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진 산정에서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아, 정말 인생을 돌아보는 등산이구나 느끼게 돼.



등산을 좋아하는 작가의 글에서 산에 오르며 스쳐 지나간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들과 스치며 작가의 머릿속엔 그들의 이야기가 떠올랐겠지.

그래서 이렇게 책이 되었을 거라고 짐작해 본다.

4편의 이야기가 담긴 <노을 진 산정에서>는 산을 오르는 사람들과 함께하게 된다.

각자의 사연으로 산을 오르는 그들에게 '산'은 무엇을 의미할까?





ㅡ 언젠가라는 말만 하고 있으면 그 언젠가는 영원히 오지 않아요.



산을 좋아하는 남편이 같이 가자고 했던 산을 가이드와 함께 오르는 여자.

동행한 이와 가이드 사이에 뭔가 있는 거 같은 느낌.

우리가 흔하게 뱉는 "언젠가 함께 가자, 하자, 만나자, 먹자, 보자." 하는 말들이 부질없다는 걸 알게 해준 이야기.

언젠가는 이 아니라 그래 하자!라고 대답했어야 했다는 뒤늦은 깨달음..

마음이 아련해지는 에피소드였다.

곁에 있는 사람과의 하루를 언젠가로 미루지 말 것.

<우시로타테야마 연봉>



ㅡ 너한테 산은 뭐야?

ㅡ 재생의 장소


이 대화에 이 책에 대한 모든 게 담겼다.

셋이서 산에 오르곤 했던 친구들은 이제 둘이서 산에 오른다.

여기 있지 않은 한 사람은 산을 좋아했고, 그로 인해 두 사람은 등산의 맛을 알게 되었다.

노래를 하는 친구와 바이올린을 하는 친구 그리고 그들의 반주를 맡은 친구.

산 정상에서 울리는 바이올린과 노래는 두 사람의 연주였지만 보이지 않았던 친구도 함께였다.

한 사람을 두고 사랑을 느꼈던 두 사람.

그 한 사람은 두 사람의 마음을 알고 있었을까? 알고 있었다면 누군가에게 더 마음이 있었을까?

이미 답은 정해져있었을까?

산 정상에 오른 두 사람만이 그 진실을 알고 있겠지. 어쩜 그곳을 함께 올랐던 나머지 한 사람은 진작에 알고 있었을지도..

<북알프스 오모테긴자>



"다녀오겠습니다 하는 사람, 나는 다녀오세요 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말했어. 반드시 돌아와 다녀왔습니다 하겠다고 약속하라고."



산을 좋아했던 남편은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아빠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던 딸은 대학에 가서 등산 동아리에 가입한다.

엄마의 반대로 소원해진 모녀지간의 사이는 등산을 하면서 그동안 말하지 않았던 아빠의 얘기를 들려주며 녹아내린다.

아버지의 배낭인지 모르고 메고 가는 딸의 뒷모습에서 남편을 등을 보는 엄마의 마음이 애잔하다..

두 모녀의 앞으로의 등산은 행복하길... <다테야마. 쓰루기다케>


지금의 행복을 부정해서 어쩌려고. 부정한 지금이 과거가 되면, 또 그 미래의 행복도 부정하게 될 뿐이잖아.



대학 등산 동아리에서 친했던 두 사람은 소원한 관계가 되어 일 년에 한 번 엽서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 처지가 됐다.

행복해 보이고, 완벽해 보이는 모습 안에서 곪아가고 있던 감정들이 솔직했던 한 사람의 편지로 인해 봇물처럼 터져 나온다.

잘 살고 있어 보였던 친구의 삶은 힘들었고, 힘들었다고 생각했던 내 삶은 끈기를 무기로 산을 벗 삼아 용케 난관을 극복해갔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진리를 잘 보여준 이야기 <부나가타케. 아다타라산>

산들의 이름이 어려워서 버벅댔지만 무심한 듯 날렵하게 정곡을 찌르는 삶의 진실이 담긴 이야기들이었다.

저절로 산에 오르고 싶어지는 이야기들.

정말 산에 오르다 보면 내 마음이 단단해질 거 같은 느낌이다.

동네에 자그마한 산이라도 올라야겠다.

그곳에서 스치는 사람들의 삶을 나도 유추해 보고 싶다.

그러다 내 삶을 그들에게 들켜버릴지도 모르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