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어릴 적 집안 대대로 내려온 족보의 맨 뒷장을 찢어내 연을 만들었다. 남이라 해도 좋을 사람들의 이름과 관직이 적혀 있는 페이지였다. 그는 그 종이 묶음이 별것 아니라 생각했다. 물론 연을 만든 사실이 아버지에게 발각되었을 때 그의 이름은 종이에서 영원히 사라질 뻔했다.


 

연은 적합함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너무도 잘 날았다. 멀리…… 아주 멀리…….


 

그가 집으로 돌아온 시각은 이른 아침이었다. 현관을 들어서는 그의 얼굴은 굳어있었다. 한참을 방에 누워 있던 그는 오전반 수업을 마치고 온 아들에게 서커스를 보러 가자고 말했다. 아들은 근래 거리에 나붙은 포스터를 보고 서커스가 보고 싶다, 했었다. 그건 순전히 포스터 구석에 박혀 있는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그 사진은 왼쪽 엉덩이 중앙에 다리 하나가 더 뻗어 있는 소의 사진이었다. 여러 기괴한 동물들의 사진이 있었지만 덩그렇게 다리 하나를 더 달고 있는 소의 사진은 유독 아들의 눈길을 끌었다. 사진 속의 소는 비정상이었다. 그 비정상에 아들은 마음이 끌렸다. 겁이 난다거나 징그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신선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뜬금없이 서커스를 보러 가자 말하는 그에게 아내가 말했다.


그런 거 봐서 뭐가 좋다고…… 왜 데려가려고요?”


흐린 눈으로 아내를 쳐다보던 그가 대답했다.


보고 싶다잖아.”


그는 회사에서 흰색 안전모를 집어던지고 퇴근했다. 아침에 출근한 작업반장이 철야 작업 속도가 더디다며 도크 안 배 주위를 오리걸음 시켰을 때 그는 서커스를 보리라 마음먹었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 다섯 번째 다리를 허공에 뻗고 서 있을 소가 생각났고 아들의 얼굴이 또렷해졌다. 오리걸음에 쑤셔오는 다리 때문이 아니라 아들의 얼굴이 생각나 안전모를 쥔 손과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도크 바닥을 방향성 없이 굴러다니는 안전모를 보며 이제 그와 가족들의 인생이 어디로 방향을 틀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서커스가, 정확히 말하자면 소의 다섯 번째 다리가 보고 싶어졌다.

 


그와 아들이 원형 서커스 천막이 처져 있던 해수욕장 근처 공터에 도착했을 때 천막은 걷히고 있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오랫동안 주변을 기웃거려보아도 끝내 소는 보이지 않았다. 서커스 천막 꼭대기의 붉은 깃발만이 잔잔한 해풍에 나부꼈다.


공터를 배회하던 그가 아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런 소는 없는가 보구나.”

, 아버지.”


그와 아들은 바람에 날리는 꼭대기의 깃발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가 아들에게 말했다.


시골집에 할아버지 뵈러 갈까?”

, 아버지.”


그는 아들을 오토바이 뒷자리에 태우고 자신의 몸을 꽉 껴안으라 당부한 뒤 오토바이를 시골집으로 몰았다. 한 시간 넘게 달려간 시골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당 한편에서 백구만이 바닥에 배를 대고 숨죽이고 있었다. 그를 본 백구는 펄쩍펄쩍 뛰다 목줄에 목이 걸려 컥컥거렸다.


백구가 아프겠구나. 목줄을 풀어줘라. 너무 짧구나.”

, 아버지.”


목줄이 풀린 백구는 앞발을 그의 허리춤에 올리고 얼굴을 비볐다. 앞발 양옆으로 손을 넣어 백구를 안고 눈을 맞춘 그가 아들에게 말했다.


백구는 이름이 없구나.”

백구가 이름이잖아요. 백구.”


백구가 마당을 벗어나 추수가 끝나 휑한 논으로 달려 나갔다. 벌판 한가운데 선 백구는 시골집을 바라봤다.


백구가 답답했었나 보다.”

그랬었나 봐요.”

왜 저렇게 짧은 줄에 묶어둘까?”

도망갈까 봐 그렇겠죠.”

긴 줄에 묶어둬도 도망가지 않을 텐데…… 도망가더라도 돌아오지 않을까?”


한자리에 서 있던 백구가 속력을 높여 시골집으로 뛰어오는 것이 낮은 담 너머로 보였다. 그가 백구를 향해 달렸다. 아들도 백구야, 하며 따라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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