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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앗간 공격 ㅣ 빛소굴 세계문학전집 3
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 / 빛소굴 / 2025년 1월
평점 :

그가 보기에는 아델이 페르디낭을 먹어 치웠다. 끝이었다.
다섯 편의 단편들을 마주하고 있는 시간 동안 뭔가 통렬한 기쁨과 함께 견딜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니...
마치 표지의 여인처럼 온몸의 힘을 끌어모아 달려가는 모습이 이 단편들을 읽는 내 마음이었다.
<방앗간 공격>의 프랑수아즈,
<나이스 미쿨랭>의 나이스,
<올리비에 베카유의 죽음>의 가뱅 부인,
<사브르 씨의 조개>의 에스텔,
<수르디 부인>의 아델.
이 다섯 명의 여인들은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이끌거나 수면 아래서 이야기를 이끈다.
주도면밀한 여성들의 모습을 보면서 상대적으로 어리석고, 못난 남자들이 더 또렷하게 보인다.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남자들의 그늘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자신들의 욕망을 채워갔을까?

에밀 졸라 팬들의 마음을 이해할 거 같다.
졸라는 남자들의 세계를 보여주면서 여자들의 세상을 이야기했다.
그늘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그녀들의 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아마도 그 통쾌함이 슬픔으로 느껴지는 게 아닐까?
결혼식장이 되었어야 할 방앗간은 전쟁터가 되었고,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려던 프랑수아즈의 노력은 그녀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 약혼자에 의해 어리석은 일이 되어 버렸다.
그 속 터지는 마음을 안고 나이스를 만났을 때 속에서 천불이 끓어올랐지만 나이스는 멋지게 복수를 했다. 그러나 복수는 두 번 이루어졌어야 했다는 찜찜함을 뒤로하고 가뱅 부인을 만났다.
가뱅 부인에게 마르그리트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생각나게 했을까? 그녀야말로 주도면밀하게 사건을 은폐한 걸까? 아니면 마르그리트와 짠 걸까? 올리비에도 나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올리비에가 마르그리트를 위해 나머지 생을 그림자로 살았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에스텔을 만났다. 심드렁한 그녀에게도 어울리지 않은 남자가 남편으로 곁에 있었다. 분에 넘치는 아내를 얻고도 만족하지 못하고 아이를 낳기 위해 조개를 먹어대는 남편이라니... 멋지게 아들을 선사한 에스텔 브라보!
그리고
아델.
가수 아델처럼 한 방 먹이는 재주가 탁월한 화가 아델.
이야기 속에서 그녀는 화가라는 타이틀을 얻지 않았다. 타이틀을 버리고 군림한 여제였다.
"또 한 명이 죽었어....! 아델은 페르디낭이 너무 밑으로 내려가는 걸 막겠지만, 절대로 아주 높이 올라가게 하지는 못할 거야. 그는 끝났어!"
얼마나 많은 예술가들이 남성의 그늘에서 사라졌던가!
보이는 건 그렇다.
그렇지만 아델을 보니 그들은 남자들을 먹어치운 것이다.
그들의 재능을 먹어치우고, 그들의 실력을 잠재우고, 그들의 명성을 헛되게 만들며 그들 위에 군림했다.
알고도 말하지 못하게 말이다.
진정한 승리랄밖에!
다섯 명의 여자들이
자시들만의 방식으로 시대와 싸우고 남자들과 겨뤘다.
아무도 모르는 그녀들의 승리를 에밀 졸라가 퍼뜨렸다.
진정한 졸라스러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