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빛소굴 세계문학전집 5
오스카 와일드 지음, 이근삼 옮김 / 빛소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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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언제까지 젊음을 유지하고 있겠지. 6월의 오늘 이후로는 결코 늙지 않을 거야. 만약 반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영원히 젊음을 유지하는 게 나 자신이고, 늙어가는 게 이 초상화라면! 그렇다면...... 그렇다면......난 모든 걸 다 내놓을 거야! 그래, 이 세상에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내놓을 거야! 그러기 위해서라면 내 영혼이라도 내놓을 거야!"



소원을 빌 때는 신중히..

그러나 그렇게 신중하게 빈 소원보다는 무심결에 마음에 있는 소리가 울릴 때 그 소원은 이루어진다.

6월의 어느 날 도리언 그레이가 무심코 바랐던 소원 하나가 이루어졌다.

자신을 복제해 놓은 것 같은 초상화가 자기 대신 늙어버렸으면 했던 그 바람은 누구의 힘인지 모를 힘으로 인해 이루어진다.

도리언 그레이가 세상의 때, 세상의 악, 추함과 어리석음과 슬픔과 분노와 고통을 느낄 때마다 세월의 상처를 입는 것은 초상화였다.

나 대신 늙어가는 초상화 속의 내 모습을 두려움과 동시에 희열을 느끼며 바라보는 도리언 그레이.

그가 조금 더 영글었을 때 그 소원이 이루어졌다면 그는 다른 삶을 살았을까?

그가 헨리를 만나기 전 그 소원이 이루어졌다면 그는 다른 생각으로 살았을까?






이 그림에는 죄의 타락을 드러내 보이는 명백한 상징이 있다. 인간이 그 영혼에 가져다주는 파멸의 부단한 흔적이 있다.



스펀지 같은 사람이 있다.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스펀지처럼 주변의 것들을 흡수한다.

다만 흡수되는 것의 대부분이 사람들이 경계하는 것들이라는 게 안타까운 일이지만.

도리언 그레이에게 헨리가 그랬다.

묘하게 격동시키는 말들도 도리언의 순수함에 타격을 주고, 그를 어둠으로 이끈다.

신랄한 이야기로 그를 자극하고 그가 갈등하는 걸 즐긴다.

그날 그림이 완성되는 날 도리언 그레이가 자신의 초상화를 보며 빌었던 그 소원도 헨리 때문이다.

영글지 못한 순수함에 교묘한 불안을 조성해서 흔들리게 만드는 뱀 같은 혀.

바질이 헨리에게 도리언을 소개하지 않으려 한 이유가 거기 있었다...

죄는 죄를 부르고

악은 악을 부르고

그것에 물든 마음에 양심이 피어난다.

도리언 그레이는 결국 자기 파괴의 화신이 되었다.

그는 자기 대신 늙어가고 변해가는 초상화를 보면서 그저 회피하려고만 했다.

회피야말로 상황을 더 악화 시키는 것인데.

마흔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어떤 모습으로 나이 들어 갈 건지는 스스로의 마음에 달린 것이다.

도리언 그레이는 젊음을 얻었지만 동시에 불안도 함께했다.

그가 자신의 초상화를 매일 보며 마음을 다졌더라면 어땠을까?

젊음도

부도

명예도

권력도

그걸 다스릴 수 있는 마음가짐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도리언 그레이는 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순수한 영혼에 악의 씨앗을 뿌리는 헨리 같은 사람에게서 조언을 구한 도리언의 잘못일까?

그에게 헨리를 소개한 바질의 잘못일까?

사람은 자신을 알지 못하고

남을 눈을 통해서 자신을 보려 할 뿐이다.

그것이 도리언 그레이가 헨리를 못마땅해하면서도 그의 말을 듣고 흔들리는 이유다.

도리언 그레이가 믿어야 했던 건 자신의 초상이다.

자신의 행동에 따라 삶의 가치가 반영되는 초상을 믿었더라면 그는 다른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결국

오스카 와일드의 이 이야기는 돌고 돌았을 뿐

철학자들이 말하는 '고독'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사람의 비참한 말로가 아닐까?

헛되이 돌아다니며 사람들 틈에서 영양가 없는 시간을 보내느니

그 시간을 자신의 초상을 마주하며 삶을 올바르게 살아가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하는 시간을 갖는 것.

그것이 자신의 완성을 꿈꾸는 철학자들이 스스로를 고독하게 만드는 이유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너 자신을 알라'는 오스카 와일드식의 또 다른 버전이다.

남의 말에 휘둘리지 말고

남의 생각에 흔들리지 말고

나를 똑바로 직시하며 살라는 경고다.

휘둘리고 흔들리는 삶은 결국 내가 나를 해치는 삶이라는 걸 도리언 그레이가 말해주고 있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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