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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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나 영화, 접하는 것마다 아버지의 부재로 치닫는 요즘에 코맥 매카시의 '더 로드'는 특이하게도 아버지의 존재감을 무겁게 확인시켜준다. 반 모권적으로 비쳐질 수 있는 엄마도 아들을 포기한다는 설정은 현시류에서 반동적!이기까지 하다.
 

아버지의 무한정한 인내와 애정이 그려지는 가운데, 그의 죽음 이후 그자리를 대신하는 사람 또한 또다른 아버지다. 엄마의 부재 속에 아버지 그리고 계부로 이어지는 긍정적인 흐름은 스러져가는 '가부장'을 복권할 태세다. 이것이 '더 로드'를 이끄는 주요 동력이고, 이것을 증명하듯 아들은 지옥의 환경에서도 아버지의 품안(엄마가 아닌)에서 편히 잠든다.

 

'가부장의 복권'이라는 주제를 잿빛으로 위장한 복고적인 이 소설은 무척 보수반동적일 수밖에 없다. 잿빛으로 덧칠된 지옥에서 슬퍼할 인류를 (엉뚱하고 무식단순하지만) 인종적으로 분류한다면, 잃을 것이 누구보다 많은 중산층 이상의 백인이라는 사실이다. 이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영화화된 '더 로드'에서 주연은 비고 모텐슨이 맡았다. 고유명사를 지워버려 흑과 백, 사람 이름도 구분이 안되는 세상인데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순간 백인부자가 떠오른다거나 이 역을 백인이 맡는 건 억지스런 일이 아니다. 백인이라야만 '더 로드'의 지옥상황이 설득력을 갖추기 때문이다. 강력한 가부장의 권력에 대한 향수가 있어야만 책은 재밌다. 세계의 파멸이라는 전지구적인 거대한 배경이 온당하려면, 세계를 쥐락펴락하며 휘어잡았던 권력에 대한 향수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도 속에 우리 상상력은 이미 사로잡혀 있다.

 

욕망을 가린 중세의 지나치게 엄격한 수도승 복장으로 시지푸스의 고뇌를 흉내내며 오늘도 전진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반동적으로 보이는 것은 나만의 착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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