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황후 ㅣ 시대물이 이렇게 재미있을 리가 없어! 3
션 타오 지음, 김원희 옮김 / 북스피어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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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황후> 낭만적인 제목에 이끌리고, 시가 마법이 되고 무기가 된다는 설정에 매혹되어 읽고 싶었다.


제1 황자를 제치고 후계자가 된 제2황자 테렌의 후궁을 모집하러 황궁에서 사람이 온다.

3황자의 마법이 기근으로 허덕이는 도시에 과일나무를 만들어내는 걸 보고 웨이는 가족들과 마을 사람들의 주린 배를 채울 방법은 후궁이 되는 길임을 깨닫고 후궁 모집에 참가한다.

하지만 시골 무지렁이 출신이 후궁으로 간택될 일은 없다. 웨이는 자신을 뽑아 테렌 황자의 먹잇감으로 바치라며 매달린다.

그렇게 궁에 들어간 웨이에게 꿈같은 일이 벌어진다.

테렌이 웨이를 선택했다!


이렇게 전개되는 이야기를 읽으며 테렌의 포악함에 이유가 있고, 웨이가 그 이유를 찾아서 해결하고 둘이는 꽁냥꽁냥 잘 살았다는 익숙한 이야기를 그렸었다.

그게 클리셰에 길들어진 나의 뇌가 내린 오판이었다는 걸 읽어가면서 느끼는데 전율이 흐른다.


벼농사꾼의 딸. 인 웨이.

화려한 궁에서 후궁들끼리의 암투에서 살아남으려 애쓰는 전개를 상상했던 나는 강적을 만났다.

테렌은 전혀 로맨스 주인공이 아니었고, 시도 때도 없이 사람을 기분 내키는 대로 죽이는 망할 인간에 밤마다 웨이를 고문하는 짐승 같은 놈이었다!

뒷배도 없고, 아는 이가 아무도 없는 궁궐에서 온갖 방해를 받아 가며 하루하루 살아내기도 힘든데 밤마다 죽음 직전까지 가는 고문을 당하는 웨이!

이 이야기는 어디로 향할까?






"남자들은 우리 같은 사람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죠 ㅡ 어쨌든 옥좌에 앉지도, 조정에서 정사를 논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이니까요. 하지만 바로 그 과소평가야말로 우리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이름이 시의 작자로 오르지는 못하더라도, 우리 역시 세상을 바꿀 힘을 갖고 있어요. 다만 그림자 속에서, 우리만의 방식으로 움직일 뿐이죠. 첫 번째 왕조 때부터 늘 그래 왔어요."



궁중암투, 폭군, 배신, 견제, 아무런 배경 없는 어린 여자아이가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과정은 곧 인 웨이의 성장과정이기도 하다.

웨이는 자신의 필경사를 통해 글을 배운다.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궁인들에게도 글을 가르친다.

웨이가 글을 배우는 이유는 단 하나.

폭군 테렌을 죽이기 위해서다.


그를 죽이기 위해서는 심혼시를 써야 한다.

심혼시는 사랑의 시다.

자신의 적을 죽이기 위해서는 적에 대해 모든 걸 알아야 한다.

그리고 진솔한 대화를 나누어 그의 본심을 알아내야 한다.






이것은 내가 쓴 사랑의 시이자, 내가 쓴 살해 주문이었다.



700페이지가 넘는 이야기지만 가독성이 좋다. 

익숙한 이야기 같으면서도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된다.

하루의 먹거리를 걱정해야 하는 촌구석에서 자란 웨이는 황궁에 있는 사람들과는 태생이 다르다.

다 가진 사람들의 걱정이야 권력 유지와 가문의 영광이겠지만 웨이는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했었나.

'시'가 마법이 되고, '시'가 죽음의 주술도 되는 세계에서 웨이는 테렌을 죽일 심혼시를 써 내려간다.

그리고 테렌의 과거가 하나씩 발견될 때마다 독자는 희망을 갖게 된다.

둘이 모든 걸 극복하고 잘 살아가는 해피엔딩을.


그러나 예측하지 못한 전개라는 게 <시인 황후>의 매력이다.

평범한 여자아이가 금지된 지식의 세계에 발을 들이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를 갖게 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권력을 맛을 알아가는 웨이의 마음에 이는 변화도 그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가늠이 안 되는 상태로 마지막을 달리는 기분이 쫄깃하다.

멋진 시가 축복이 되기도 하고 살기를 띠기도 하는 세계.

문자가 힘이 되는 세계.

그 안에서 권력을 독점해온 남자들에 맞서 글을 배우고, 시를 지어내는 웨이의 모습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내는 인간의 의지를 담고 있다.




독특한 배경을 창조해 내고

색다른 엔딩을 만들어 낸 션 타오의 매력은 판타지를 판타지하게 만들어낸 것에 있다.


글의 힘을 

마음을 담은 글의 힘이 어떤 위력을 갖게 되는지를 <시인 황후>기 보여준다.

진실을 담은 시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오로지 진심을 다해 시를 써야만 마법이 발생한다.

그래서 이야기를 읽고 한동안 마음이 멍해졌다.

웨이가 내린 결정을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기에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오른 한 소녀가 품은 원대한 꿈은 이루어질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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