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선 - 뱃님 오시는 날
요시무라 아키라 지음, 송영경 옮김 / 북로드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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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워진 바다는 때로 마을에 생각지 못한 은혜를 베푼다. 이는 척박한 밭이나 갯바위에서 얻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족하여 수년간 마을에서 고용 하인으로 일하러 가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외딴섬마을에 선물처럼 찾아오는 뱃님.

뱃님이 오시면 마을은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된다.

집집마다 건강한 사람이 고용 하인으로 팔려가는 곳.

10살 미만의 아이도 손을 보태야 하는 섬.

매일 새벽 바다로 나가 먹을 걸 낚아야 하는 남자들과 매일 해초를 줍거나 밭에서 일을 해야 하는 여자들.

그렇지만 근근이 먹고살기만 하는 섬마을.

그들에게 아픈 가족은 밥을 축내는 부담스러운 존재였고, 굶주림은 그런 이들을 외면하게 만든다...





뱃님은 쌀을 싣고 지나가는 배가 섬의 암초에 걸려 좌초하는 것을 말한다.

섬마을 사람들은 그 배의 물건과 배의 파편 하나까지도 싹싹 쓸어 담는다.

들키지 않기 위해 자신들의 흔적을 없애고, 시체는 바다로 보내고 배는 해체한다.

그리고 그들은 또 다시 뱃님을 부르기 위해 소금을 굽는다...

현장 증언 사료를 기반으로 치밀하게 글을 쓰는 작가답게 그의 묘사는 세밀하면서도 군더더기가 없다.

섬마을의 특성을 잘 드러내면서도 이질감을 묘하게 잘 덮어둔다.

이사쿠를 통해 그 마을의 모든 것을 아름답게 받아들이게 하는 작가의 필력은 읽는 내내 긴장감을 고조 시킨다.

처음으로 소금을 굽게 된 이사쿠는 어른 대접을 받는 거 같아서 우쭐해진다.

그래봐야 열 살일 뿐인데 그보다 더 나이 든 아이처럼 느껴지는 이사쿠.

말로만 들었던 뱃님을 직접 보게 된다.

마을에 풍족함을 가져다준 뱃님을 보면서 이사쿠는 이 행운이 또 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사쿠의 바람대로 또 다른 뱃님이 오신다.

붉은 옷을 입은 시체들만 남은 배.

온통 붉은 천으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치장한 시체들을 태운 뱃님은 마을에 상서로운 기운으로 전해지고

그들의 붉은 옷은 여자아이가 있는 집마다 전해진다.



"인간에게 일어나는 가장 무서운 일은 마음이 해이해지는 것이야."


일본 기담집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이 이야기를 읽었다.

외딴섬마을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모든 일들을 독자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만드는 작가의 글은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두 번째 뱃님이 도착함과 동시에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그냥 보내!!!라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 마음속에서 요동친다.

그러나

풍족해서 해이해진 그들에게 그것은 또 다른 선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행운과 불운을 구분하지 못한 그들.

그럼에도 신은 불공평해 보이지만 공평하게 그들을 단죄한다.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자행되는 일들이었지만 해서는 안 될 짓을 했던 그들은 자신들의 소중한 것들을 내놔야 했다.

그래도 소멸하지 않게 안배한 신의 뜻을 그들은 또 어떻게 해석하게 될까?

모든 것이 풍족한 시대에서 그들의 굶주림이 가져온 비상식적인 행동을 왈가왈부할 수 없겠지..

어쩜 이 세상 어딘가엔 이런 섬마을이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살아남은 자들은 밤새도록 소금을 구울 것이다.

뱃님이 찾아오게 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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