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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한드라 김의 가면 증후군과 솔직한 고백 ㅣ 서사원 영미 소설
패트리샤 박 지음, 신혜연 옮김 / 서사원 / 2024년 9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4/0924/pimg_7368641354441910.png)
넌 이 학교에서 손님 같은 존재야.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말아라.
제목이 긴 <알레한드라 김의 가면 증후군과 솔직한 고백>을 읽으며 그동안 읽었던 재외 한국인 작가의 글 중 가장 이질적이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건 그들이 아주 잘 아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이민 2세대 아빠와 엄마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한국인이다.
둘 다 미국에 왔지만 미국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알레한드라 김은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라틴계 이름을 가졌고, 생긴 건 아시안이었다.
모두 중국인으로 통칭되는.
알레한드라는 백인들이 주류를 이루는 사립 고등학교에 90%의 학비 지원을 받고 입학한다.
그때 아빠가 알레한드라에게 해준 말이 바로 위의 문장이다.
흑인과 백인의 갈등과 인종차별에 대해서는 많이 알아왔지만 아시아계에 대한 인종차별엔 무지했었다.
물론 알고는 있었지만 수박 겉만 핥았을 뿐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인이지만 이름 때문에, 생긴 모습 때문에 묘한 차별을 받는다.
웃긴 건 백인들은 그것을 차별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배려라고 생각하지!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4/0924/pimg_7368641354441911.jpg)
책을 읽는 동안 수많은 이민자들의 삶이 생각났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내 동생들과 친척들의 고달픔이 떠올라서 자꾸 울컥댔다.
내가 몰랐고, 그들이 말하지 않은 그런 차별들을 그들은 어떻게 이겨냈을까?
나는 백인들이 백인이 아닌 사람들끼리 서로 다투도록 만드는 게 정말 싫다. 개처럼 싸우다 그들이 먹고 남긴 음식이나 얻어먹으라는 식이다. 가끔 이 학교 아이들은 백인과 흑인 사이에서 발생한 인종 차별만을 중요하게 보는 듯하다.
학교에서 두드러 보이지 않으려고 웬만한 건 참아버리는 알레한드라와 동네에서의 알레한드라는 180도 다르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 잔뜩 긴장한 채 보내는 학교생활이 끝나면 고모네가 운영하는 세탁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몇 달 전 사고로 죽은 아빠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을 지닌 채 그를 그리워하는 알레한드라는 고달픈 엄마와도 관계가 좋지 못하다.
이 아이가 어떻게 자신의 길을 찾아갈지 알면서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빠는 엠파나다를 만들면서 한 번도 그 오븐을 사용하지 않았다. 일단 익숙해지면, 아무리 이상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방식이라도 그게 '정상적'이라고 느끼게 되는 듯하다. '정상적'인 것과 아무리 거리가 멀어도.
이 문장이 이 이야기를 관통하는 문장 같다.
백인들이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그 모든 관념들이 자기들 쪽으로 치우친 방식이라는 거.
그들의 DNA에 박혀 있는 다른 인종에 대한 이유 없는 우월감이 곳곳에 포진해 있고, 알레한드라는 그것에 순응하며 고등학교를 다니지만 그녀의 본심은 그게 아니었다.
그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이 참 찰지게 그려졌다.
한국인이지만 라틴계의 불같은 성미가 돋보이는 알레한드라.
작가 자신이 실제로 느낀 것들이 잘 반영되어 있는 거 같다.
자신이 잘 아는 이야기를 쓴다는 건 결국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과 같다.
친구와의 우정이 우정이 아니었고
몰랐던 친구가 우정이 되어 가는 과정도 즐거웠다.
각자의 선택들이 강압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각으로 결정되는 모습도 좋았다.
물론 그전에 그것에 관련된 갈등들을 잘 이겨낸 탓도 있겠지만...
좋은 이야기는 긴 여운을 남긴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이 속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자신의 속물근성과 마주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작은 변화로 이어져 큰 변화를 불러오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