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하든지 해야지. 이렇게 못 살겠어!”


성한 씨가 현관에서 신발을 벗기도 전에 아내는 버럭 소리부터 질렀다. 30년 경력의 무당도 발을 밸 작두같이 시퍼렇게 날 선 아내의 목소리에 성한 씨는 몸을 움찔거렸다. 사태가 예사롭지 않음을 직감하고 집안을 살펴보니 쌍둥이들이 거실 구석에서 벽을 보고 서 있었다.


애들은 뛰지 아랫집에서는 올라오지. 이놈의 빌라는 어떻게 지었길래…….”


늘 아랫집의 야박함을 입에 올리던 아내가 갑자기 지은 지 30년 넘은 빌라 이야기를 꺼내자 성한 씨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1년 전, 고등학교 동창 말을 믿고 아내 몰래 담보대출까지 받아 투자한 주식이 휴지 조각이 되는 바람에 지금의 집으로 이사 와야 했기 때문이었다. 최근 6개월 동안 성한 씨는 조선 시대 궁중의 말단 내시처럼 발소리도 못 내는 신세였다. 그러고 보면 층간 소음 문제에서 성한 씨는 무죄에 가까웠다. 원죄를 따진다면 모를까.


성한 씨가 샤워를 끝내고 나왔을 때 아이들과 장난치는 아내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집안은 다시 평화를 찾아가는 것 같았다. 평화로운 분위기를 틈타 당신 오늘따라 더 예뻐 보이네. 나이가 무색한 방부제 미모야.” 같은 말로 환심이나 사볼까 싶어 성한 씨는 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들뜬 마음이 문제였는지, 순수하지 못한 마음이 문제였는지, 눈웃음을 치며 아내에게 다가가던 성한 씨는 쌍둥이들이 거실 바닥에 어질러 놓은 레고 블록을 밟고 벌렁 넘어지고 말았다. 바닥에 드러누운 성한 씨를 본 아내는 일절의 놀람도 없이 구겨진 인상으로 또 올라오겠네.”라 말했다. 그런 아내에게 섭섭한 마음이 영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성한 씨 또한 척추를 타고 전해지는 통증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천둥처럼 거실을 울린 소리에 심장이 쪼그라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내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딩동.


“202호인데요.”


아랫집 남자의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난 몰라 당신이 나가봐. 애나, 어른이나, 어휴…….”


아내가 짜증을 섞어 한심하다는 투로 말했다.


성한 씨는 미간을 좁히고 문밖에 서 있을 남자를 상상하며 너무 하신 거 아닙니까?” 말이라도 해볼까 하다 곧 맘을 정리했다.


앞으로 5. 대출금 갚기 전까지 이사는 어렵다. 쌍둥이들은 이제 5살이다. 참자. 참자.’


성한 씨는 공들여 꾸민 웃는 얼굴로 문을 열었다. 육중한 스모 선수 체형의 남자가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발이 자석처럼 바닥에 달라붙고 얼굴 근육이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성한 씨는 웃음을 잃어선 안 된다, 절대 잃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 다짐했다.


죄송합니다. 저희 애들이 좀…….”


성한 씨가 힘들여 남자와 눈을 맞추고 괜스레 애들을 들먹이는 순간 남자는 흠칫 놀라는 눈치였다. 그러고 보니 낯이 좀 익은데…… 어디서 봤더라…… 6개월 동안 죽어 사느라 인사도 못 했는데……. 거대한 몸에 축져진 뱃살, 윤기 없는 곱슬머리, 인중에서 약간 벗어나 찍힌 콩 반쪽만 한 점, 모기 목소리까지 생각을 더듬었을 때 성한 씨는 숨이 턱 막혔다. 맙소사!

 

*


성한 씨는 파라다이스 모텔에서 있었던 일들을 기억해보았다.


파라다이스는 서울의 여러 모텔을 전전한 끝에 찾은 보물 같은 곳이었다. 회사와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골목 깊숙한 곳에 자리해 비교적 마음 편히 드나들 수 있었다.


지난주 수요일, 늘 그렇듯 좌우를 살피고 땅을 보며 모텔 입구로 들어선 성한 씨는 급하게 뛰어오던 건장한 체구의 남자와 몸이 휙 돌아가도록 어깨를 부딪쳤다. 남자는 성한 씨의 눈을 보지 못하고 이마를 땅에 찧을 듯한 몸짓으로 연신 죄송하다 말했다.


,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성한 씨도 남자를 쳐다볼 수 없었다. 고개를 숙이고 대답만 할 뿐이었다.


남자는 바닥에 떨어뜨린 가방을 주워들고 꾸벅 인사한 뒤 서둘러 입구를 빠져나갔다. 주차장으로 향하는 남자를 곁눈질하며 걸음을 옮기던 성한 씨의 발에 휴대전화가 차였다. 성한 씨는 잠시 고민하다 남자를 불렀다.


, 저기요.”

? ……딸꾹.”


남자는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딸꾹질을 하며 뒤를 돌아봤다.


*

 

그 남자, 아랫집 남자가 분명했다. 모텔 입구에서 마주친 윗집 남자와 아랫집 남자라니. 성한 씨는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같은 생각? 모르지, 몰라……. 유리한 상황인가? 아니야, 딱히……. 여러 생각이 발정 난 말처럼 머릿속에서 날뛰었다. 어떤 것도 확실치 않았다. 두 남자가 모텔에서 마주쳤다는 것과 자칫 공멸할 수 있다는 것만이 확실했다. 딜레마에 빠졌었던 죄수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성한 씨는 창살 사이로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외딴섬의 죄수가 된 기분이었다.


무심코 손으로 훑은 정수리에서 아끼던 머리털이 한 움큼 빠졌을 때 성한 씨는 아랫집 남자를 만나기로 결심했다. 동네 제과점 파티시에가 추천해 준 고급 케이크를 사 들고 아랫집 문 앞에서 심호흡한 후 벨을 눌렀다. 딩동.


누구세요?”


남자의 얇은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나왔다.


안녕하세요. 302호입니다. 하하하.”


성한 씨는 밝은 목소리에 최대한 웃음을 더해 말했다.


, …… 딸꾹.”


잠시 후 문이 열렸다. 성한 씨는 재빨리 남자를 위아래로 훑었다. 딸꾹질까지. 그 남자였다.


하하하. 이사 와서 인사도 제대로 못 드리고 매번 폐만 끼쳐드린 것 같아서요. 약소하지만 이거라도…….”


성한 씨는 케이크를 건네며 남자의 두 손을 잡았다. 손에서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아니, 딸꾹…… 그게…….”

받아주세요. 그래야 제 마음이 편합니다. 하하하.”


남자는 등 뒤에 버티고 선 아내와 성한 씨를 번갈아 쳐다보다 침을 꼴깍 삼켰다. 목울대가 작게 꿀렁거렸다.


저번과 묘하게 얼굴이 달라.’


남자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볼이 푹 파여 광대뼈가 불거져 있었고 퀭한 눈 밑으로 다크서클이 반 뼘 내려와 있었다. 얼굴빛이 양생이 덜 된 콘크리트처럼 연한 회색인 것과 왼쪽 눈 주위가 원 모양으로 푸르스름한 빛을 내는 것도 이전과 달랐다.


어쩌면 이 남자도…….’

 

*


모텔에서 마주친 두 남자가 마주한 치킨집 황색 등 아래로 침묵과 경계감이 뻐근하게 흘렀다. 먼저 입을 연 건 성한 씨였다.


선생님.”

, 선생님.”


호칭은 어느새 선생님이 되어 있었다.


, 저기, 그러니까…… 파라다이스는…… ……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게 아닙니다.”

? 그런 거요?”


두 남자는 모호한 경계의 말들만 주고받았다. 의심하고 상상하는 사이 말들은 허공을 붕붕 떠다녔다. 긴 침묵 끝에 끙, 소리만 내던 성한 씨가 입을 열었다.


제가 사실 1년 전에 사고를 쳐서 집에 오면 찬밥 신세예요. 낙이 없더군요.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모텔에 갑니다. 오해는 마세요. 2시간 대실 끊어서 영화나 만화책 보며 낄낄거리다 오거든요. 그때도…….”


성한 씨의 말에 남자는 만면에 화색을 띠었다. 목소리도 한층 커졌다.


, 그러세요? 저는 철야 근무라 말하고 숙박 끊어 밤새 게임하다 오는데. 그 재미 아무도 모르죠. 크크크. 역시 파라다이스가 최고예요. 시설 좋지, 주인 친절하지. 숙박 5번에 대실 1번 무료인 건 알고 계세요? 저 대실 쿠폰 4장 있는데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 하하하.”

, 그래요? 하하하.”


두 남자의 무수한 모텔 경험담과 술기운은 그들을 의형제로 만들기 충분했다.


형님도 참 딱하십니다. 어쩌다 그런 일을 벌이셔서…….”

내가 보기엔 동생이 더 딱해. 난 맞고 살지는 않잖아. 그건 그렇고 우리 애들이 너무 뛰지? 미안해, 동생.”

아이고, 아닙니다, 형님. 뛰어야 애들이죠.”


*

 

다음 날 아침, 성한 씨는 아내에게 어제 아랫집 남자 만나서 따끔하게 이야기했어. 이제 그럴 일 없을 거야.”라고 말했다. 아내는 몇 번씩이나 정말?” “진짜야?” 되물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출근길의 지하철은 변함없이 북적였다. 사람들에게 밀리고, 치이고, 끼였다. 그럴 때마다 성한 씨는 파라다이스를 상상했다. 서류 가방 깊숙한 곳, 그곳에, 파라다이스 2시간 체험 쿠폰이 들어 있었다.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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