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양장 특별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1월
평점 :

상처를 지닌 인간이란 것, 해서 세 사람의 삶에는 해피엔딩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게 아닌가...
처음 이 책이 나왔을 때 CD가 포함되었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담겼을 것이다. 그때는 이 책을 읽지 못했고, 그 후로 마주칠 때마다 매번 다음으로 미뤄뒀었다.
이렇게 새로운 모습으로, 그리고 그 이후의 모습까지 만나려고 그랬나 보다.
1980년대와 1990년대를 아우르는 시대적 배경 때문에 시간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다.
그때 그랬지.. 라는 추억 속에서 마음에 텅 빈 공간을 간직한 세 명의 청춘을 바라보는 마음이 애잔하다..
잘나가는 배우가 되자 처자식을 버린 아버지를 가진 주인공은 담담하게 살아간다.
돈 많은 회장의 첩으로 살다 자살한 어머니를 가진 요한은 백화점 지하 4층에서 조용히 군림한다.
못생김의 대명사 격인 그녀는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뒤에 달고 다닌다.
결핍으로 뭉친 세 사람의 온순한 모습이 그 시대를 살아온 내게도 묘한 향수를 불러온다.
그때는 그랬다...
그냥 내 안으로 삭이고 무심하게 세상으로 나아갔다.
누군가에게 전가하기 보다 그냥 내 감정을 온전히 내가 소화해야 했다.
그렇게 묵묵히 나아갔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 보다 많았던 시절이었다.

갑자기 그런 기분이 들었던 거야. 이 삶을... 이 구멍투성이의 삶을 조금은 메우고 싶다는 기분... 아무도 알아주지 않겠지만....
첫 장면부터 아련한 이야기였다.
눈 속에서 만난 두 사람.
아무도 없는 카페.
크리스마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
그녀가 모든 열쇠를 쥐고 있다는 생각이에요. 이상하죠? 실은 내가 어떻게 생각했느냐 라는 문제가 아니었던 거예요. 어떤 대답을 해도 그녀 스스로 행복해질 수 없는 거니까...
나는 마지막 부분의 두 파트 이야기가 좋았다.
한 편에선 세상을 살아가는 그들이, 한 편에선 그들의 마음속에서 계속 살아가고 있는 그가...
그렇게 무언가를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외모 지상주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자본주의의 폭력성은 이제 최고치를 경신하는 중이다.
17년 전 이 소설을 읽었던 사람들의 마음에서 외모에 대한 편견은 사라졌을까?
지금 읽어도 새롭게 느껴지는 형식의 글과 툭툭 마주치는 유머러스한 부분이
눈 쌓인 차갑게 포근한 세상을 마주하는 느낌이다.
그러면서도 살을 에는 차가운 바람처럼 속을 훑는다.
이제
겨울과 눈을 보면 생각나는 작품이 생겼다.
많은 작품이 겨울과 눈을 얘기했겠지만 뭔가를 회상하게 되는 눈을 이 작품에서 만났다..
순수하고 진지했던 청춘들의 이야기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상처를 가진 사람들은 상처받은 사람을 감싸안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세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어딘가에서 오늘도 살아내고 있을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