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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집
전경린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2월
평점 :

"가족이 이건 해라, 이건 하지 마라 하며 족쇄를 채우고 각자 가는 길에 바짓가랑이를 붙잡아서야 되겠니. 그건 월권행위지."
엄마와 이혼한 아빠가 재혼하고 낳은 아이를 데리고 효은의 학교 앞에서 기다릴 때부터 이건 막장으로 가는 열차인가? 했었다.
무슨 사연으로 이혼했고, 또 무슨 사연으로 재혼해서 낳은 아이를 전처에게 맡기는 건지, 이 무책임한 아빠라는 인간은 뭐가 그리 당당한지 첫 페이지부터 속이 시끄러웠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 전경린이라는 작가의 필력으로 이 모든 막장 모드를 완벽하게 부숴버릴 거라는 기대치를 가지고 있었다.
뭔가 시원한 한 방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나의 착각은 그렇게 첫판부터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가끔 생각한다.
내 어린 시절 최루탄 가스를 들이마시게 해줬던 대학생 언니, 오빠들은 어디서 뭐 하며 살까?
그들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을까?
어떤 모습으로?
그 궁금증에 답을 나는 <자기만의 집>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한 시대의 젊음으로서
그 사회의 부당함을 저버리지 않고 투쟁하여 승리를 이끈 주역들은 '생활'에 잠식되어 스러져가고 있었다...

진실은 실은 표면에 드러나 있는데, 보지 못할 뿐이라고 한다. 그 많은 진실들을 다 놓쳐버리고, 우린 무지와 오해속을 살아간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핏줄로 이어진 그들이 놓쳐버린 진실들은 어떤 걸까?
가족에 대한 무지와 오해를 품고 홀로 외로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될까?
효은과 엄마의 대화들을 마주하며 나는 엄마와 이렇게 자신을 다 꺼내 보이는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지 생각해 본다.
효은처럼 끝없이 물어보고 파헤쳐 보는 끈기를 나는 가졌던가?
부모의 이해하지 못할 행동들과 그들의 결정 앞에서 나는 한 번이라도 올바른 질문을 해본 적이 있었나?
없었다..
그저 원망하고, 미워하고, 탓만 했을 뿐....
이 작품이 2007년에 출간되었는데 그때 내가 이 책을 읽었더라면 나는 올바른 질문 한 개는 던져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는 그분의 마음...
아빠가 다가왔을 때 나는 반항심으로 선을 그었다.
나는 효은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덜 여물었고, 덜 성숙했다...
효은처럼 나도 아빠에게 묻고 싶었던 게 있었는데 그 답은 이제 들을 수 없다...
그냥 물어보면 되는 것을.
바로 답을 들을 수 없다 해도 그 물음은 점점이 증폭되어 결국 답을 해야 하는 이의 마음에서 말이 되어 나올 텐데 나는 그걸 몰랐다.
"타락이란, 살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며 사는 거야."
어리지만 그 누구보다 날카로웠던 승지의 이 말은 이 이야기를 읽는 모든 이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당신은 타락했나요?"
엄마와 아빠는 둘 다 타락했다.
그림에 대한 엄마의 열정과 운동권에 대한 아빠의 열정은 '생활'이라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싱크홀에 빠져버렸다.
그들의 텅 빈 마음과 공허한 삶은 그렇게 이별을 만들어 냈다.
이해하는 한 아픔은 폭력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받아들여 성숙해야 하는 순리인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사랑 보다 더한 '이해'다.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사랑이 사랑으로 남을 수 있으니까..
일찍 만났더라면 좋았을 이야기.
그러나 이제라도 만나서 다행인 이야기였다..
나처럼 기회를 잃기 전에 가족과 어긋난 사람들은 올바른 질문을 던져보길 바랍니다.
언젠가는 그 답을 들을 수 있을 겁니다.
더 늦기 전에 물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