 우충 같은 단편을 끼워넣은 염치없는 판본도 있었다(아마 에도가와의 작품만이 아니라 다른 작가의 작품들이 섞인 미심쩍인 물건이었던 것 같다). 물론 전집이 정식 계약되어 출판된 것은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다.
  본서는 총 세권의 전단편집의 첫타를 끊는 1권으로, 본격추리를 테마로 원고지 200매 안팎의 작품을 선정했다(일본의 원고지는 400자 기준이라고 하니 우리식으로 환산하면 400매인가? 아니면 번역자께서 이점도 염두에 두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의 물리적인 부피도 상당하지만 안에 들어있는 작품 역시 무려 22권으로 쾌재가 절로 나올 정도로 풍성하다. 게다가 대부분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적 없는, 내지는 내가 이제껏 한번도 본 적 없는 작품들이라는 점은 커다란 매력 포인트다.
  걸작 "2전짜리 동전"이나 "심리시험", "D언덕의 살인사건" 등은 말할 것도 없다. 명탐정 제1세대 아케치 코고로의 능청스런(?)모습이 돋보이는 "흑수단"이나, 은근히 호러블한 "유령"(죽은 사람의 얼굴이 사진에 커다랗게 찍혀 있는 대목은 꽤 섬찟하다), 란포 본인은 실패작이라고 궁시렁거리지만 꽤 읽는 맛이 있는 아이러니컬한 단편 "무서운 착오", 역시 란포 본인은 개그글은 자기 본령이 아니라고 발뺌하나 반전의 유쾌한 재미에 충실한 "입맞춤", 희곡투로 쓰여져 묘한 긴장감에 넘치는 "낭떠러지" 같은 작품들은 실로 이제껏 숨어 있던 게 아까운 절품이다. 특히 "영수증 한 장" 같은 작품은 제목처럼 영수증 한 장으로 대사건(?)을 밝혀낸다는 촌철살인적 발상과 허를 찌르는 기발함에서 요즘 작품들과도 비견할 만한 세련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굳이 본서의 "백미"를 딱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기존에 소개된 유명한 작품들도 있지만, 나는 "석류"를 올리고 싶다. 맨 끝에 실린 본작은 분량도 다른 작품에 비해 두텁거니와, 란포다운 허를 찌르는 심리트릭은 물론 소설적인 재미도 뛰어나고, 무엇보다도 "새빨갛게 익어 터진 석류"의 이미지가 강렬하다. 하필 '석류'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올린 데 대해 뭐라 말할 수 없는 찝찝함과 섬뜩함을 느끼며, 그것이야말로 란포 소설의 '맛'임을 새삼 인정하게 된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충실한 '부록'이다. 역자의 작가소개 페이지는 물론이고 일어 초심자를 위한 히라가나 표까지 붙어있다. 뭐니뭐니해도 에도가와 란포 본인의 코멘터리가 수록되어 있는 점이 대히트다. 작품에 자부심을 표시하는 대목도 많지만, 탐탁찮은 작품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불평(?)을 늘어놓는 모습에 더욱 매력을 느꼈다. 자신의 비교적 이지적인 본격추리물보다는 퇴폐적이고 환상적인 변격물에 더 호응하는 세간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모습에도 호감도 대폭상승이다. 나 자신 역시 변격적인 요소가 더 취향이라 그런 쪽에서 란포다움을 찾기는 하지만.
  문체와 연출 면에 있어서는, 물론 20년대의 작품인고로 큰 쇼킹함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추리소설의 초심자와 일본 미스터리적인 '맛'을 즐길 줄 아는 독자라면 본서에 대해 실망할 일은 없을 것이다. 또한 일상계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도 어필할 만하다. 물론 사람들은 많이 죽지만(....), 거창한 트릭을 구사하기보다는 인간 심리의 맹점을 교묘하게 찌르는 섬세함이 돋보인다.
  진리는 시간의 딸이라는 말이 있다. 소위 '걸작' 역시 시간의 총애를 받는 아이라고 하겠다. 80년 세월에 걸쳐 사랑받아온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들이 우리나라 독자의 시간 속에서도 영원히 사랑받기를 기대해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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