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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몰 프레임
조성환 지음 / 미메시스 / 2025년 6월
평점 :


조성환 작가의 <스몰 프레임>엔 두 편의 그래픽노블이 실려있다.
창조의 시간을 보여주는 <제네시스> 그리고 죽음의 시간을 보여주는 <무명 사신>
아담과 이브의 탄생처럼 먼 우주에서 무언가가 땅에 떨어지고 그것에서 거인이 탄생한다.
동물과 식물을 거리낌 없이 잡아먹고살던 거인은 외로움을 느끼고 어느 날 그의 몸에서 또 다른 거인이 탄생한다.
같지만 다른 두 거인.

과일만 먹고, 말을 하는 여자 거인에게 남자 거인은 먹을 것을 가져다주고 말을 배워보지만 지적 차이가 나는 그 둘은 서로 어울리지 못한다.
그리고 여자 거인의 몸에서 새로 태어나는 생명...
세상은 그렇게 시작한다.
아담과 이브의 공식을 살짝 비튼 느낌이 나는 <제네시스>.

건강하게 오래 살게 된 인간의 수명은 점점 늘어나고, 줄어들지 않는 인간의 숫자는 저승사자들을 피곤하게 만든다.
강제사.
의학 발달로 인해 연명되는 인간들을 강제 소환하는 저승사자의 임무를 맡게 된 신참은 사람들의 목숨을 강제로 빼앗지 못하고 인간으로 강등되고, 신참이 주고 간 신무기인 우산의 존재는 고참 저승사자 역시 감정을 누르고 있을 뿐 인간의 목숨을 강제로 뺏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는 걸 알려준다.
<무명 사신>을 보면서 이 지구상에서 공존의 이유를 모르는 종족인 인간들만 득시글해지는 현실이 보인다.
그 현실을 타개하고자 사신들은 어떻게 인간을 효율적으로 수거(?) 할지를 논하는데 그들이 말하는 모든 방법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거나 일어날 확률이 높은 일들이기에 간담이 서늘하다..
인간 세상 모든 것들이 정해진 규칙대로 가야 하는 거라면 인간이 만들어 낸 사신의 존재도 그들의 맡은 바 소임을 다해야 하는 법.
그러나 그들에게도 애당초 감정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을 상대하다 보내 측은지심이 생기는 걸까?
어떤 인간은 미련 없이 목숨을 빼앗고,, 어떤 인간 앞에서는 유예를 주는 사신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신들도 어떤 인간에게는 자비를 베푸니 저승사자라고 다를까.
창조의 이야기와 죽음의 이야기가 한 권에 담겼다.
배우 구교환과 함께 프로젝트 구상 중에 만들어진 <무명 사신> 그래서 그런지 사신의 이미지가 구교환과 닮았다.
아주 짧은 시간에 단숨에 읽을 수 있는 그래픽노블이지만 어째서인지 찬찬히 음미하게 된다.
탄생의 의미도 죽음의 의미도 깊게 생각할 나이가 되어서 그런가 보다.
<무명 사신>을 읽다 보니 타노스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넘치는 건 모자라니만 못하다고 했다.
지구는 인간종만을 위한 것이 아닐진대... 인간은 군림하기 위해 자연과 멀어지는 길을 택했다.
자연의 역습이 인간의 최대 시련이 될 때 그것은 사신들이 최선을 다해 자신들의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될 거 같다..
어딘가에서 오늘도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을 <무명 사신>
그가 고민에 빠져 생각하는 모습으로 앉아 있음에 감사해야 할 사람이 나일 수도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