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사랑이 있었다 - 신화에 숨은 열여섯 가지 사랑의 코드
권혁웅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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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초부터 전해내려오는 동서양의 신화, 민담등을 인용하여 16가지 (길/ 세월/ 경계/ 성애/ 유혹/ 홍수/ 첫날밤/ 구멍/ 세계수/ 근친상간/ 미궁/ 몸/ 처녀출산/ 불/ 사지절단/ 꽃 등)의 테마가 의미하고 상징하는 것은 결국 존재들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임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각각의 테마별로 장이 분류되어 있고 그리스 신화를 얘기하기도 하고 중국 설화를 덧붙이기도 하는 방식이라 옛날 옛날 이야기를 마을의 나이 많으신 할아버지에게 정겹게 듣고 있는 느낌이다.

 또한 페이지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관련 예술 조각상이나 그림 작품의 사진이 들어가 있어 부족한 상상력을 더욱 끌어 올리고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가장 처음에 어떤 것이 생기기기 위해서는 남녀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암수의 교합을 통해 만물과 자연이 생겨나고 그나마 인간이라 할수 있는 모양새를 갖춘 존재가 만들어졌다. 신들의 세계에서도 최초 그들의 존재를 이어가고자 근친상간을 넘어서고 금기에 반하는 합을 통해 새로운 것이 탄생하였고 그 새로운 것 또한 기존에 있는 것과의 합을 통해 다른 것을 생산해내었다.

 길은 남성이 여성의 자궁을 찾아가는 생산의 길을 의미하며 세월은 거듭하여 반복되는 부활을 상징한다.
 한 삶과 다른 삶의 문턱에서 어느쪽으로도 가지 못하고 멈춰버린 생산의 자리, 사랑의 자리가 바로 경계이다.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말따라 어쩌면 아무 의미없을 수 도 있는 것을 남녀의 결합으로 유도하여 풀이 하는 것도 재미있었으나 신데렐라 이야기가 부모의 사랑을 제일로 생각하는 아이의 마음에서 나온 왜곡된 형태로 표출된 것이라는 부분은 상당히 이채로웠고 정말 그럴수 있겠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계모와 경쟁자인 이복형제에 관한 이야기는 아주 많다.

 이를 애오라지 일부다처 사회가 가진 갈등이 반영된 것이라고 간주하기는 어렵다.
 적어도 그것은 부분적으로만 진실이다.

 아이들은  어느날 어머니가 다른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내 모든 말을 들어주고 모든 일을 처리해 주던 어머니가 어느 날 부턴가 나를 비난하고 헐뜯고 심지어 떄리기까지 한다.
 어머니 자리에 어머니 모습을 한 다른 사람이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이 계모다.
 아이는 다른 형제들이 자신이 받아야할 사랑을 빼앗아가는 경쟁자라는 걸 알게 된다. 그들이 이복형제다.

 그러니깐 계모와 이복형제들은 특별한 가족형태가 아니라 친모와 친형제의 감각적인 변형인 셈이다.
 

 신데렐라의 다른 판본인 제졸라(Zezola)얘기가 이를 분명히ㅣ 보여준다. 계모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제졸라가 가정교사와 상의한다.
 가정교사가 일러준 계교에 따라 제졸라는 계모에게 큰 옷상자안까지 팔이 닿지 않으니 고개를 숙여 옷을 꺼내달라고 부탁한다.
 계모가 옷을 꺼내려고 고개를 숙이자 그녀가 재빨리 뚜껑을 덮어 그녀의 목을 부러뜨려 죽인다. 그 다음에 가정교사가 새 계모로 왔는데 알고보니 이 여자가 진짜로 무서운 계모였다! 그러니깐 가정교사는 역할에 따라 친어머니도 되고 의붓어머니도 되었던 것이다.
 

 내게 잘해주면 친모이고 내게 못된 짓을 하면 계모라는 생각이 여기에 있다.
 아이는 다만 자신에게 주어질 사랑을 회복할 생각만 하고 있을 뿐이다.
 흥미로운 건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믿고 있는 것이 특별하고 범상치 않은 비범한 존재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대상을 미화시키고 완벽한 비현실적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존재는 우리네 처럼 생겨서도 안되고 평범하게 살아서도 안된다.
 항상 비극적 상황에 놓여야 하고 금기를 깨치고서도 태초의 세계를 만드는 막강한 힘을 가진 괴물같은 존재여야 한다.
 그들은 알에서도 나오기도 하고 처녀의 몸을 빌어 겨드랑에서 나오기도 하고 남성의 몸을 통해 형용치 못한 요상한 모습으로 태어나기도 한다.
 손에 닿지 못한 곳에 살며 비천한 인간으로선 감히 쳐다볼수 없는 우월한 생명이다.

 결국 그것은 현자와 신의 능력을 가진 우월한 존재가 나타나 민생을 구원해주길 바라고 원하는 마음에서 신화와 설화와 민담은 지금까지도 계속 변형되어 입에서 입으로 내려오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최초의 것에 대해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이 가치있는 것 임을, 그와 같은 우월한 존재에서 비롯된 우리네 존재도 심상치 않은 것이니 스스로를 중하게 여기라는, 하찮은 미물도 나름의 쓰임이 있고 이유가 있는 것이니 함부로 하지말고 귀하게 여기라는 선조들의 가르침이 아닐까.


 이렇듯 책은 남녀의 결합을 묘사한 것이나 의미하는 표현이 어려워 아이들이 읽기엔 어려울 듯 싶다.
 하지만 지루한 일상을 견디고 있는 어른들에게는 상식적으로도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 많기도 하고 이야기 꺼리가 풍성하여 상당히 재미나게 단숨에 읽어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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