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를 목욕시키는 여자
화바이룽 지음, 김소희 옮김 / 서사원 / 2026년 5월
평점 :
예약주문




"당신에 대한 감정이 죽었어. 어쩌면... 당신만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감정이 죽은 걸지도 몰라."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같이 사는 남편에게 이런 말을 듣는 건 어떤 기분일까?

시나리오 작가이자 소설가인 화바이룽은 처음 만나는 작가님인데 마음에 새겨야 할 작가님이 되었다.

문체가 아주 맛깔나서 미스터리한 이야기임에도 시트콤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읽으면서도 오만가지 감정이 한꺼번에 든다.


한 가족이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그려내는 이야기는 익숙한 이야기다.

하지만 어떻게 이야기하냐에 따라 독자는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얼마 전 읽었던 <마지막 모든 두려움>처럼 익숙한 이야기를 색다른 감각으로 펼쳐 놓으면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느껴지듯 <코끼리를 목욕시키는 여자>역시 뻔한 이야기를 다른 느낌으로 빚어냈다.


정팡에게 감정이입하며 읽다가도 두 아이의 깜짝 발언은 냉정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서먹한 엄마 아빠의 사이를 눈치챈 아이들은 재빠르게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엄마 보다 더 빠르게 대처한다.








사생활 침해죄, 그리고 친고죄. 글자 그대의 뜻은 알아도 그 둘이 얽히니 법률의 미궁 속에 빠진 느낌이었다. 사생활 침해라니... 끝내 밍런의 비밀을 알게 된 대가로 내가 얻은 거라고는 후회와 죄책감뿐이었다.



가족과 책임, 인간관계의 무게를 상징하는 코끼리.

그 코끼리를 목욕시킨다는 제목은 정팡이 이 모든 과정에서 보여주는 모습이다.

밍런이 느꼈던 그 감정이 어떤 것인지 느끼면서도 시종일관 냉정맞은 말투는 정말 등짝 스매싱을 불러일으킨다.

자신만의 은신처를 만들어놓고 가정에는 최소한의 시간만을 내어주는 남편.

눈치 빠르고 애어른 같은 아이들.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자기 보다 남편에 대해 더 많이 아는 남편의 옛 연인.


어디 마음 둘 데 없는 정팡의 모습이 오갈 데 없는 여자들의 모습 같아서 답답하면서도 애잔하고

냉혹해 보이지만 또 그렇지도 않은 밍런을 보면서 이 남편 놈 연쇄살인마구나!!!라고 생각해 버린 나의 쓸데 없는 촉.

그래서 정팡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도망치라고 소리쳤지만...


평범한 관계 속에 감춰진 뒤틀린 욕망과 무관심.

남편이 남긴 비밀을 마주하게 된 정팡은 진실을 외면하는 대신 받아들이며 삶을 다시 시작한다.

그래서 난 정팡이 좋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지만 그만큼 지극히 특별한 사람이라서...


인물의 내면 묘사가 탁월하고 미스터리적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가족, 사랑, 책임, 인간의 본성을 섬세하게 이야기해 나가는 작가님의 필력 때문에 ㅋㅋ 거리며 읽다가 뭉클해지고, 그러다가 긴장 백배가 되었다가 드러난 비밀 앞에서 잠시 멘붕이 온다.


나라면.

내가 정팡이라면?

나는 과연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남편의 비밀을 알게된 이후, 정팡이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은 결국 자신을 획복하는 과정이 된다.

그래서 '코끼리를 목욕시칸다'는 제목은 무겁고 거대한 관계를 씻어내는 은유처럼 느껴진다.



소설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인간사는 내가 가보지 않은 상황을 간접 체험하게 해준다.

<코끼리를 목욕시키는 여자>를 읽으며 이혼의 간접 체험과

내 남편이 살인자라는 현실의 고통을 느낌과 동시에 그가 남긴 비밀과 마주하면서 '인간위 본능'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밍런이 솔직했다면 어땠을까?

정팡은 그것마저도 품어줄 사람이었는데 밍런은 그걸 몰랐을까?


미스터리인데 시트콤 같다.

그래서 글맛이 참 좋다.

앉은 자리에서 호로록~ 읽었으나 리뷰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뭉그적댔다.

맛깔나게 쓰고 싶었지만 이야기를 읽고 복잡해지는 마음을 잘 표현하기 어렵다.

생각은 많아지지만 결코 어디 한 군데 심심했던 곳이 없는 작품이라 인상적이다.



이 작가님 작품들을 다 읽어 보고 싶다.

재미와 감동이 아니라 

재미와 철학적 질문을 아주 잘 던져주는 작가님이다.


심리소설과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안성맞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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