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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읽는 밤 - 그림과 문장과 삶을 엮은 내 영혼의 미술관
이소영 지음 / 청림Life / 2025년 12월
평점 :

그림과 문장에 푹 파묻혀 함께 놀다 보면, 무용해 보이는 그 시간들이 우리를 사유의 우물에서 헤엄치게 할 것이다.
무용한 시간들이 우리의 내면을 더 깊고 넓게 만든다.
그림에 관한 책들을 많이 봐왔지만 <그림 읽는 밤>은 새로운 구성이 돋보이는 책이다.
한 점의 그림, 그 그림에 대한 사색, 작가의 이력, 그리고 그림과 어울리는 문장. 그리고 독자의 감상을 써보는 공간까지.
보고, 읽고, 쓰고를 한 번에 해 볼 수 있는 책이다.
그림 앞에서 본인이 느낀 점을 저자의 사유를 통해 더 확장시키고, 저자가 엄선한 문장들을 읽으며 나만의 문장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분리되어 있지 않아서 좋다.
그래서 한 점 한 점 보고, 읽으며 나만의 이야기를 써 볼 수 있어서 또 다른 글쓰기의 힘을 느끼게 된다.
맘에 드는 그림에서 느낀 나의 감상을 적어본다.

나에겐 한 권의 책이 필요하다.
내가 들고 있는 책은 읽기용이 아닐 수도 있다.
모든 시선을 차단할 수 있는 가림막이 아닐까.
시선으로부터
관심으로부터
간섭으로부터
단호하게 차단하는 서늘한 눈빛.
나만의 길이 있는 사람의 눈빛을 갖고 싶다.

나도 어릴 땐 그림이 취미였다.
그때 내 모습을 떠올리면 창의력보다는 정형화된 아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공상을 많이 했던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나는 늘 재미없는 그림을 그렸던 거 같다.
사람은 그리지 못했고, 늘 배경만 그렸다.
그것도 산 같고 집 같은 느낌으로.
내게 그림은 그런 것이었나 보다.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그 무엇.

물멍이 불멍보다 좋아지고 있다.
아마도 가까운데 물멍할 장소가 있어서 그런 거 같다.
맑은 물에 비치는 물그림자가 좋아서 사진을 찍지만
렌즈가 눈을 못 따라가서 항상 아쉽다.
빗방울이 떨어지면 그림처럼 평화롭게 파문이 일지 않는다.
어쩜 저 그림의 파문은 내가 미쳐 보지 못한 파문일지도 모른다..
세상엔 버젓이 보고도 못 보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싸가지 없게 생겼어."
내가 갈매기를 유심히 본 건 이 말 때문이었다.
그 신선한 충격적인 말에 선입견이 생겨버린 탓에
갈매기가 정상적으로 인식되지 않고 싸가지 없어 보였다.
말 한마디는 최초의 사물 인식을 그렇게 평생 각인시킨다.
저 말을 듣기 전까지 나에게 갈매기란 조나단 리빙스턴이었다.
이제는 모든 갈매기가 '싸가지 없다'로 각인됐다.
정말 싸가지 없는 일이다.

그림이라기보다는 사진 같다.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맡고 있는 세상에서
홀로 다른 짓을 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빛은 같은 빛인데
그 빛을 들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제각각이다.
같은 빛을 받으면서도 사람들은 제각각으로 산다.
세상의 모든 일은 평등하게 온다.
그것을 견뎌내는냐 그것에 파묻히냐는
각자의 결심이다.
누구 탓이 아니라
내 탓이오.
처음 보는 그림이 많았다.
그림과 함께 뽑은 문장들도 맘에 들었다.
내 맘대로 끄적여 본 감상은 그림과 동떨어지는 거 같다.
그러나.
그것 또한 나의 느낌이니 감상은 모두 각자의 몫.
같은 그림을 보고 같은 걸 느끼는 건 가끔은 내 감상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이렇게 내가 직접 내 감상을 써 볼 수 있는 공간이 주어져서 기쁘다.
마치 내가 이 책에 미완성으로 남은 부분을 채움으로써 마침표를 찍은 기분이다.
독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기획이 참 맘에 든다.
누군가에게 선물하기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