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
이안 맥완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1999년 7월
평점 :
절판


날카로운 재치와 위트가 가득한 이 소설이 짧고 간결해서 더 좋았다.
하지만 존경할 만한 통찰력을 갖춘 클라이브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데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는 바. 특히나 그를 좋아했던 건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나 통찰에 대한 인식이나 지향점이 나와 유사해서다.

 

'그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황야없이도 더 없이 행복한 삶을 꾸려나가는 것 같았다. 그들이 필요로하는 야외공간이라고는 시골 식당과 봄철의 하이드 파크가 전부인 것 같았다. 그들은 온전히 살아 있고자 하는 욕구를 느끼지 못하는게 분명했다.' 

 

'여기에는 자신을 위협하는 것이 없었다. 단지 주변환경이 인간에게 무관심할 뿐이었다.'

 

음악가 클라이브의 생각이건 아니건 적어도 화자는 클라이브를 통해서 이런 통찰을 내비친다.

 

이렇듯 현명한 그가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점에 주목한다. 자신의 한계에 부딪치고, 질투, -그것도 죽은 여자를 두고- 에 사로잡히면서 이성과 지식은 살인의 도구로 전락할 뿐이다.   

 

'암스테르담'은 이성이나 지식 혹은 교양이 편리한 도구 혹은 위험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상기시킨다. 자신의 합리화를 위한 도구 말이다. 착각이라는 유혹에 손쉽게 흔들리는 것이 이성인 바, 나 자신 어느 경계를 걷고 있는지 불안하다.

 

 책을 읽으면서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떠올리곤했는데, 전지적으로 언급되는 인물들의 냉정한 평가와 각 개인의 심리를 묘사할 때의 보다 긍정적인 묘사의 묘한 불균형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