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이 멈추는 곳, 라오스 - End of Pacific Series 2
오소희 지음 / 에이지21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71년 출생.
연세대 경영학과와 광고회사를 두루 거쳤으나
한 번도 삶에 안착하지 못하다.
이십대 후반 계룡산 자락에 삼 년간 정주하며
자연을 알게 되고
아이를 낳아 유년을 두 번 살면서
비로소 삶에 닻을 내리다.
- 지은이 오소희

77년 출생
연세대 전파공학과 연구원 생활을 했으나
한 번도 삶에 안착하지 못하다.
이십대 후반 홍천 자락에 삼 년간 정주하며
자연을 알게 되고
아이를 낳아 유년을 두 번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삶에 안착하지 못하다.
- 독자 김소현

+++

재수없어서, 샀다는 게 맞는 말일게다. 자고로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라고 했다고, 두 권씩이나 사줬으니 떡을 대체 몇 개나 준 거란 말인가. 터키와 라오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와 <욕망이 멈추는 곳>이라니. 요즘은 여행만 갔다 오면 모두 승려가 되고 시인이 되나 보다. 그런데 승려의 수와 시인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는 여행기만큼 증가한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으니 여행은 여행이고 삶은 삶인가보다. 작가 오소희 역시 승려나 시인이 되었다는 소리는 없으니 이 여행기 역시 새까만 손 때가 낀, 초상권이 뭔지도 모르는 동남 아시아 아이들과 아낙들의 사진들과 현실을 약간 비틀고, 겸손한 척 하는 싯구 몇 개 집어넣고,

비로소 삶에 닻을 내리다.

따위의 작가 소개를 하는 작자일 것이라는 딴지, 를 걸면서 읽었다. 너와 내가 처한 상황이 다른 바 없는데, 네가 기껏 두 개의 나라(물론 미얀마와 다른 나라 여행을 했다고도 했다.)를 두어 달 여행해놓고 감히 <삶에 닻을 내리다> 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가 하는 딴지 말이다.

그녀가 말하는 바람과 욕망이 멈추는 곳은 터키와 라오스에만 있는 게 아니다. 나는 매일 매일 한국 땅, 강원도 홍천 시골에서 마주하고 있다. 이곳은 축구공도 필요 없다. 마을 입구에 가면 우연하게도 둥굴게 성형된 우레탄폼이 하나 있는데 물구덩이에 젖어서 굴러가지도 않을 때까지 아이들은 신나게 공놀이를 한다. 나뭇가지는 그들에게 칼이 되기도 하고, 총이 되기도 한다. 큰 놈의 비밀 장소라는 계곡 바위 사이에 숨어있는 가재를 잡아서 튀겨먹기도 하고, 풍덩이를 바위 위에 놓고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나의 다섯 살 난 아들내미는 강물만 보면 목욕하는 줄 알고 새끼손가락만한 고추를 다 드러내놓고 놀고, 동네 중학생 형들마저 미쳐 옷을 안 챙겨왔다고 하고는 중지 손가락만한 고추를 드러내놓고 물놀이를 한다. 그곳에는 대형 파도풀도 없고, 수영모를 쓸 필요도 없다. 있을 거라곤 고추들 뿐이다. 이 평온한 광경은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라, 여행의 한 단면이 아니라, 나에겐 삶이다. 그래도 바람은 나를 어디론가 데려다 주지도 않고 욕망이 멈추지도 않는다. 나는 여전히 나의 사타구니와 가슴을 가리고, 계곡에서는 수영복을 입지도 않는데 서울 나들이 때 파란색 땡땡이 비키니를 할인한다고 샀다. 그리고 D 야외 파도풀장에 입장료를 내고 가족 나들이도 갔다. 그러니깐, 나는 이 시골에 와서 공자왈, 맹자왈 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삶에 안착하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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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란 의도적으로 길을 잃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행위니깐요. 당신이 이들의 불우함으로부터 당신의 자리가 우월하다는 것을 깨닫는데 그친다면 여행의 힘은 오래가지 못할 거예요. 이들의 존재가 쉽게 당신을 일으켜 세웠듯, 그들의 존재는 또 쉽게 당신을 넘어뜨리겠지요. 당신의 질문은 그 너머에 있어야 해요. 내 삶은 어찌하여 훨씬 더 나은 조건 속에서도 초초해하는가. 끊임없이 더 많은 원하는가. 쉽게 지치고 자신과 불화하는가. 그 이유에 대해서 말이에요. 진정한 여행의 힘, 그것이 주는 깨달음이란, 떠나 있을 동안만 당신을 부축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리로 돌아간 뒤에도 당신을 부축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해요.
[페이지 133]

그녀의 여행기가 다른 여행기와 다른 점은 바로 이 구절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의 딴지, 는 이 지점에서 질투가 되었다. 여행에서의 성찰이 여행의 시간과 공간에서 그치지 않고 일상의 시간과 공간 속으로 연속성을 가져야만 할 텐데, 일상으로 복귀하면 여행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기억들은 희미해진다. 그래서 자꾸 기억하려고 일상에 안주하지 못하고 여행을 가려는 방랑벽이 생기는 것이다. 그녀는 그 위험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여행기는 희망적이다.

++++

그리고 이 책은 분명 육아서이다. 단지 한국에서 어린이집을 보내고, 저녁에 이마트에 같이 장보러 가고, 주말에는 생태 학습을 하거나 부모와 함께 영어를, 이라는 레파토리의 육아서가 아니라 축구공 하나 챙겨들고 친구를 찾으러 가고, 마리화나 들은 아침 식사를 아이와 같이 먹기도 하고, 라오스 아이들과 영어로 3살짜리 아이가 대화를 한다는 육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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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깐 이 책은 여행기이면서, 육아서이면서, 일기이다. 이제 그녀는 굳이 짐을 싸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 그녀의 세 번째 여행기가 나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녀가 정말 삶에 닻을 내렸다면 일상이 여행이고 여행이 일상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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