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 클레오파트라의 남자들
조지 버나드 쇼 지음, 김연수 옮김 / 히스토리퀸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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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 (위협적으로). 그가 가면, 그대들에게는 재수 없는 날만 펼쳐지리라. 오, 내가 내 아버지만큼 잔인한 성정을 지녔다는 사실을 그에게 부끄럼 없이 보일 수 있다면, 그대가 그리 말한 것을 후회하게 해주리! 왜 그가 떠나기를 바라는가?

16살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의 만남은 스핑크스 앞에서 이루어졌다.

그 당시 16살이 지금의 16살과 같다고 생각하면 그거야말로 오산이 아닐까?


그녀는 12살에 언니가 일으킨 쿠데타로 아버지가 쫓겨나는 걸 지켜봤다.

얼마 후 아버지는 로마의 지지를 얻어 왕좌를 탈환한다.

그 과정을 지켜봤던 클레오파트라는 현대인이 생각하는 16세 소녀가 아니다.


그녀는 이미 카이사르라는 존재를 알고 있었고, 그를 통해 안토니우스의 존재도 알게 된다.

연약한 소녀의 모습으로 로마의 최대 권력자 둘을 녹여냈다.


이집트를 지키기 위해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엔 그들의 첫 만남과 클레오파트라가 기지를 발휘해 카이사르를 이집트에 묶어 놓는 과정을 그렸다.

로마인들도 이집트인들도 카이사르가 로마로 돌아가기를 원하지만 그걸 원치 않는 건 클레오파트라였다.

곁에 두고 구워삶아야지 눈에서 멀어지면 금방 제정신을 차릴 카이사르를 로마를 보낼 순 없었을 것이다.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은 클레오파트라의 속내를 모른다.

카이사르 조차도....


이 영리한 소녀는 이미 많은 걸 알아버렸고, 왕좌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남성 중심의 역사에서 그녀는 요부로 치부되고 그녀의 기지로 이집트에 발이 묶였던 그들을 한낮 사랑놀이에 정신이 팔려 속절없이 파괴된 인물로 그려냈다.


나는 이 소녀가 누구보다 냉철하고, 정치적이며, 교묘했다고 생각한다.


이 희극에서 카이사르는 그렇게 똑똑해 보이지 않는다.

그저 자기 늙은 것만 한탄하는 늙다리 같아 보인다.

역사가 말하는 그렇게 위대한 영웅이라면 클레오파트라의 속임수를 알아챘을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클레오파트라가 성장하고 똑똑해졌다고 이 희곡은 말하고 있다.

버나드 쇼의 감각도 역사의 틀을 깨지는 못했나 보다.



그가 그런 눈치도 못 챌 만큼 클레오파트라에게 빠진 이유가 뭘까?

이 희곡을 읽고, 같은 연극을 본다 하더라도 그 이유를 찾지 못할 것이다.


클레오파트라와 두 남자의 21세기 현대적 해석이 절실하게 필요한 거 같다.

이집트인들이 자신들의 마지막 파라오의 오명을 벗겨주는 연구를 부지런히 했으면 좋겠다..


카펫에 돌돌 말려 카이사르를 만나러 갔던 영특한 소녀의 꾀는 지금 생각해도 신박하다.

이런 기지를 펼칠 수 있었던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셰익스피어가 버나드 쇼 보다는 훨씬 읽기 편했다.

아마도 셰익스피어 시대가 희곡의 시대였기 때문인 거 같다.


누군가 새로운 클레오파트라를 탄생시켜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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