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들
플로렌스 냅 지음, 강아름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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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운명에 영향력을 발휘할까?

표지부터 세 갈래 길을 뜻하는 <이름들>은 세 개의 이름이 세 개의 삶을 그려내는 모습이라 인상적이었다.

처음 만나는 작가의 글은 늘 설레지만 이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어떻게 이런 소재를 생각해냈는지 감탄했다.


의사 집안의 아들에게 대대로 이어지는 이름 '고든'

코라는 아들의 출생신고를 하러 가는 중에 딸 마이아와 대화를 나누며 아들에게 '고든'이라는 이름을 물려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9살 딸 마이아가 생각한 이름은 '베어'

코라가 생각한 이름은 '줄리언'이다.

코라가 아들의 이름을 베어로 지은 경우와 줄리언으로 지은 경우 그리고 고든으로 지은 경우의 세 가지 삶이 7년의 간격으로 그려진다.





위험하단 생각 안 들어? 그녀는 말하고 싶었다. 우리 아들 이름을 고든으로 지었다가 당신처럼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안 드냐고. 하지만 말할 수 없었다. 정확히 그걸 노린 것이었으니까.



친구 모임에서는 최고의 남편감인 '고든'

의사로서는 환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고든'

집에서는 가정폭력범이자 가스라이팅 범죄자인 '고든'


베어의 삶에서는 아버지가 사라진다.

베어라는 이름을 가진 순간 아이의 이름으로부터 어떤 힘이 생긴 거 같다.

아들의 이름이 베어라는 사실을 안 순간 아빠 '고든'은 폭주했고 아기 배어의 이름은 그 폭주를 막을 힘을 가진 느낌이었다.

엄마와 누나를 지킬 수 있는 한 방의 운명.

그러나 짧고 굵은 삶...

이 삶에서 코라는 정원사가 되고, 마이아는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소도시에 정착했고 베어도 꿈을 접고 가정에 정착했다.



줄리언의 삶에선 어머니가 없다.

외할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줄리언에게 할머니의 친구 키언은 아버지 같은 존재로 남는다.

아버지의 피가 자신의 DNA에 낙인을 찍은 거 같은 느낌에 늘 자신의 인생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서는 줄리언.

그로 인해 자신의 가정도 잃을 지경인 줄리언.

이 삶에서 마이아는 늦게나마 자신의 일을 찾아간다.



고든의 삶엔 양친이 모두 존재한다.

대를 이은 직업인 의사가 되진 못했지만 숫자를 가지고 노는 일로 잘 나갔던 고든.

아버지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엄마의 잘잘못을 상상해 내던 어린 고든은 어른이 되어 알코올 중독자로 잘나가는 증권맨으로 살지만  자동차 사고 이후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마이아는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 의사로서 폭력의 징후를 읽어내며 환자들을 보살피지만 정작 엄마를 구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건 오랜 시간 마음에 자리 잡은 '공포'라는 감정이 현실을 외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코라는 이 삶에서 가출을 감행한다. 하지만 늘 되돌아온다.

고든은 악랄함의 끝을 보여준다. 소름 끼치는 수법들을 벗어나지 못하는 코라가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가 되는 아이러니한 감정을 겪게 된다.








고든이 고야의 그림 앞에서 각성했을 때 그는 같은 이름이지만 다른 삶을 선택했다.

고든은 고든이 되지 않기 위해 영리한 싸움을 했고, '고든'으로부터 엄마와 누나를 지켜냈다.


<이름들>은 가정폭력에 멍든 사람들이 치유되지 않은 상처로만 남을 것인지, 그것을 극복하고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갈지 선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더라도 상처는 딱지의 진채로 마음 어딘가에 남는다.

그러다 비슷한 경우를 보거나 같은 일을 당하는 사람들을 빠르게 알아본다.


코라가 가장 큰 피해자이기는 하지만 나는 마이아가 가장 애달팠다.

차라리 어린 베어, 줄리언, 고든은 그 과정을 지켜보지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그 상흔은 그의 인생 어디에나 따라다닌다.

하지만 마이아는 그 모든 것을 지켜보며 자신과 동생까지 지켜냈다. 

그녀의 정체성은 어쩜 '고든'때문에 남자를 기피한 결과가 아닐까.



책을 읽는 내내 '악랄한 고든'이 따라다녔다.

그의 교묘함이 그의 폭력이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어떤 삶을 살아내던 '악랄한 고든' 같은 사람이 가족 안에 있다면 결코 그 그늘이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고든 역시 어떤 면에서는 피해자였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면 더 악랄해지는 법이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엘리트일수록 더 주도면밀하게 폭력을 은폐한다.

코라의 모든 것을 뺏어버린 고든의 교묘함 때문에 속에서 천불이 일고

내 마음에서 살인이 일어나는 충동을 느꼈지만 이상하게도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느낌으로 남는 작품이었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선택이 따른다.

옳은 선택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는 삶의 태도다.

고든으로 살더라도 '악랄한 고든'이 되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야말로 폭력을 피해 갈 수 있는 길일 것이다.


'만약에'라는 설정은 다른 삶을 부여했지만

그들을 괴롭히는 사건과 사고에서 무사하지 못했다.

그러나 힘겹지만 극복하고 이겨내는 그들의 모습에서 삶의 태도를 보게 된다.


부모로부터 무엇을 물려받던 선택의 몫은 바로 나의 책임이다.

지금의 나는 내 선택에 의한 모습이지 부모의 탓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마음과 태도로 나의 인생을 살아갈 것인지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는 작품이었다.


부록에 담긴 인명 사진이 인상적이다.

이름처럼 살아냈던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아련하게 오래 남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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