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 식료품점
제임스 맥브라이드 지음, 박지민 옮김 / 미래지향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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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트 팀블린은 서류상으로 가진 것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 미국의 흑인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그는 평등하지만 평등하지 않은 법과 법령이 있는 나라에서 살고 있었고, 평등에 관한 일련의 규칙과 규정이 그에게는 거의 적용되지 않았다.

그는 제 나라 없이 유령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네이트가 알고 있는 단 하나의 나라, 애디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그가 마음을 쓰는 나라는 귀가 들리지 않는 깡마른 12살의 남자아이였다.



위에 발췌 글처럼 1920년대 흑인의 삶에 대해 간결하지만 정확하게 설명한 글이 또 있을까.

제임스 맥브라이드의 작품을 <어메이징 브루클린> 다음으로 두 번째 읽게 되었다.

장황하게 긴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건 그 시대를 최대한 간결하게 표현하려 한 작가의 노고이다.

우리나라의 1920년대의 사회 분위기도 잘 모르는 나지만 미국의 소도시 치킨힐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타임머신을 타고 그 장소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유대인과 흑인.

백인들의 세상에서 경제권을 움켜쥐고 그들을 쥐락펴락하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떠돌이 백인 유대인.

자신들의 나라에서 한순간에 미국이라는 나라로 이송되어 강제 노예살이를 해야 했던 노예들의 후손인 흑인.

그 중립 지대에서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초나.

그런 초나의 곁을 지키는 모셰.

사고로 청력을 잃은 아이 도도.

조카를 자식처럼 키우는 네이트와 애디.

이 사람들을 통해 알게 되는 그 시절의 미국과 그 시절의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은 '살맛 나는 시간'이었다.

마음에 온기가 차서 겨울에 다시 읽고 싶어진다.

추운 겨울에 몸과 마음이 따스해지는 경험이 필요할 때 다시 꺼내보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름이 어디에 존재한단 말인가? 한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우월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 모두 같은 인류이기 때문이다.



유대교 공동체의 예배당 우물 바닥에서 발견된 유골은 허리케인으로 인해 사라지고, 용의자로 의심받았던 과거의 댄서 말라기도 함께 사라진다.

이것 역시 신이 안배한 일 아닐까?

제임스 맥브라이드는 유대인과 흑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래서인지 <하늘과 땅 식료품점>에서 유대인과 흑인들의 관계는 '초나'를 중심으로 뭉쳐지며 이어진다.

차별과 편견의 무지함을 뚫고 자신들의 삶을 이어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그때와는 또 다른 현재의 차별과 편견의 모습을 깨닫는다.

우리 역시 지구라는 공동체에서 살아가고 있는 똑같은 인류인데 어째서 '다름'을 차별과 편견으로 세뇌시키는 걸까?

기술이 발달하고, 배움이 보편화된 세상에서 하나처럼 연결된 글로벌한 세계에 살아가는 우리 인류는 어째서 무지한 차별과 편견의 우물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점점 잠겨들어가는지 모를 일이다..

부모 잃고 청력을 잃은 한 아이를 구해내려 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인종을 떠나 참 아름다운 찐 인류애를 보여준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세상은 살만한 곳이 되는 거 같다.

전작도 그러했지만 맥브라이드 작가님의 작품에선 '수다'가 느껴진다.

어떤 얘기든 맛깔나게 잘 하는 아저씨가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 마을의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기분이다.

대도시였다면 이 이야기는 다르게 흘러갔을 것이다.

작은 마을이 대도시화 되어가는 와중에 그 자리를 지켜내며 자신들의 삶을 버텨냈던 사람들이 가진 정의와 삶에 대한 이야기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의 차이를 넘어서 서로를 도우며 강해지는 모습을 따뜻하게 그려냈다.

그들에게 피부색과 가진 것에 대한 차별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래 한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끈끈한 유대감이 그 모든 불길한 감정들을 잠재우는 이야기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지금 이 삶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들이었다.

이 이야기를 읽는 동안 잠시 어릴 때 동네 골목길마다 마주쳤던 어른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들의 오지랖이 절로 그리워지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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