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민승남 옮김 / 엘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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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결코 자매가 되지 않을 터였다.



처음 읽었을 때는 모든 인물에 대해 생각하려 애썼다.

재독하면서 내 시선은 조지와 앤, 어쩌면 앤에게 모두 집중하게 됐다.

모든 걸 가진 사람이 어째서 모든 걸 버렸던 걸까?


1968년 미국은 인종차별과 베트남 전쟁과 히피들의 시대였다.

부유한 상류층에서 자란 앤은 대학에 와서 조지와 룸메이트가 된다.

'자신과 최대한 다른 세계에서 온 여학생과 같은 방을 쓰게 해달라고 특별히 요청했었던' 앤과의 생활 동안 조지는 그녀와 최대한 마주하려 하지 않았다.


극과 극.

서로의 대척점에서 상대를 판단하는 몫은 조지였다.

우리는 조지의 시선으로 앤을 바라볼 뿐이다.


혼란했던 사회

엘리트 의식에 쩐 특권층의 모든 걸 부정했던 앤.

그런 앤을 바라보며 다른 갈등을 느꼈던 조지.


그들은 싸우고 헤어졌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 살인사건으로 마주하게 된다.






앤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재판이 끝나고 앤의 변호사가 언론과 한 인터뷰가 앤에 대한 그 시대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80년대 한국은 매일이 데모의 연속이었다.

그들 중에 앤이 있었을 것이다.

조지도.

그들은 지금 어떤 사람으로 살고 있을까?


앤은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안다. 앤이 쏴버린 그 경찰이 평소에 어떤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보였는지 모르지만 뼛속까지 인종차별주의자였다는 걸.


비굴하지 않고 당당한 앤의 모습을 보며 나는 오히려 조지의 삶이 비굴해 보였다.

모두가 소신껏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자신의 신념을 저버리지 않고 나아가는 사람은 드물다.

조지는 사람들에게 앤에 대한 변명을 하려 했지만 그들을 이해시키지는 못했다.

자기 자신도 앤에게 어떤 부분에서는 그들과 같은 생각을 가졌기에 연락을 끊고 살았던 거였으니까.


앤이 거리의 노숙자를 도와주려 했을 때 그들 부모가 한 번쯤이라도 온정을 베풀었다면 앤의 삶은 달라졌을까?

자꾸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외면했고, 앤의 간절함을 무시했다.

그 따사로운 마음을 한 번쯤 어루만져 주었다면, 그래서 그들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같이 했다면

앤은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결국 판사도 앤을 올바르게 보지 못했다.

특권층의 눈으로만 보았지.


상류층인 그들 부류는 앤을 인정하지 않았고

조지와 같은 부류들은 앤을 빈정거렸으며

다른 부류들은 그녀를 안줏거리로 삼았다.

그녀를 진정 이해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외로워진다.


이 작품을 또 읽게 된다면

그때는 아마도 조젯을 조금 더 이해할지도 모르겠다.


읽을 때마다 생각이 달라지는 책이 있다.

시그리드 누네즈의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가 그런 책이다.



표지의 두 여자가 자꾸 눈에 들어온다.

우리의 젊음은 바로 저 모습이었을 거다.

어느 순간 두 사람의 모습은 달라져갔을 것이다.


앤을 아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이런 말이 떠돌았을 거 같다.


'적당히 좀 해라. 그만하면 니 뜻은 전달됐으니까.'

자기 신념이 강한 사람에게 적당히란 없다..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살아내고 부르짖었던 수많은 '앤'들에게

이해받지 못했던 수많은 '앤'들에게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는 시그리드 누네즈가 보내는 러브레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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