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신화의 해명
신연우 지음 / 북스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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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문명 자체가 악을 포함하고 있는 선이기 때문에 우리 인간 사회에 늘 악은 선과 함께 있다고 제주도 신화는 말하고 있다.


한국 신화라는 단어에만 몰입되어서 해명이라는 단어를 미처 못 봤다.

우리나라 신화와 전설과 설화가 적혀있는 한국판 <이솝 우화> 내지는 <그림 형제 이야기> 또는 <그리스 신화>나 <북유럽 신화>를 생각하며 책을 기다렸다.

책을 받아보고는 솔직히 실망했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알고 싶었던 전설, 설화, 신화들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이야기를 논하는 논문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걸 어떻게 읽지?'

나의 우려는 이 책을 같이 읽은 분들로 인해 사라졌다.

정해진 분량을 같이 읽고 요약하고 관련 책이나 이야기들을 찾아보고 함께 나눴던 분들로 인해 복잡해진 내 머릿속이 맑아졌다.



책의 제목처럼 이 책은 한국 신화에 대해 연구하고 그것이 어떻게 지금까지 전승되어 왔는지에 대한 것이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사라진 우리 고유의 이야기가 바다 건너 제주도에 살아남았다는 것에 감명받았다.

북한에 남아 있을 이야기들이 합쳐지면 그 시대를 이해하는데 지금보다 가속도가 붙지 않을까?


신화라고는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것과 곰과 호랑이가 백일동안 마늘만 먹다 호랑이는 도망가고 곰은 견뎌내어 인간이 되었다는 것밖에 몰랐던 나에게 이 낯설면서도 신선한 신화들이 무당의 입을 통해 구전된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신화는 상반되는 것, 모순적인 것이 공존하는 것이 우리 현실 세계라고 말하는 서사 문학인 것이다.


조선시대 초기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러나 <삼강행실도>에 보이는 여성의 고난부터 여성의 지위가 전보다 낮아졌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그리스 신화의 신들 이름은 줄줄이 외우고 수시로 그 책을 들여다보며 인간사를 해석하면서도 정작 우리의 신화와 우리의 신들에 대해서는 엄청 무지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책을 읽는 사람으로서 정말 반성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대별왕 소별왕도 나는 이 책으로 처음 알았다.

우리의 신화는 모두 아이들 동화책에서만 찾을 수 있었다. 그 외에는 이 책처럼 전문가 수준의 해설서들만 존재하는 거 같았다.

우리 신화도 그리스 신화 못지않을 텐데 어째서 알 수 없는 걸까?



그럼에도 우리의 신화는 후세로 이어지고 있다.

많은 작품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잃어버렸거나 잊고 있던 우리의 신화를 찾아내어 발전시키는 것이다.


K-신화, K-전설, K-설화로 우리도 미래인들에게 그리스 신화 못지않게 읽힐 거라 믿고 싶다.


우리의 신화는 아름답지 않다.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에서도 잔혹함이 담겨있다.

이는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녹록지 않다는 것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알고, 스스로를 지키고, 스스로를 발견하지 못하면 진정한 영웅이 될 수 없다는 걸 신화는 이야기해 준다.


결국 인간은 스스로를 극복해 내야만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된다.

신화는 나 자신을 알고, 이겨내고, 극복해야 한다는 진리다...

우리의 신화는 그것을 극복해낸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담은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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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달새 언덕의 마법사
오키타 엔 지음, 김수지 옮김 / 비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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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무엇보다도 강해. 하지만 말로 하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는 것도 있지. 말은 때때로 마법보다 더 큰 기적을 일으켜."



비슷비슷한 힐링 소설들이 많이 나와서 이 책도 그중에 하나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서포터즈가 아니었다면 읽지 않았을 거다.

비슷한 이야기들에 지쳐서 놓칠 뻔했다.



세상에 마법이 존재하고 마법사와 마녀가 존재한다면 어떨까?

그들의 존재를 알면서도 그들을 배척하지 않고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인간들

그 인간들의 소원을 가려가며(?) 들어주는 <종달새 언덕의 마법사>.







"네 안에 망설임이 있기 때문이야."



팔에 입은 화상을 없애 달라고 찾아온 메이에게 마법사 스이는 소원을 들어줄 수 없다고 말한다.

메이도 모르는 메이의 망설임은 무엇일까?




"나와 함께한 시간, 넌 행복했니?"



반려묘를 두고 먼저 떠나야 하는 주인의 마음은 어떤 걸까?

말이 통하지 않지만 서로에게 위안이 되어 주었던 그들 사이..

화가는 반려묘를 그린 그림으로 전시회를 열게 되고, 자신의 마지막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애쓰지만 그 그림은 어딘지 비어 보이는데...

반려동물을 키워보지 못해서 알지 못하지만 그 애틋함을 잠시 느껴볼 수 있었던 시간.



결과가 하나일지라도 받아들이는 방식은 하나가 아니다.


소설을 쓰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려고 <종달새 언덕의 마법사>를 찾아온 하루코.

스이는 이 소원을 거절한다.

하루코는 실망하지만 이미 일주일 치 예약을 한 민박집에 묵기로 한다.

소원을 이루지 못했지만 일주일 동안 종달새 마을에 머무르기로 작정한 하루코.

하루코는 과연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마음은 무엇으로 치유할 수 있을까?

약혼녀를 잃은 형의 마음을 찾아주기 위해 노력하는 동생의 마음이 어여쁘다.

마법사.

마녀.

마법.

내가 좋아하는 단어다.

이 신비로운 기운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이야기였다.

다섯 편의 이야기가 몽글몽글하게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그래서인지 마법이 어딘가 존재해있다고 믿고 싶다.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마법에 마음이 훈훈해진다.

다들 소원을 가지고 마녀를 찾아왔지만 결국 답은 그들 자신에게 있었다.

마법이란 결국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를 깨닫게 해주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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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코워커
프리다 맥파든 지음, 최주원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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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쩌나, 마음에 안 드는데. 거북이 인형 때문에 오싹하다. 손가락에 묻었던 검붉은 물질은 도대체 뭐였을까? 왠지 꼭..... 피 같은데.



얼마 전 <네버 라이>를 읽고 뒤통수 맞은 느낌 때문에 신작 <더 코워커>를 기대했다.

먼저 읽으신 분들의 평이 거의 전작보다 더 좋았다고 해서 기대가 더 컸다.

사무실 옆자리의 동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살육전(?)을 상상하며 읽는데 어딘지 아슬아슬하다.

거북이 밖에 모르는 회계사 돈.

회사에서 인기 있고 영업력 만랩인 내털리.

바로 옆자리에 앉은 두 사람.

시계처럼 정확한 돈이 출근을 하지 않자 걱정을 하는 내털리.

그러나 돈의 부재를 회사 사람들은 아무도 걱정하지 않는다.

계속 신경 쓰느니 돈의 집으로 그녀를 찾으러 간 내털리는 낭자한 피를 목격한다.



내털리의 이야기와 돈이 절친에게 쓴 메일이 번갈아 가며 이야기를 이끈다.

돈의 메일이 등장할 때마다 내털리에 대한 반감은 늘어난다.

하지만 속지 말아야지.

이 작가님 반전의 여왕이니까!



그나마 분명한 사실은 내가 돈에게 최악의 문젯거리가 아니었다는 것. 돈을 미워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그 사람은 둔기로 내려쳐 죽일 정도로 돈을 미워했다.




밝혀지는 증거마다 내털리를 지목하는데 내털리 혼자서 그럴 리 없다며 부정하는 데 왜 그리 못 미더운 건지~

그래도 발신번호제한으로 오는 전화는 이 살인사건의 범인이 따로 있을 거 같은 느낌이라 전혀 범인 같지 않은 범인을 의심하는 눈초리로 인물 분석까지 해가며 읽어야 했던 <더 코워커>




"거짓말이나 하는 나쁜 년 같으니라고." 그가 씩씩댔다. "개똥 같은 회사도 망해버려라."




이러니 내가 내털리를 믿을 수 있겠냐고요!

제3자들을 통해 드러나는 내털리라는 인간의 평소 모습은 거짓말, 괴롭힘, 속임수로 점철된 삶.

하다못해 부모도 내털리가 살인을 저지르고도 남을 거라 믿는 상황이니 웬만해선 내털리를 믿을 수 없다!

그러나 점점 의심스러워지는 또 한 명의 용의자가 내 눈에 띄었으니...

내 촉이 맞나?

내 예상은 적중.

그러나 그 이유는 정말이지 생각도 못함!

이것은 이열치열?

무섭다.

아무리 정당한 복수라 해도 이건 아닌데...

이럼 <네버 라이>의 그 인간들하고 뭐가 다르지?

프리다 맥파든의 시그니처인가?

보통 사람들 틈에서 순수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상한 사람들의 이야기.

이래서 잔인한 장면 하나 없이 잔인한 거 같다.

<더 코워커> 역시 읽고 나면 속이 편치 않다.

결국 죽은 사람만 불쌍한 거지.

거 참.

주인공을 응원할 수 없는 이야기는 또 처음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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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잃어버린 심장
설레스트 잉 지음, 남명성 옮김 / 비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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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는 말 잘 들어. 중국, 한국, 일본과 관련 있는 거면 그 어떤 것이든 가까이해서는 안 돼. 그쪽 나라말로 대화하는 걸 보거나 관련한 이야기가 들리면 즉시 자리를 뜨는 거야. 알았어?"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를 읽으며 가장 소름이 돋았던 것은 모두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침묵하고, 외면했던 일들이.

내가 아니니까, 나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나한테는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침묵이 그들이 그렇게 침묵하고 외면하는 사이에 그들의 일상을 앗아가버렸다.

그러다 나에게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그때야 울부짖지만 이미 세상은 내가 아는 세상이 아니게 된다.


<우리의 잃어버린 심장>은 중국계 미국인 엄마를 둔 버드의 이야기를 통해 또 다른 <시녀 이야기>를 보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2024년 12월 3일 우리나라에 내려졌던 계엄령을 자꾸 상기시켰다.

그때 국회로 뛰어갔던 수많은 사람들이 아니었더라면 지금 나는 이 평화로운 일상을 누리고 있을까?

그때 계엄이 통과되었다면 지금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80년대 최루탄 가스를 들이마시며 눈물 콧물 흘리며 매일이 데모의 연속이었던 그 시절에도 침묵하지 않은 사람들 덕에 나는 평온함을 지니며 살았다.

이 작품을 읽는데 자꾸 그때의 두려움이 떠올랐다.

어른들은 말해주지 않았다. 그저 조심히 다니라고, 말 함부로 하지 말고, 데모대 근처에는 얼씬도 말라고 했다.

하지만 어른들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우리는 우리끼리 정보를 공유했다.

언니 오빠가 있는 아이들을 통해서 깨어 있는 부모를 둔 아이들을 통해서 우리는 현실을 배웠다...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익숙해진다.


'위기'의 순간이 지나고 전과 같은 듯 다른 시간이 시작되고 움츠려 있던 세상이 조금씩 다시 돌아가기 시작할 때 그 원인을 '중국'에 돌려버린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소리 없이 퍼진 그 불신은 새로운 차별을 만들었다.

조금이라도 정부에 반하는 일을 했거나, 할 예정이거나, 했다고 의심받는 사람들의 아이들이 사라진다.

경찰이 와서 아이와 부모를 떼어 놓는다. 아이들은 위탁가정에서 위탁가정으로 소리 없이 움직이고 부모와 아이의 끈은 끊어진다.

이것은 국가가 저지르는 명백한 '납치'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에 대해 알려 하지 않고, 이야기를 들어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왜?

나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니까...







버드가 10살 때 엄마가 집을 나갔다.

어린 버드는 엄마가 집을 나간 이유를 어렴풋이 느끼지만 제대로 알지 못한다.

버드와 아빠는 엄마랑 살던 집을 나와 대학에 딸린 자그만 아파트에 살게 된다.

엄마에 대한 말은 절대 꺼내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다.

하지만 버드는 엄마의 흔적을 찾아내고 엄마를 찾아 떠난다.


위기의 시대를 지나 이선을 만나고 가정을 꾸리면서 마거릿은 정원을 가꾸고 버드를 낳아 기르면서 시를 쓴다.

언젠가 책으로 나올 거라 믿은 그녀의 바람대로 시는 출판되었다. 100권만 팔린 시집.

그래도 그녀는 행복했다. 그 시에는 정원일을 하면서 느낀 감정과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생기는 감정들이 적혀있었다.

하지만 전혀 다른 곳에서 그녀의 시가 떠올랐다.


우리의 잃어버린 심장을 돌려달라.

우리의 잃어버린 심장은 어디에?

우리의 잃어버린 심장을 잊지 말라.


작가의 의도가 아니라 그것을 보고, 읽고, 듣는 사람들에 의해 해석되는 게 바로 예술이다...

마거릿의 시는 이제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그로 인해 그들은 버드를 빼앗기지 않으려 마거릿이 떠났다.

그리고 그녀는 수많은 아이들을 잃은 부모들의 이야기를 모은다.


버드는 엄마를 찾아 나서면서 비로소 세상을 보게 된다.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유 없이 발길질을 당하며 속수무책으로 폭력에 시달리는 여자의 모습.

그 모습을 보면서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들의 무관심을...


그들에게 새로운 시대가 올까?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언론이 기능을 잃은 책 속의 세상과 내가 발 딛고 있는 세상이 너무나 닮아서.

나에게 일어나지 않으면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무관심이 결국 알게 모르게 내 일상을 쥐고 흔든다는 걸 깨닫게 된다.

잘못된 정보를 진실로 믿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잃고 누군가가 들려주는 소리만 믿게 되는 세상.

그 세상에 마거릿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이 외면하고, 믿지 않았던 진실들, 아이를 빼앗긴 부모들이 절절함을..


묵직한 울림을 남긴 이야기였다.

수많은 정보 속에서 정말 가치 있는 정보를 알아보는 눈을 길러야겠다.

누군가가 내지른 소리가 터무니없이 들리더라고 그것에 관심을 가져야겠다.

무니없어 보이는 일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고, 그걸 깨달은 순간은 이미 너무 늦었다는 걸 이 이야기가 진심을 다해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난 네게 그 두 가지가 모드 있어 행복해. 미래를 돌보는 보호자면서 이미 여기 있는 것을 지키는 전사니까.



버드가 이름처럼 자신의 세상을 보호하는 전사가 될까?

언제까지 엄마를 기다릴 소년으로만 남을까?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던 시절은 끝났다.

미국은 조금씩 이 이야기 속 세상을 닮아가는 중이니까..


우리는?

우리는 온전히 벗어났나?

책을 덮고도 이 불안함이 사라지지 않는 걸 보면 확실한 건 없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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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 인간
염유창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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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 아홉 명과 생존자 여덟 명 중 어느 쪽을 선택하겠습니까?


<불특정 다수>라는 작품을 재밌게 읽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으로 염유창 작가를 다시 만났다.

작품을 읽고 나니 많은 장치들을 잘 숨겨 놓은 영리한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의 이야기가 기대되는 작가로 저장해야겠다.


묻고 싶다.

극한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 목숨을 구하기 위해 나는 어디까지 갈 수 있나?

나 살자고 누군가를 희생시켜야 하는 상황에서 나는 과연 어떤 결정을 하게 될까?


평온한 일상에서는 답이 정해져 있다.

하지만 극한 상황에 닥치면 옳다고 생각했던 일들조차 무용지물이 된다.

동물적 생존 본능은 이성을 마비 시키니까.


1년 전 포레그린뷰 아파트에서는 산사태로 지하 주차장이 침수되어 인명 피해가 있었다.

1명이 죽고 여덟 명이 구조됐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트라우마를 엮어 책으로 내고 싶어 하는 심리상담센터 원장은 각종 범죄의 반성문을 대필해 주는 작가 기시윤을 콕 집어 대필을 의뢰한다.


시윤은 생존자들과 집단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죽은 전경식의 죽음에 묘한 위화감을 느끼게 되고,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예민해지는 생존자들을 보며 전경식의 죽음에 의문을 품는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는 죽음.

그런 찰나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던 남정운이 자살했다는 비보를 듣는다.

전경식의 죽음은 사고사일까? 타살일까?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의혹이 해소되기는커녕 점차 부풀어 오르며 뒤죽박죽되고 있었다.

재난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하기에, 일반적인 인터뷰보다 힘들 거라 예상하긴 했다. 그렇지만 죽을 사람을 뽑는 투표와 살인이란 키워드가 튀어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점점 침수되는 지하 주차장.

비상 엘리베이터는 8명이 정원이다.

9명의 사람들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내가 그 상황에 처한다면 나는 나를 희생할 수 있을까?


극한 상황에 당면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게 바로 사람의 행동이다.

<마이너스 인간>은 그런 상황을 간접 경험해 볼 수 있게 해준다.

상황 속에 내던져진 게 아니라 상황이 끝난 후에 모든 것이 다 덮였다고 생각되는 그 이후에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을 돕는 책을 집필하기 위함이라는 설정에 단체 인터뷰라는 상황이 생존자들을 뭉치게 했지만 결국엔 그들이 묻고 살았던 진실이 터져 나오게 만들었다.


그들이 보이는 끝없는 이기심.

죄를 묻기 위한 또 다른 죄.

그 어디에도 정상적인 것은 없는 데 정상적인 척하는 사람들의 모습.

진실되어 보이며, 그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못할 거 같은 사람도 단체라는 익명성이 주는 힘 앞에서 자신의 껍질을 벗어버린다.


생존자들이 일말의 양심을 가지고 살아가길 바랐던 기윤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살기 위해 모른 척 외면했던 사람들의 마음도 이해되었다.

그래서 더 갈등하게 된다.


또 다른 의문이 든다.

선택지를 주었다면 기꺼이 자신을 희생했을 사람이 있었을까?

과연 누가 그럴 수 있을까?



나는

생존자들이 아무런 자책없이 잘 살아내고 있다는 그 사실이 진짜 소름 끼쳤다.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그렇게 전처럼 살아내고 있다는 그 사실이 진정으로 두려웠다...



몰입감있는 이야기와 함께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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