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윌북 클래식 브론테 세 자매 컬렉션
에밀리 브론테 지음, 박찬원 옮김 / 윌북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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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새끼였어요, 나리. 제가 모두 알고 있지요. 모르는 거라고는 어디서 태어났고 부모가 누구고 처음에 어떻게 그 돈을 벌었는지, 뭐 그런 것뿐이지요. 헤어턴은 깃털도 나기 전에 둥지를 뺏긴 종다리 새기 신세고요! 그 불쌍한 아이는 자기가 어떻게 속았는지도 잘 모르지만 이 교구에서 알 사람은 다 안답니다."

몇 년 전 영국에 갔을 때 시골길을 드라이브하면서 변화 무쌍한 날씨를 보며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풍경 속에서 <폭풍의 언덕>을 떠올렸다.

이런 배경이니 그런 작품을 쓸 수밖에 없었겠네..라는 나의 생각은 <폭풍의 언덕>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열망을 가지게 했으나 이제야 이 작품을 읽게 되었다.


내 기억 속 <폭풍의 언덕>은 업데이트되지 못하고 내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캐서린과 히스클리프만 생각나고 나머지 인물들은 깡그리 잊은 채로 나는 그들의 사랑이 방해받고, 헤집어지고, 슬픔으로 점철된 이야기라고 느끼고 있었다.


윌북의 <폭풍의 언덕>은 두께로 나를 놀라게 했다.

이렇게 두꺼운 책이었나? 싶은 마음 뒤로 뭔가 고전이 주는 고질적인 장황함이 떠올랐다.


'워더링 하이츠'는 히스클리프와 언쇼 가문이 중심이 되는 공간이고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는 린턴 가문이 거주하는 저택으로 워더링 하이츠와 비교되는 세련되고 안정적인 분위기를 가진 공간이다.

공간은 인물들의 성격과 신분 차이 그리고 그들의 운명을 상징하는 거 같다.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에 세 들어온 록우드는 듣는 입장으로, 록우드의 집을 관리하는 딘 부인이 화자다.

딘 부인의 이야기로 독자는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어린 시절부터 그들이 살아온 세계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어릴 때 읽었던 동화(?) 같은 이야기 속에서 히스클리프는 내게 강인한 인상을 주었다. 그의 맹목적인 사랑만이 남았고 그가 벌인 짓거리는 깨끗하게 사라졌다.

그래서인지 히스클리프라는 인물을 정말 처음 만나는 느낌이었다.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광적인 집착이 과연 사랑인 걸까?를 읽는 내내 의심했다.


안정성이 결여된 가정에서 잡초처럼 자란 아이들.

뻐꾸기 새끼는 보호받지 못하고 학대당하지만 그 속에서 캐서린이란 빛을 얻는다.

이 세계에서 다른 사람들과 교류가 있었다면 이들은 다른 사랑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히스클리프를 데려온 아버지가 죽고, 힌들리는 그를 하인으로 내몰고 동등함이 사리진 곳에서 히스클리프는 증오심을 키운다.

한창나이의 캐서린에게 린턴은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빛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오빠와 히스클리프와는 다른 '격' 있었던 린턴.

부드러움과 다정함을 느낀 캐서린의 마음이 다른 곳으로 향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고집스럽고, 자유분방한 성격의 캐서린에게 린턴의 다정함과 따스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다른 이와의 교류 없이 큰 저택에 갇혀 살아가는 그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줄 사랑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들을 이끌어 줄 어른도 없었던 세계에서 그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펼쳐야 했다.


부자가 되어 돌아온 히스클리프는 그 자체로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에게 남은 건 배신과 증오라는 감정뿐이었으니까..


그들의 자기 파괴적인 모습을 보면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지 고민했다.

하지만 '사랑'을 빼고는 그들을 생각할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제 자네 조언은 필요 없어." 린턴 씨가 답했습니다. "안주인의 성품을 알면서도 내가 괴롭히도록 자극했지. 게다가 사흘 동안 어떤 상태였는지 전혀 알리지도 않았고! 인정이라곤 없군! 몇 달을 알아도 저 몰골이 되진 않겠어!"


그들을 지켜보고, 그들에게 조언을 하며 상황을 정리하려 했던 건 가정부였다.

적절한 배움도, 사랑도, 인생도 살아 보지 못한 가정부..


그래서 그들의 감정은 날것 그대로 표출되고, 모든 감정들이 성숙해지지 못하고 쏟아져 나왔다.


에밀리 브론테 자신도 캐서린과 다름없는 생활을 해왔다.

그녀에게 가장 위로가 되었던 건 자연이었다.

그녀가 자연에서 얻은 영감이 작품 속에서 폭발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그녀의 인물들은 모두 날것의 감정들을 토로한다.


히스클리프가 파괴하려던 건 뭐였을까?

그렇게 다 뺏고 나서도 지키지 못했던 건 뭐였을까?

왜 나는 히스클리프에게서 공허함만 느낄까.



어떤 작품은 감정이 성숙하지 못한 시절에 읽어서 제대로 해석되지 못한 것들이 있다.

<폭풍의 언덕>은 격렬한 사랑이라는 느낌으로만 남은 작품이었다.

다시 읽어 보니 성숙되지 못한 '사랑'이 불러온 '참사'로 해석된다.


사람답게 사랑하지 못한 사람들의 광기가 오래도록 폭풍 속에서 살아가는 거 같다.

그들이 사는 세계가 너무 단절되고, 외롭고, 거칠어서 가여웠다..


그래도 어린 캐서린과 헤어턴이 그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갈 거라 생각하니 조금은 위안이 된다.

폭풍은 가라앉았고, 증오와 아집은 사라졌다.

그들에겐 새로운 감정을 배우는 일과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는 시간이 남겨졌다.

그래서 워더링 하이츠는 모든 문을 열어두었고, 그 안에서 따뜻한 불빛이 비친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그곳에서 새로운 연을 이어갈 그들이 삭막한 독자들에게도 빛이 되어 준다..


히스클리프는 결국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나는 아직 완전히 깨닫지 못했다.

아마도 다음에 이 작품을 또 읽게 된다면 그때는 조금 느긋한 마음으로 다르게 읽어갈 테고 그제야 나는 알게 될 거 같다.

그들의 진정한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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