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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이안 맥완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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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날카로운 재치와 위트가 가득한 이 소설이 짧고 간결해서 더 좋았다.
하지만 존경할 만한 통찰력을 갖춘 클라이브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데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는 바. 특히나 그를 좋아했던 건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나 통찰에 대한 인식이나 지향점이 나와 유사해서다.

 

'그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황야없이도 더 없이 행복한 삶을 꾸려나가는 것 같았다. 그들이 필요로하는 야외공간이라고는 시골 식당과 봄철의 하이드 파크가 전부인 것 같았다. 그들은 온전히 살아 있고자 하는 욕구를 느끼지 못하는게 분명했다.' 

 

'여기에는 자신을 위협하는 것이 없었다. 단지 주변환경이 인간에게 무관심할 뿐이었다.'

 

음악가 클라이브의 생각이건 아니건 적어도 화자는 클라이브를 통해서 이런 통찰을 내비친다.

 

이렇듯 현명한 그가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점에 주목한다. 자신의 한계에 부딪치고, 질투, -그것도 죽은 여자를 두고- 에 사로잡히면서 이성과 지식은 살인의 도구로 전락할 뿐이다.   

 

'암스테르담'은 이성이나 지식 혹은 교양이 편리한 도구 혹은 위험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상기시킨다. 자신의 합리화를 위한 도구 말이다. 착각이라는 유혹에 손쉽게 흔들리는 것이 이성인 바, 나 자신 어느 경계를 걷고 있는지 불안하다.

 

 책을 읽으면서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떠올리곤했는데, 전지적으로 언급되는 인물들의 냉정한 평가와 각 개인의 심리를 묘사할 때의 보다 긍정적인 묘사의 묘한 불균형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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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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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나 영화, 접하는 것마다 아버지의 부재로 치닫는 요즘에 코맥 매카시의 '더 로드'는 특이하게도 아버지의 존재감을 무겁게 확인시켜준다. 반 모권적으로 비쳐질 수 있는 엄마도 아들을 포기한다는 설정은 현시류에서 반동적!이기까지 하다.
 

아버지의 무한정한 인내와 애정이 그려지는 가운데, 그의 죽음 이후 그자리를 대신하는 사람 또한 또다른 아버지다. 엄마의 부재 속에 아버지 그리고 계부로 이어지는 긍정적인 흐름은 스러져가는 '가부장'을 복권할 태세다. 이것이 '더 로드'를 이끄는 주요 동력이고, 이것을 증명하듯 아들은 지옥의 환경에서도 아버지의 품안(엄마가 아닌)에서 편히 잠든다.

 

'가부장의 복권'이라는 주제를 잿빛으로 위장한 복고적인 이 소설은 무척 보수반동적일 수밖에 없다. 잿빛으로 덧칠된 지옥에서 슬퍼할 인류를 (엉뚱하고 무식단순하지만) 인종적으로 분류한다면, 잃을 것이 누구보다 많은 중산층 이상의 백인이라는 사실이다. 이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영화화된 '더 로드'에서 주연은 비고 모텐슨이 맡았다. 고유명사를 지워버려 흑과 백, 사람 이름도 구분이 안되는 세상인데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순간 백인부자가 떠오른다거나 이 역을 백인이 맡는 건 억지스런 일이 아니다. 백인이라야만 '더 로드'의 지옥상황이 설득력을 갖추기 때문이다. 강력한 가부장의 권력에 대한 향수가 있어야만 책은 재밌다. 세계의 파멸이라는 전지구적인 거대한 배경이 온당하려면, 세계를 쥐락펴락하며 휘어잡았던 권력에 대한 향수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도 속에 우리 상상력은 이미 사로잡혀 있다.

 

욕망을 가린 중세의 지나치게 엄격한 수도승 복장으로 시지푸스의 고뇌를 흉내내며 오늘도 전진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반동적으로 보이는 것은 나만의 착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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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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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불리나의 죽음은 화려했던 과거에 비해 무척 쓸쓸한 것이었다. 각기 4대륙을 호령하던 남정네를 떡주무르듯이 손바닥에 가지고 놀던 그녀가 아니었던가.

 

저물어갈 때도 장대한 것은 태양뿐이었던가. 과거가 무색하게 죽어가는 그녀곁을 지킨 것은 추한 할망구들과 호색한 조르바와 무기력한 백면서생 카잔차키스 뿐이었으니...

 

도적놈같은 조르바에게 환대를 아끼지 않았던 부불리나에게 축복을!

그녀의 매력을 간과하고 꿈꾸는 듯한 판타지를 경멸하던 낯짝 두꺼운 조르바와 소심하고 울적한 한량 카잔차키스에게 저주를! 천사장 미가엘이여! 이 도적떼같은 남정네들의 머리위로 정신나간 수도승 자하리아의 미친 불길을 쏟아 부소서!

 

파라핀 냄새가 물씬나는 불길이 일면, 나는 주름투성이자 안짱걸음의 늙어빠진 전직 카바레 가수인 화냥년 부불리나 오르탕스 부인의 쓸쓸한 죽음에 잠시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다.

 

그녀의 죽음에 내가 어지간히 마음이 쓰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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