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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구두
조조 모예스 지음, 이나경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2월
평점 :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상황을 바꿀 수 없으면, 어쩔 수 없습니다. 생각을 바꿔야죠.
조조 모예스는 독자를 웃겼다 울렸다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작가다.
<타인의 구두>를 읽으며 웃다가, 찡하다, 열받다, 조마조마하는 과정을 매 페이지마다 겪었다.
샘은 직장에서 상사의 괴롭힘을 당하고 있고, 집에는 우울증에 걸린 남편이 있다.
실질적인 가장인 샘은 바뀐 회의 시간에 쫓겨 급하게 나오고 차에 타서야 가방이 바뀐 걸 발견한다.
가방을 되돌려주러 가기엔 시간이 없고, 자신의 검정 플랫슈즈 대신 빨간 루부탱 15cm 하이힐을 신고 거래처에서 대박을 친다.
니샤는 남편과 호텔 로비에서 만나기로 하고 스포츠센터에서 옷을 갈아입으러 가방을 보다 자기 것이 아닌 걸 알게 된다.
그날은 아무도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다.
졸지에 남편에게 버림받고, 카드도 정지당하고 펜트하우스에서도 쫓겨난 니키는 운동복위에 샤워 가운을 걸치고 버텨보지만 냉랭한 남편은 그녀에게 땡전 한 푼 주지 않고 그녀를 내친다.
극과 극의 삶을 살던 두 여자를 이어주는 매개체는 바로 구두다.
그 구두를 바꿔 신은 날 한 여자는 굵직한 계약을 따내고, 한 여자는 모든 걸 잃었다.
이 이야기는 어떻게 흘러갈까?

"강인함. 진정한 강인함은 반드시 남의 요청을 들어주는 것만 뜻하지 않습니다. 강인함은 견딜 수 없는, 참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날마다 찾아가는 겁니다. 강인함은 온몸의 세포가 견디기 힘들다고 외쳐도 그 병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겁니다."
작품 속 인물들 속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하고 싶었다.
니샤를 엿 먹인 재수 없는 남편 놈 등짝 스매싱을 날려주고 싶었고
샘을 괴롭히는 사이먼의 면상에 사이다를 뿌려주고 싶은 충동을 참기 어려웠다.
하지만 나 같이 굴면 하수다!
샘과 니샤와 그 주변인들은 더 멋진 걸 준비했다.
이 극악한 상황에 서로를 돕는 사람들을 보는데 가슴이 뜨거워진다.
니샤는 구두를 찾아오면 위자료를 주겠다는 칼의 말에 구두를 찾아 나서고
샘은 구두를 돌려주러 갔으나 문이 닫힌 스포츠 센터 때문에 돌려주고 싶어도 돌려주지 못한다.
그러다 니샤는 샘을 찾아내고 회사로 찾아가 이렇게 소리친다.
내 구두 어쨌어. 이 도둑년아!
잠들기 전 조금만 읽고 자야지 했다가 날을 새워 버렸다.
새벽이 밝아오는데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서 다시 읽고 싶었다.
이들과 헤어지기 싫어서...
서로 어려운 상황에서 마주한 그들의 연대는 마음을 찡하게 했다.
나에게 니샤 같은 일이 생긴다면 나는 재스민처럼 니샤에게 손을 내밀 수 있을까?
내가 샘이라면 당장 은행 이자를 갚을 돈을 앤드리아에게 줄 수 있을까?
니샤를 위해
니샤에게 위자료를 받아주기 위해 똘똘 뭉쳤던 그녀들은 자신만의 능력들을 발휘하게 된다.
나는 그 과정이 정말 좋았다.
평소에는 몰랐던, 위기 상황이나 특별한 상황에서 발휘되는 재치와 끼와 기발함과 용기를 발견할 때 시쳇말로 '소름 끼치게' 좋았다.
니샤처럼 안온함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을 버리고 백조처럼 발장구를 쳐야만 했던 삶도
샘처럼 가족의 기대에 맞추느라 자신을 잃어버린 삶도 결국은 나 자신만이 끊어낼 수 있다.
얽매이는 삶을 살았던 두 영혼이 바뀐 구두와 함께 연결되어 각자의 삶을 지탱하는 힘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그들을 응원하며 나도 즐거웠다.
소설을 읽는 순기능 중에 남의 삶을 통해 나를 돌아보기가 있다.
<타인의 구두> 속 인물들에게서 다양한 감정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항상 작은 친절을 베풀어야겠다.
그 친절이 나를 어떤 모험 속으로 이끌지 모르니까.
작가의 힘든 시간을 걸쳐 세상에 나온 이 작품 속엔 작가가 독자들에게 건네고 싶은 분위기가 있다.
인생은 완벽하지 않고, 언제나 예상치 못하게 흘러갈 수 있지만 그 변화가 꼭 나쁜 건 아니라는 것.
지금 변화의 한복판에서 마음고생을 하는 분들이 있다면 니샤와 샘을 소개해 주고 싶다.
적어도 그들을 통해 '살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을 테니.
그리고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기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