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에게 죽음을 (특별판) 스토리콜렉터 2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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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 사람들이에요. 그 동네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그것도 11년 전 그 사건 이후로 계속이요. 장담하죠."



1996년 9월 6일 토비아스 자토리우스는 친구 로라와 스테파니를 죽인 혐의로 감옥에 갔다.

그리고 그 10년 뒤 토비아스는 출소했고,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이 잘 감춰두었던 과거의 열쇠를 움켜쥐고...



이 범죄의 특성은 잔인성과 범행 은폐였다.



로라와 스테파니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살인죄를 쓰고 죗값을 치르고 돌아온 토비아스 앞에는 다 허물어져가는 집과 이혼한 부모님과 마을 사람들의 냉대만 남았다. 아무도 그를 반겨주지 않았고, 그가 나타난 시점부터 마을은 뒤숭숭해지고 그의 집 담벼락은 상스러운 낙서로 뒤덮이고, 복면 쓴 사람들에게 죽기 직전까지 폭행을 당한다. 그러나 토비는 이 마을을 떠날 수 없었다. 자기로 인해 상처받고, 인생이 무너진 아버지를 홀로 두고 떠날 수 없었기에...

그 와중에 누군가 어머니를 다리위에서 밀어서 어머니는 중태에 빠진다. 이 일을 바로잡지 않고서는 그는 절대 떠날 수 없다.

현재 가장 인기 있는 배우 나탈리가 다 잊고 자신과 함께 떠나자도 해도 그가 알텐하인을 떠날 수 없는 이유였다.





이야기는 토비아스가 출소하고, 옛날 군 비행장의 기름탱크 안에서 백골 사체가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이 사건을 맡은 피아와 보덴슈타인은 타우누스에서 일어나는 범죄를 해결하는 강력반 소속이다.

사건의 복잡함도 있지만 이 두 형사가 처해있는 상황도 복잡하다.

피아는 이혼 후 새로 산 농장에 개축 신청서를 냈다가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 무허가라는 걸 알게 된다.

속아서 산 집이었다.

보덴슈타인은 25년의 결혼생활이 위기에 빠졌다. 아내가 바람피우는 현장을 목격하고 온통 자기혐오에 빠져서 수사 상황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게다가 벤케 형사는 부업을 하다 걸려서 정직당할 위기고, 자신이 수사했던 11년 전 사건을 들쑤신다며 못마땅해하던 하세는 중요한 참고인의 기록을 몰래 빼낸다.

아주 안팎으로 다들 복잡한 상황에서 문제들이 계속 발생하고, 이 마을의 이방인이나 마찬가지인 아멜리는 토비아스에게 관심을 보이며 과거의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의 유일한 친구인 티스 테를린덴으로 부터 그림 몇 장을 받는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말라는 그림엔 그날의 광경이 사진처럼 그려져 있었다...

그날의 사건에 가까워진 아멜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토비는 또다시 의심을 받는 상황에서 잠적해버린다.



마을 전체가 각자의 이기적인 이유를 핑계로 진실을 은폐하고 그를 기만했다. 그의 가게가 망하고 가정이 께지고 인생이 망가지는 것을 냉정하게 지켜보고만 있었다니!



<타우누스 시리즈>는 독일의 작은 마을로 이루어진 소도시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피아와 보덴슈타인이 이끄는 강력반이 해결해 가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 시리즈가 매력적인 이유는 대도시가 아닌 한적하고 평화로운 소도시의 한가로운 풍경에서 벌어지는 끔찍하고 잔인한 살인사건을 다루는 데 있다. 작은 사회가 가진 부조리와 그에 맞서는 사람에게 가해지는 가혹함이 잘 그려져있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역시 이 작은 마을을 몇 대째 쥐락펴락하는 테를린덴 가문과 이기적인 부모들이 오로지 자기 자식들의 죄를 감추기 위해 단란했던 한 가정을 풍비박산 시키고도 아무런 반성을 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들을 더 핍박하고, 쫓아내려 한다. 그들만 사라지면 자신들의 문제도 사라진다는 '개념'. 을 탑재하고 있다.

나는 그것이 그 어떤 잔인한 살인사건 보다 더 무서웠다.



평화롭게만 보이던 알텐하인에, 그렇게 지루하고 심심하게만 느껴지던 촌구석에 이렇듯 잔인하고 무자비한 인간들이 선량한 시민의 가면을 쓰고 살고 있었다니!



우리나라에서 현재 드라마로 방영되고 있는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은 원작과 다르게 각색되어 있지만 본판은 같다.

자신들의 이기심과 욕망과 질투와 허물을 다른 사람으로 대체하고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누군가의 삶을 망가뜨려도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모르는 사람도 무섭지만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는 진리를 또 깨닫는 거 같아서 씁쓸해진다.

얼마나 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저 집단 이기주의 안에서 희생되었을까?

이 이야기를 재독하면서 슬펐다.

첫 번째 읽었을 때는 그저 분노만 남았는데 재독하니 분노가 슬픔으로 변한다.

어째서 선량해 보이는 사람들이 이렇게 지독하게 변해야 했을까?

자신들의 허물을 덮기 위해 희생양을 찾아내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 잔인하고 무섭다.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 무리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쉽게 동조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겁으로만 표현하기 아쉽다.

집착을 사랑으로 착각하고 자신의 소유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한 사람을 인생을 망가뜨린 자의 착각도 무섭다.

어설프게 짜인 판이었음에도 쉽게 희생양을 몰아갔다.

그리고 그렇게 10년 동안 무사한 시간을 보냈던 자들에게 이제 심판의 시간이 도래했다.

옛말에 죄짓고 못 산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현재에는 죄짓고 더 잘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희망을 주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진실은 아무리 잘 감춰도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줄 안다는 것.'이다..

과거가 현재를 덮쳐오는 걸 보았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의 묘미는 바로 그것에 있다.

사건이 벌어진 현장도, 그것과 관계된 사람들도,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형사들도 모두 삶이 있다.

그 삶의 현장에서 그들이 느끼고, 겪는 일들을 간접 경험하면서 세상을 좀 더 알아가는 기분이다.

세상엔

아주 사소한 감정으로도 몹쓸 짓을 저지르게 하는 힘이 존재한다는 것.

그것으로부터 나 자신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고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어디에서건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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