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밋빛 인생 - 2002 제26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정미경 지음 / 민음사 / 2002년 5월
평점 :
품절


연인과 헤어지고 버스를 타고서도, 밥을 먹다가도, 한강을 보다가도 운 적이 있는지요?

이 소설은 흑백의 글씨들을 넘어서 오색찬란한 이미지를 그려내는 문체이다. 이 글에 호평을 하는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이야기가 '감각적인 문체' 여서 재빠르게 읽기를 강요한다고 하지만 난 읽는 도중 도중 잠시 '읽기'를 멈출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많은 연상작용이 일어났기 때문이랴....한때 버스 안에서 울던 기억들과..한강 벚꽃 나무 아래에서 엉엉 울던 기억과 밥을 먹다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던 기억, 갑자기 모든 사람들의 말이 들리지 않던 기억.. 그런 것들이 끊임없이 떠올랐기 때문...

'하기야 프랑스의 핵실험이나 아프간 사태같은 것으로 싸우는 부부는 없겠죠. 너무 사소해서 도무지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구분이 안되는 일로 다투는 거 아닙니까?'

아마도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소설이 시뮬라시옹 시대를 비판하건 이미지만이 남은 인생을 조롱하건...이 말만큼 기억하고자 했던 말은 없었다. 소설이건 영화이건 얼마나 보편적인 감정에 어필했는가가 '대중성'을 얻을 수 있냐를 가늠하는 잣대이라는 데선 이 대목에서 어떤 연인이 어떤 부부가 '맞아맞아' 하면서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너무 사소해서 도무지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구분이 안되는 일들....남는 것은 서로에 대해 1센티 더 깊어진 보이지 않는 골....

'시간속에서 바래지 않고 간절함속에 후광마저 얻게 되는 것은 다만 기억이다.추억만이 영원할 뿐'

'메멘토'의 기억의 단지 10분마다 기억하지 못한다고 비웃지만 우리의 기억은 단지 1년 혹은 10년이라는 시간동안 서서히 왜곡되는 것일뿐 차이가 있을까. 아마도 그 기억마저도 붙들고자 난 아직도 사진첩에 넣어서 한장 한장 넘기며 혼자 몇 년전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아날로그 사진을 좋아하는 것 같다. 같이 있으면 '왠수' 같기만 하던 연인과 1개월, 1년.. 헤어져 있다보면 남는 건 때론 '애뜻함' 과 '그리움' 이 될때..하지만..누구도 알고 있다. 그게 현실이 되면 또다시 '왠수'가 된다는 걸... 그래서 첫사랑은 다시 만나지 말라고.....

'사람들이 입는 건 청바지가 아니라 리바이스의 자유로움이며, 들이마시는 건 담배가 아니라 말보로의 마초 이미지다'이다.

아마도 튼튼한 바지를 원해서 청바지를 샀을 때가 있었을테고....헤어진 연인을 잊고자 담배를 피우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과연 난 사랑하는 사람에게 원하는 건 그일까....그가 즐겨듣는 힙합 음악, 유머스러움, 노랗게 브릿지한 머리에서 비롯된 이미지일까...있는 그대로의 그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얼마나 모호한 표현인지....

'그들은 대중에게 `뻘 같은 일상'을 잊게 해주는 현란한 영상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뻘같은 일상이라...난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어제와 똑같은 일상'.. 이었는데 '뻘' 같은 질퍽하고도 회색빛의 그런 일상이라고 말해주다니....사랑을 하면 세상이 다 아름다워 보인다고 하던데.....어느 순간 삶이 '뻘' 같이 된다면 '사랑' 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연인이 있던..없던...

“인생은 30초를 지나서도 꿈틀거리고 끈적거리고 소금 냄새를 풍기며 자꾸만 감겨오는 지독한 것”

이젠 인생을 뻘에 비유하다 못해 꿈틀거리고 끈적거리고 소금 냄새 풍기는 것이란다. 때론..아니 종종 그렇게 생각할 때가 많다.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무엇이 그렇게 첫단추를 잘못 끼기만 하는 것인지..하루에도 몇 번이나 '누가 옳고 그른지도 모를' 그런 일로 소모적인 감정 싸움을 하다 남는 게 그런...'꿈틀거리고 끈적거리는 소금 냄새' 중에 하나일 수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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