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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제인 오스틴 - 젊은 소설가의 초상 ㅣ 디어 제인 오스틴 에디션
김선형 지음 / 엘리 / 2025년 12월
평점 :

1796년은 제인 오스틴이 자기가 생의 굴레에 옴짝달싹 못 하게 갇혀버렸음을 처음 깨달은 해, 인생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임을 불길하게 예감한 해, 참담한 상실을 딛고도 삶은 지속된다는 걸 알아버린 해, 그만 어른이 되어버린 해였습니다.
나는 덕후기질이 없어서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 있어도 빠져들지 못한다.
<디어 제인 오스틴>을 만나고 진정한 제인 오스틴의 덕후를 만난 거 같아서 신기하다.
얼마나 좋아하면 이렇게 디테일하게 공부하고, 알아가고, 그것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까?
이 책은 제인 오스틴의 삶과 작품들에 대한 백과사전적 에세이다.
이미 뉴스레터 <제인 오스틴의 편지함>으로 독자들과 소통하면서 환호를 받았던 이야기다.
번역가로서 한 작가를 이렇게 깊게 탐구할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읽으면서도 감탄스럽다.
나는 이런 열정이 없어서 그저 부러울 뿐이다.

이 책은 제인 오스틴을 오랜 시간 번역하고 연구해온 김선형이 번역가이자 연구자이며 애호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글이다.
제인 오스틴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소설가로서의 오스틴의 문학적 성과와 작품을 번역하면서 신경 썼던 부분들을 담아내고 있어서 읽다 보면 새로운 사실들을 알아내는 재미가 있다.
어릴 때 제인 오스틴은 또래들에 비해 감정적으로 풍족한 생활을 했던 거 같다.
부모님의 지지와 형제들의 지지가 그녀가 소설가로 자랄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을 것이다.
결혼 대신 작가를 택한 오스틴의 마음엔 어쩜 결혼에 대한 동경이 숨어 있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든다.
사람은 누구나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동경과 아쉬움, 안타까움이 있게 마련이니까.
그녀의 작품에서 결혼 적령기의 여성들이 '자기에게 맞는' 남자를 찾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인 게 바로 그런 내재된 감정들이 은연중 작품에 투영된 게 아닌가 싶다.
김선형 작가는 제인 오스틴을 고전 소설 작가로 머물게 하지 않고 21세기에도 살아있는 작가로 회생시켜 놓았다.
그의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Sense and Sensibility의 어감에 대해 일반 독자가 알 리가 없을 테고,
그의 번역이 아니었다면 제인 오스틴만의 <자유간접화법>의 묘미를 알 수 없었을 것이고,
그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제인 오스틴에게 '노트북'(?)이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한 작가에 대해 이토록 상세하게 알게 되는 계기가 누구에게나 주어질 리 없다.
제인 오스틴이 시대를 떠나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를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더 잘 알게 되었다.
단지 번역만을 위해 이 모든 걸 연구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김선형 자체로 제인 오스틴에 푹 빠져 있었기에 가능한 일인 거 같다.
나는 <이성과 감성>을 읽는 틈틈이 이 책을 같이 읽었다.
그래서인지 조금 다른 번역체의 느낌을 덜 생소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성과 감성>을 읽는 내내 '가십 걸'과 '브리저튼'이 떠올랐다.
마치 누군가 내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
그것이 진정한 제인 오스틴 화법이라는 걸 여태껏 읽었던 책들에서는 느끼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의미가 있었다.
200년 전의 작품이 현대에도 통용되는 건 그 안에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래도록 회자되고 읽히는 것이다.
거기에 타 언어로 그 작품을 읽어야 하는 독자들에게 친절한 가이드를 해줌으로써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데 공헌한 책이다.
이 책을 안 읽었을 때와 이 책을 읽고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 여러 면에서 다를 것이다.
<디어 제인 오스틴>은
제인 오스틴을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는 친절한 가이드북이,
오랜 팬들에게는 새로운 점을 발견하는 기회가 되는 책이 될 것이다.
제인 오스틴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고 싶은 분들에겐 필독서일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