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쓸 때 내가 생각하는 것들 -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인터뷰집
애덤 바일스 지음, 정혜윤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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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예술가든 자기가 뭔가에 대한 해답을 안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는 순간 작품은 수난에 빠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냥 좋은 질문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작가들이 앉았던 자리에 앉아 내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에게 질문을 받는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애덤 바일스는 파리의 유서 깊은 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의 문학 디렉터로 일하면서 10년간 인터뷰한 작가들 중 최고의 인터뷰를 엄선해서 책으로 엮었다.


아는 작가들은 알아서 반가웠고, 모르는 작가들은 궁금해서 반가웠다.

애덤 바일스가 짧지만 임팩트 있게 작가 소개를 하는 장면이 매회 인상적이다.

그가 작가 소개를 하는 대목을 읽으면 나도 덩달아 설레게 된다. 


퍼시벌 에버렛의 유머

올리비아 랭의 고독

말런 제임스와 조지 손더스의 역사적 인물

칼 오베 크네우스고르의 소설을 빙자한 회고록

콜슨 화이트헤드와 레니 에도로지의 인종차별

하리 쿤즈루의 음악

레일라 슬리마니와 미리엄 테이브스의 실제 사건을 토대로 한 이야기

제스민 워드의 죽음

카를로 로벨리와 아니 에르노의 시간

제니 장의 두 문화 사이에 살면서 느끼는 혼란

미나 칸다사미의 가정폭력


내가 키워드로 분류한 작가들의 작품은 읽어 본 것도 있고, 아직 접해보지 못한 책들은 목록에 달아놨다.

하지만 번역되지 않은 책들도 있어서 언젠간 그분들의 작품도 우리에게 닿을 수 있기를 바랐다.

키워드로 분류하지 못한 작가님들의 이야기도 매우 흥미로웠다. 


애덤 바일스는 작가들로 하여금 이야기를 끌어내는 솜씨가 있다.

이토록 작가들이 자연스럽게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인터뷰는 처음인 거 같다.






바르도의 링컨을 읽었을 때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팁을 이 책에서 얻었다.

링컨의 이야기가 성경과 닮았다니~ 이런 생각은 작가라서 하게 되는 걸까?



책은 한 개인이 다른 개인에게 말하는 일이고, 그것이 책의 힘입니다. 그런 문학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곳에 있지 않을 뿐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요. 단지 상을 못 받을 뿐이죠.




아직도 소설이 이전 세대 때와 같은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세상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대한 레이철 커스크의 말이 인상적이다.


키르케가 꼭 인간처럼 말하는 무서운 여신이라는 정보 하나로 새로운 키르케를 만들어 낸 매들린 밀러.

한 문장에서 그토록 많은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작가의 재능이 놀랍다.



나는 세상의 작동 방식을 바꿀 만큼 거대한 힘은 없지만 경계는 설정할 수 있다.


이런 멋진 말을 한 레디 에도로지의 작품 <내가 더는 백인과 인종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는 제목만 읽어도 그 마음이 와닿는다. 요즘 내 마음 같아서는 이렇게 바꾸고 싶은 제목이다. <내가 더는 어르신들과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로.



인터뷰는 조금 딱딱하고 형식적인 느낌이었는데 이 책은 그런 모습이 없어서 좋았다.

그건 질문자의 질문이 작가의 입을 제대로 열게 만들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천편일률적인 질문이 아니라 작품을 이해하고 그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알아낸 질문자의 진심이 담긴 질문에 작가들은 저절로 자신의 이야기를 허물없이 하게 되는 거 같다.


여기 나온 작가의 책들을 모두 읽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경험일 테지만 내가 읽은 책들이 많지 않아서 많이 아쉬웠다.

구할 수 있는 책들은 구해서 읽고 나서 다시 이 인터뷰를 읽고 싶다.

작품을 읽으면서 이해하지 못했거나 궁금했던 것들을 이 인터뷰를 통해 알아낼 수 있을 테니.


책을 덮으면서 한강 작가님이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서 인터뷰를 한다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해졌다.

노벨상을 받으셨으니 이 유서 깊은 장소에서 한강의 인터뷰가 이루어져 그분이 못다 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단순히 소설을 읽는 독자로서 이 인터뷰집에 의의를 두자면

작가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시선 등을 다양한 방법으로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작가들이 작품의 소재를 찾는 방법도,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과정도 모두 개성 있어서 그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진가를 다했다고 할까.


우리에게도 이런 장소와 이런 질문자가 있는 인터뷰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내가 느낀 이 경쾌함이 어디서 오는 건지 인터뷰를 주관하는 분들이 읽어보면 좋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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