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두 개의 세계를 사는 한 여자를 본다. 경계 없이 순간을 넘나드는 두 세계. 미친년과 아가야. 그 두 세계의 종말은 누군가의 죽음이다. 그러니 여자는 부단히 살아낼 수밖에 없다. 어느 세계에 속하든.


당신의 할머니가 두툼한 조기와 색색의 나물이 차려진 밥상 앞에서 허공에 숟가락을 던진다. 미친년. 그악스럽게 뱉는 외마디가 당신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불렀는교? 미친년 여기 왔니더. 이런 꼴사나운 대답도 마찬가지다. 집안이 온통 익숙해지지 않을 것들로 채워진다. 점점 더 낯설어진다. 낯설지 않은 것은 여자가 차려 내는 밥상밖에 없다. 특별할 것 없는 그 밥상.


할머니는 불려온 여자에게 아무 말이 없다. 그라지 말고 좀 드이소. 여자는 숟가락에 밥과 조기 살을 얹어 할머니의 입 앞에 가져간다. 고등어는 저녁 찬으로 올릴게예. 그거 다- 어머니 드이시소. 지는 비린내 나서 안 묵을랍니더. 여자는 당신을 보며 샐쭉 웃는다. 당신도 따라 웃는다.


할머니는 조기를 손으로 뜯으며 밥 한 공기를 다 비운다. 숭늉을 찾는다. 여자가 부엌에서 희멀건 숭늉을 내어온다. 숭늉을 마신 할머니가 별안간 1년 전 죽은 아들을 찾는다. 재현이는 아직 안 왔나? 내만 밥 묵어 되겠나? 올 수 없는 당신의 아버지를 찾는다. 재현이 1년 전에 죽었다 아닌교…… 이제 그만 찾으이소. 당신은 여자의 이 대답도 익숙해질 것 같지 않다.


할머니는 처음 듣는 비보에 통곡한다. 가슴을 친다. 땅을 친다. 어쩌다 내보다 먼저 갔을꼬. 내가 먼저 가야제. 당신의 가슴이 조금 저민다. 여자는 말없이 밥상을 들고 부엌으로 향한다. 할머니가 여자의 뒤통수에 대고 말한다. 이 죽일 년. 니가 우리 재현이 죽였제? 내 아들 죽인 년. 여자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 조기 살이 어지러운 밥상만을 행주로 조용히 훔칠 뿐이다.


할머니는 통곡에 지쳐 그 자리에 잠든다. 이불 가져다 드려라. 여자가 당신에게 말한다. 할머니가 곱게 코를 곤다. 여자는 할머니의 손을 살포시 잡고 말한다. 어무이요, 식이 아빠 먼저 갔니더. 불효자 찾지 말고 우리 하고 같이 잘 사입시더. 여자는 손을 한번, 두 번, 세 번…… 쓰다듬는다. 여자의 손 위에 당신 손을 겹친다. 니, 시장 가서 고등어 좀 사 오니라. 내는 욕조 청소 좀 해야겠다. 여자는 당신에게 할머니 손을 건네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하나의 세계가 막을 내린다.


당신의 할머니가 잠에서 깨어 여자를 찾는다. 아가야, 아가야.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던 여자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다. 어디 갔더노? 할머니는 조금 목이 멘다. 일어나셨는교? 죽일 년이라 카더만 지금은 아닌교? 여자가 농을 던진다. 할머니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뭔 그런 망측한 소리를 하노?”라며 여자를 나무란다. 여자는 장난스레 입을 삐죽이다 싱긋 웃는다. 아입니더, 지는 어무이가 경로당에서 그케 자랑하던 맏며느리 맞지요? 그렇지요? 죽일 년은 없니더. 없어져 버렸니더.


좁디좁은 욕조에 물 채워지는 소리가 거실을 울린다. 여자는 할머니를 욕조에 누이고 거품 가득한 손으로 몸을 천천히 쓰다듬는다. 화장실 가득 손 주이소, 팔 올리이소, 같은 소리가 메아리 친다. 효부를 봤더만, 아들내미 없어도 이래 호강하네. 할머니가 합죽한 입으로 말한다. 어무이가 경로당에 자랑한 만큼은 해야 안 되겠는교? 이런 호강 받을라꼬 맏며느리 자랑하고 다니셨지예? 여자가 할머니를 무심히 타박한다. 등을 미는 여자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어무이, 식이 아버지랑 지랑 결혼시킬라꼬 보름 넘도록 매일같이 우리 집에 오셔가, 밥 얻어 자시고 가신 건 기억나시는교? 부자집이라캐서 덜렁 시집왔더니만, 지 팔자 이래 됐다 아입니꺼. 어무이가 책임지이소. 어무이는 그때 그 정성으로 효부 얻었다 아입니꺼. 지가 밑지는 장사했지예. 안 그러십니꺼?”


“맞다, 그 말 맞다. 재현이가 그 놈아가 얼마나 속을 썩였는데. 그래도 덕분에 니 얻었으니 된 기다…… 그럼 된 기다. 맞다, 맞다.”


당신은 또 다른 세계를 살아 내는 한 여자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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