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간 실격·사양 (모노 에디션)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모노 에디션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난주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6월
평점 :

나는 타인과 거의 대화를 나누지 못했습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던 것이지요.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광대 짓이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나의 마지막 구애였습니다. 나는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했지만, 그러면서도 인간을 도저히 떨쳐 버릴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글은 시와서의 <꽃을 묻다>를 통해 처음 접했다.
술에 취해 정신이 명료해지는 그 순간에 쓴 글 같다는 감상을 남겼던 거 같다.
<인간 실격>은 다자이 오사무의 이름에 늘 따라다니는 작품으로 읽어야지 하고 있다가 이제야 읽게 되었다.
그가 죽기 전 써 내려갔던 글을 읽으며 자신의 자서전을 남긴 거 같다는 생각이 진하게 든다.
부유한 집안의 도련님.
그러나 그 도련님의 마음은 허약하기 짝이 없고, 언제나 두려움에 쌓여있다.
인간에 대한 두려움. 그것은 아마도 글 중간에 슬쩍 언급한 하녀들에게 당한 몹쓸 짓들이 그의 연약한 영혼에 남긴 상흔이 아니었을까.
그것을 잊기 위해 그는 광대짓으로 자신을 위장시켰고, 아무렇지 않게 보이려 익살꾼을 자처했을지도 모르겠다.
아아, 인간은 피차 서로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전혀 잘못 보고 있으면서 둘도 없는 친구라 여기고, 평생 그걸 깨닫지 못한 채 상대가 죽으면 눈물을 흘리면서 조사(弔詞) 따위를 낭독하는 것이 아닐까요?
여자와 술.
너무 일찍 알게 된 것들.
자상해 보이지만 엄격했던 아버지.
그를 현실에 살지 못하게 했던 것들이다.
그의 인간에 대한 두려움은 완고한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그 사람의 아버지가 나쁜 거예요."
마담이 넌지시 그렇게 말했다.
"우리가 아는 요조 씨는 아주 순수하고, 세심하고, 술만 마시지 않았으면, 아니지, 술을 마셨어도....신같이 선한 사람이었어요."
전쟁 시대에 예민한 시절을 보냈던 그에게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어떤 의미였을까?
요조를 통해 그는 인간이 잔인함과 순수함을 동시에 지닐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자살시도는 일본의 전쟁이 패전으로 나아가는 걸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연인은 죽고 혼자만 살아남은 요조의 마음은 패전국에서 살아남아 모든 것들을 짊어지고 살아내야 했던 사람들을 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
술로만 잊히는 세상.
술이라도 있어야지만 현실을 버틸 수 있는 요조는 그 시대의 모든 일본인들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나라가
국민에게 지운 그 한없는 짐을 나눠지고 힘겹게 버텨내야 했던 그 시절의 사람들을 다자이 오사무는 끌어안고 버티다 사라지는 길을 택한 게 아닐까...
그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로서 더는 버티기 힘들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수많은 생각들과 감정들이 그를 버티지 못하게 만들었을 테니까...
<사양>

"이 아이는 나오지가 한 여자에게 은밀히 잉태케 한 아이예요."
다자이 오사무가 죽기 6달 전에 쓴 이야기 <사양>.
저무는 해라는 뜻이다.
몰락한 귀족의 딸 가즈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와 함께 한적한 시골로 이사 온다.
전쟁에 나간 남동생을 기다리며 조용한 생활을 하던 그때가 가즈코에겐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약 중독자인 동생이 돌아오고 어머니의 건강은 나빠지고, 집안의 가세는 더 기운다.
다자이 오사무는 여기서도 자살을 한다.
나오지의 행동, 그가 남긴 편지에서 다자이 오사무가 보인다.
<사양>은 다자이 오사무의 애인 오타 시즈코의 일기에서 소재를 가져온 이야기라고 한다.
다자이 오사무는 모든 걸 다 가졌지만 모든 걸 다 포기한 인간이었다.
문학만이 그를 이해할 뿐.
그의 괴로움을 누가 이해할까.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서 헤어 나오지 못한 남자.
그러나 씩씩하게 자신의 아이를 위해 살아간 여자.
아마도 그는 그것을 알고 있기에 <사양>을 남겼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 담아서 살아남을 그녀와 아이에게 들려주기 위해서 써 내려갔을 거라 생각한다.
유부남의 아이를 갖기로 마음먹은 가즈코의 결심이 혁명이라면
인간으로서 살 수 없었던 나오지의 죽음 또한 혁명이 아닐까?
그의 마음을 이해할 듯하면서도 쉽게 동조되지 않는다.
술과 약에 절어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한 작가의 변명뿐일지도..
애당초 너무 많이 가지고 있어서 생긴 부작용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