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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류지에 머무는 밤 - 당신이 찾던 다정한 상실
박소담 지음 / 이상공작소 / 2025년 12월
평점 :

인생을 원하는 목적지로 보내는 방법은 스스로 타자가 되는 것이다.
누군가의 마음을 엿보는 일은 흔치 않다.
솔직하게 자기 얘기를 하는 이도 흔치 않다.
꾸밈없는 글 속에서 거닐다 온 시간은 아프고, 속상하고, 분노하고, 슬프고, 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고 싶게 만들었다.
부모와 동생과 떨어진 시간 동안 그녀는 외할아버지 집에서 주변 어른들의 사랑을 듬뿍 먹고 자랐다.
아마도 그 사랑들이 지금껏 그녀의 버팀목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가끔 내 나이 때 젊은 엄마를 떠올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엄마에게 서운했던 감정들이 휘발된다.
나는 지금 이렇게 안온한데 그 나이 때 엄마의 안온하지 않은 모습이 안쓰럽다.
어린 엄마는 이혼과 두 아이의 양육을 도맡아야 했고, 자신의 꿈인 그림을 접어야 했다.
그 절망과 실망감은 두 아이에게 쏟아졌다..
모든 걸 겪어낸 사람의 눈빛엔 서로를 알아보는 탐지기가 있다.
그 모든 감정을 잘 견뎌낸 사람은 조용히 아픔을 간직한 사람에게 다가갈 줄 안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애써 외면하고 자신과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극복된 상처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 담긴 모든 감정들은 그것을 극복한 사람의 마음이다.

오늘은 차라리 우는 게 나을지도 몰라. 마음이 날씨를 닮는 날도 있었고, 날씨가 마음을 닮는 날도 있었다. 둘은 떼어둘 수 없는 사이다. 괜찮을 수 없는 일에 괜찮다고 했던 수많은 거짓말처럼.
소류지.. 예쁜 말이다.
어딘가에 있는 아름답고 조용하고 안심할 수 있는 장소처럼 느껴지는 이름 뒤엔 '늪'이라는 숨은 뜻이 있다.
작가는 이곳에서 위안을 얻고, 그림을 그리며 마음을 비워냈다.
그래서 그곳은 '늪'이 아니라 '소류지'가 되었다.
세상에 도사리고 있는 내 발밑의 '늪'
그것을 '소류지'로 바꿀 줄 아는 이는 흔치 않다.
글과 그림은 수많은 상처를 토닥일 수 있다. 감정을 덜어내기 좋은 도구다.
이 책을 읽으며 나도 몰랐던 내 마음의 깊은 상처를 떠올렸다.
내가 '늪' 속에 침잠하고 있었던 것이 아이를 잃은 슬픔을 풀어내지 못한 거라는 걸 깨달았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위로하고 다음을 다짐했지만 실제적으로 내가 잘 이해했던 말은
'자연도태'라는 의사의 냉정한 말이 아니라
"첫아이는 누구나 잃을 수 있어. 너가 자연 임신을 할 수 있는 몸이라는 걸 확인한 걸로 다행이라 생각해."라는 첫아이를 잃었던 친구의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주변 친구들이 아이를 갖기 위해 인공수정을 감행하면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는 모습을 여럿 보았던 나였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 했던, 준비도 못했던 허니문 아이는 심장이 뛰지 않은 채로 나를 떠났다.
나는 그 아이를 위해 한 번도 울어주지 못했다.
마음에 철벽을 치고 그저 외면하고 있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울고불고 괴로워하는 모습들을 보며 이해하지 않았다.
그런 경우가 없었던 시절엔 애달프게 봤던 장면들이 이제는 생소해졌다.
그 이유를 이 책에서 찾았다.
나는 그 일을 극복하지 못하고 내 안에 감춰두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다. 그것이 쌓여서 냉정한 여자가 되어 있었다..
나의 소류지는 책이었다.
읽은 책보다 읽지 않은 책들로 가득한 책방에서 발 디딜 틈도 없이 책을 쌓아 놓고 그 책 속에서 혼자 안온했었다.
그것이 상실감이었다는 생각을 이제야 해본다.
내 감정을 오롯이 들여다 보기는 어렵다.
누군가의 글 속에서 마주하는 감정들을 통해 내 감정을 알아내는 것이다.
덤덤하게
툭툭
자기감정을 내 보인 작가의 글 속에서 내 감정도 덤덤하게 툭툭 털어진다.
이제 나의 소류지를 조금 정리해야겠다.
욕심이라고 생각했던 감정이 사실은 둘러쳐진 담이었다는 걸 깨달았으니...
처음부터 혼자였던 사람은 없다. 오래 혼자였던 마음은 빈자리가 많다. 누군가의 아픔을 알아보는 진정한 어른이 되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