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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단어가 스며드는 순간 - 세상을 이해하는 힘을 키우는 국어 수업
황선엽 지음 / 빛의서가 / 2026년 7월
평점 :

제목이 참 감성적으로 잘 지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에 단어가 스며드는 순간... 내 인생엔 이런 순간들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단어는 그저 그것이 말하고자 하는 뜻만 잘 새기면 되었고, 정해져있는 규칙 같은 거라 생각했다.
가나다를 외우듯
누가 가르쳐 준 말을 옹알이하면서 배워가듯
태어나는 순간부터 들려온 내 모국어에 쓰이는 모든 단어들은 그렇게 큰 생각 없이 들려오고, 외워오고,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단어에도 유래가 있고, 과거가 있었다.
사람이 태어나듯, 단어도 생명을 부여받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그걸 이 책을 읽으며 새삼 깨달았다.
내가 흔하게 쓰던 단어들이
내가 대강 알고 있던 단어의 뜻만으로 사용했던 단어들에게 그런 과거가 숨어 있었다니...
나는 왜 여태 단어들에게도 생명이 있고, 역사가 있다는 생각을 못 해봤던 걸까..

인간은 단어로 세계를 인식합니다. 그리고 반대로, 단어가 인식에 영향을 주기도 하지요. 인식의 결과가 단어인데, 반대로 단어가 우리들의 인식에 영향을 주는 상호작용 속에서 우리는 오늘도 단어를 사용하여 세계를 분별하고 판단합니다.
서방이라는 단어가 품은 과거에서 조선시대에 남자가 장가를 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몇 년씩 처가 살이를 하거나 아예 데릴사위로 들어가서 처가의 것을 물려받는 게 자연스러웠다는 사실.
서쪽 방에 사위를 머무르게 했던 풍습대로 김서방, 박서방, 이서방이라 부른 것이 아내가 '님''자를 붙여 남편을 '서방님'으로 불렀고, 그것이 매제, 아래 동서로, 시누이의 남편, 시동생을 뜻하는 말로 확장되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어릴 때는 '서방님'이란 단어를 자주 들었다. 일가친척이 모인 자리에서 오고 가는 '서방님'이라는 호칭이 나는 참 헷갈렸다.
왜 여자 어른들은 모두 남자 어른들한테 서방님이라고 부르는지 알 수 없었다. 물어봐도 설명해 주는 어른도 없었고..
서울에서는 그런 호칭이 별로 없었지만 시골에 가면 저론 호칭을 쓰지 않아서 할머니들에게 혼나는 어른들을 자주 보았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어릴 때 자주 했던 놀이였고, <오징어 게임>으로 전 세계의 놀이로 퍼져나간 이 놀이가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서 유래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꽃이 없는 시절에 홀로 피어나는 꽃이 무궁화다.
무궁화는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한자어다.
100일 이상 피고 지고 또 피는 무궁무진한 무궁화.
나라 잃은 백성들의 마음속에도 무궁무진하게 독립의 기세를 담아낼 꽃이 필요했을 것이다.
꽃이 없는 계절에 홀로 피고 지고 또 피어나는 그 기개를 닮으라고 나라꽃이 되었나 보다..
고구마가 옛사람들에게 감자로 불렸다는 사실도 흥미롭고, 을씨년스럽다가 을사년에서 나왔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1785년의 기근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하니 을씨년스럽다를 날씨 표현으로만 알고 있었던 나는 이 말에 '보기에 살림이 매우 가난한 데가 있다'는 뜻을 보강시켰다.
<인생에 단어가 스며드는 순간>을 읽는 동안
단어 하나에 담긴 세계사적 맥락과 문화적 반전을 알게 되고,
자주 쓰는 단어들의 숨은 이야기를 알게 되고,
단어를 통해 인간의 사고와 사회 변화를 깨닫게 된다.
이런 지식을 채워가는 시간이 즐겁다.
아무 생각 없이 써왔던 말들에 담긴 역사가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많은 걸 깨닫게 한다.
우리나라 말에 대한 연구가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글자를 배우기는 쉬워도 그 뜻까지 알아가려면 좀체 어려운 게 우리나라 말이다.
그건 우리 조상들이 한자를 오래 사용했기에 그것에서 이어지는 단어들의 뜻을 배우지 않으면 소중한 우리의 것을 사장시키는 것과 다름없음이다.
교과목에서 한자를 빼어버렸을 때 이런 생각을 못 한 사람들이 교육부에 존재했다는 게 통탄할 일이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간다면 우리나라 근현대 소설에도 번역이 필요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