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

천형

어렸을 때부터 벌로
들기 시작한 팔은
시를 쓰면서부터는
바람 사전을 든
죄의식, 무거웠고
잡일 다니기 시작하면서는
노동으로 뻣뻣해져, 누워서도
손을 들고 자야 어깨가 아프지 않았다

오십견인가 했지만

흐린 날은 더 아팠다

세상일이 흐릴 때마다
쑤시는 팔을
들어야 하는
천형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집으로 돌아가는 노동자의 발걸음

하빠리
                                        사천삼백사십삼년 오월 열아흐레
                                                  축구, 구경할 힘도 시간도 없다

오늘아침 일요일인데도
‘일 나갈 수 없나’ 하고 용역소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제 분명히 오늘은 쉰다고 했건만
이건 사람 취급이 아니다
쉬고 싶을 때 쉬고 싶은 자와 쉬지 못하는 자가 노동자와 사용자이다

깜깜한 새벽에 노동일을 나갈 때는
노동의 여명처럼 써지던 글이
오랜 노동에 녹초가 되니 기름기 빠진 마른 몸처럼 앙상하고 성성하다
독한 것은
노동은 할수록 중독이 되며 정신을 마비시킨다는 것
그래서 현장에서의 느낌들도 기록할 수 없이 멍하게 보내고
저녁에 돌아오면 짧은 글마저도 쓸 수 없이 녹초가 된다는 것
그러고도 아침이면 다시 풀리지 않는 몸을 끌고, 김밥두줄 물고 버스를 기다린다
대충하지 못하는 이놈의 성질머리는 무엇이든 끝장을 보려 해서 더 몸을 혹사 시킨다
몸으로 하는 블랙노동은 참으로 슬픈 일이어서
노동의 강도를 모르는 공장과 회사 노동자들이 벌이는 노동운동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
단지 그들만의 리그일 뿐
민주노동당의 한계는 그들이 노동을 머리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노동자들을 당원으로 삼아 노동의 숙명과 개선을 가르치지 말고
사용자들에게 노동의 질적인 구조와 휴식을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몸 노동을 숙명처럼 끌어 앉고
저항할 아무런 근거 없이 살아가는
가장 하층의 하루 일당의 ‘노가다’ 노예들을 보살펴야 한다

아침마다 안전교육이다
안전도 지킬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생각나는 것이지
과다한 피곤함과 숙취에 의존해야 하는 정신적인 고통을 가진 자들에게 안전은 오직 휴식뿐이다
왜 일요일에 현장을 멈추게 하지 않는 것인가
난 주 5일 근무 노동자를 노동자라고 부르지 못한다
그들과 나는 전혀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무작정 보호를 받을 수 제도권에 있고,
나는 보호를 무작정 기대할 수 없는 권역 밖에 있는 것이다
나는 나로부터 정신적인 보호도 받을 수 없는 하빠리인 것이다.

하지만 나의 노동은 이제 시작이다
조용히 이를 다물고 길고 질긴 하빠리 노동의 가치를 품고 기록하는 것
노동운동은 공장 노동자의 질곡 된 천박한 이론적 투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잊혀지고 버려져 연대감 없는 노동 상실의 계층, 삶이 식어가는 하빠리들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그녀, 손목의 칼자국

일수

일당 일을 끝내고
슈퍼에서 두루치기로 막걸리를 나눠 마시고
집에 돌아 가다 가 생각한 기발한 단어를
메모하지 못해 잊고
몇 시간을 안절부절 헤매는 밤
생각들은 두루치기처럼 머리 속에서 볶아
취기는 막걸리처럼 밤으로 길게 끌려가는데
인적이 뒤숭숭한 길을 따라 해변으로 가는 길
여자 하나가 따라온다
마리아여
이성에 굶주린 나를 따라오는 성모여
당신이 낳은 신성한 아들의 길을 따라오는 창녀여
단막극 같은 하루를 낳아 진상하는 밤
당신의 입안에 내 진리의 혀를 넣고
내 손이 멈춘 곳에서 나의 그림자를 잉태하는 그대 노동조합이여
한 삽씩 부어 영혼을 조적하고 미장하는 잡부(雜婦)여
내 생성의 슬픔이여
내 마지막 일당을 거두어갈 이여
더 이상 일상처럼 손목을 칼로 긋지 마세요
단지 난 일당을 헐어 촛불을 켤 뿐
나의 고통들이 너의 심지로 다 탈 때까지

두루치기 같은 현실은 영원한 일당 일
기록해야 할 것들 때문에 안절부절 해야 하는
나를 밟는 여자여
내 일당의 순수한 일수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늘 쌓은 담

담을 쌓다
                                          4343. 사월 열 아흐레
                                              초여름의 추위, 내일 누군가 오싹했으면 좋겠다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 생각이 다 옳은 것은 아니기에
                                                       단지 다수의 의견이라는 맹점

오늘, 일 나간 곳에서 담을 쌓다가 생각한 것은
아무리 단단하고 견고한 담을 쌓더라도
격조 있게
끼워 맞출 돌의 모양을 관찰하고
맞물리 형태와 이를 맞추어보고
돌을 얹혀놓을 작업 능력을 고려한 무게
그리고 마지막 마무리를 정연하게

잘못 쌓아서 다시 쌓아야 할 때에도 돌 하나를 그냥 빼지 않고
다시 쌓을 것을 고려하여 차근차근 정리하듯 헐어야 한다

우린 타인과의 담을 어떻게 쌓으며
지금 북한과는 어떻게 담을 쌓고 헐고 있는가
마구잡이 쌓아 쉽게 헐린다면 좋은 것인가
다시 쌓을 것을 고려하고 있는가

모든 관계에서 담이 없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의 격조를 위한 거리로 존재하는 담은
터놓고 지내는 것보다 좋은 것이다.
너무 트고 지내면서 쌓이는 담보다는
담을 사이에 두고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중용의 가르침이다
-부부 사이의 비밀도 터놓는 순간 쌓이는 것이므로-
그래서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담은 오히려 편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시내 야경 의미없이 버스 안에서 찍다

확성
                                                      4343. 사월 열 여드레
                                                            동해안 저온 현상에, 세상은 체감온도 이하이다
선거 때문에 온통 시끄럽다
선거일이 목전이라서 그런지 악을 쓴다
극악이다
사랑의 말들은 속삭이듯 들리고 험담은 확성기처럼 들린다
그래서 그들의 말들은 나를 설득하지 못하는 험담이다
상대를 설득하거나 사랑의 말을 너무 많이 하여 목이 쉬는 경우는 드물다
소리가 큰 만큼 귀가 얇아지고 들리는 말들도 가볍고 울림이 없다
그래서 확성기를 통해 상대를 설득하려 하지만 되돌아오는 것은 악감정이다

휴대폰과 티브이가 얇고 가벼워지는 만큼 세상도 얇아지는 느낌이다
내용은 더 얇고 깊이는 거의 없고 단지 편의성이 더 첨가 된다
휴대폰이 얇아지는 동안 관계는 전도율 높은 박판처럼 가까워지지만 얇고 작아진다
얇고 가벼워 무게도 없는 휴대폰에 적응하려면 더 가벼워져야 하는 것은 우리의식의 충성도

무겁거나 두텁고 큰 것은, 진부하지만 믿음이고 진지함이 있다는 내 믿음은
노동에 종사하며 더 공고해졌다
진지함을 기대하기에는 이 나라의 시스템은 무지개처럼 잡히지 않는 신기루이다

요즘은 종교의 말씀들도 너무 소리가 커서 얇고 가볍고 현실성에만 집착해서
얇고 가벼운 현실의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너무 가벼워 둥둥 떠다니는 정치의 단어들은 이를 데 없이 천박하다

소리만 큰 확성이 아닌,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는 큰소리
멀리 퍼져나가는 울림을 들을 수 있는 날은 정말 소원한 것인가
큰 울림을 주던 이들은 다 어데 간 것일까
그립다, 확하고 달려들던 목소리들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