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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슐츠 씨 - 오래된 편견을 넘어선 사람들
박상현 지음 / 어크로스 / 2024년 6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4/0611/pimg_7368641354323636.png)
2017년 <버즈피드>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실험에 참가한 남성 네 명의 옷에 달린 주머니를 꿰매어 사용할 수 없게 하고 일상생활을 하게 한 것이다.
그렇게 하루를 살아본 남자들은 여자가 현대 사회에서 주머니 없이 사는 건 전기가 발명된 세상에서 어둠 속에 사는 거나 다름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친애하는 슐츠 씨>를 읽는 동안 내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있었다.
마치 심봉사가 눈을 떴을 때의 심정이랄까?
남들 다 그러고 사니까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믿고 살아온 느낌 어딘가에 꾹꾹 박아 눌러 놓았던 부당함에 대한 감정들이 샘처럼 솟아났다.
이런 글들을 왜 자주 접하지 못한 걸까?
나는 그렇게 몇 년간 책을 읽었으면서도 어째서 <오토레터>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을까?
"사회 변화에 동의하고 그 과정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세상은 빨리 변할 수 있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지 않은 세력들 때문에 이런 글들이 사람들에게 자주 띄지 않는 걸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다양한 관점을 어릴 때부터 읽고, 듣고, 보고 자라야 하는 아이들에게 이 책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책을 읽는 동안 점점 새로운 "앎"이 쏙쏙 채워지는 느낌이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4/0611/pimg_7368641354323637.jpg)
여자가 할 수 있는 사회적, 경제적 기여는 제한적이라는 사고방식, 여자를 전통적인 위치에 묶어두려는 태도가 여자의 옷을 만드는 데 반영된다.
옷에 달린 주머니 이야기가 이렇게 흥미진진할 줄 몰랐다.
사실 내 옷에 주머니가 달려있어도 그 주머니에 무언가를 넣고 다니고 싶지 않았던 건 모양새 때문이다.
여성 답지 못한 모양새. 이것 때문에 주머니가 있어도 활용하지 않았고, 주머니가 없다고 불평하지 않았다.
이런 생각은 온전한 나의 생각일까?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여자는 이래야 하고, 여자는 저래야 한다는 어른들의 관습이 내게도 고대로 투영되어 있었다.
여성 남성 구분하지 않고 모든 옷에 주머니가 올바르게 달려있었다면 여자들은 불편하게 핸드백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말이다.
군복에도 주머니는 장식용이었고, 여성 군인들에게도 핸드백을 지급했다는 웃기는 얘기는 이 책에서 처음 읽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여군이니까 당연한 복장이라고 생각했다.
그걸 또 멋있다고 생각했던 나의 어리석음에 쓴웃음이 난다.
여자가 마라톤을 뛰면 자궁이 떨어지고 가슴에 털이 자란다고 정말 믿었단 말이지?
간성인은 안드로젠 무감응 증후군을 가진 사람으로 생식기의 종류와 성염색체가 일치하지 않는 사람이다.
남아프리카 육상 선수 세메냐는 간성인이다. 세메냐는 보통 여성들보다 테스토스테론이 더 많이 분비된다. 그래서 테스토스테론을 줄이는 호르몬제를 6개월간 투여해야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었다.
폰트에도 인종차별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완톤 폰트는 중국 식당에서 많이 사용해서 잘 알려진 폰트인데 너무 익숙하다 보니 그것이 중국인 나아가 동양을 대표하는 폰트가 되어서 상징적인 의미도 있지만 그것으로 동양인을 비하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니 이 뿌리 깊은 차별이 폰트에도 적용된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조니 뎁과 엠버 허드의 이혼 문제는 영국과 미국의 싸움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둘 다 영국에서 한 번 미국에서 한 번 승소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벌어진 소송에서 조니 뎁이 앰버에게 씌운 프레임은 저질이었다.
사람들이 이 사건에서 간과하는 게 있다면 가정폭력을 먼저 시전한 것은 바로 조니 뎁이라는 사실이다.
앰버는 그에 대응했을 뿐이었는데 그게 문제가 되어 앰버가 소시오패스처럼 생각된다면 먼저 때린 조니 뎁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
디즈니가 1938년 메리 V. 포드에게 보낸 거절 편지는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 그리고 마녀가 그려진 멋진 편지지에 쓰였다.
ㅡ 그 작업은 전적으로 젊은 남성들이 합니다. 그런 이유로 여자들은 연습생으로 받지 않습니다.
ㅡ 여자들의 숫자에 비해 자리는 극히 적기 때문에 그걸 들고 이곳 할리우드까지 오시는 것은 권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들 머릿속에 용감한 왕자와 곤경에 처한 어여쁜 공주의 프레임을 씌운 디즈니스러운 불합격 통지서다.
젊은 남성들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디즈니 동화가 얼마나 많은 아이들의 뇌리에 어긋난 이야기들을 심어 두었을까? 그 잘못된 세뇌의 피해자가 바로 나다!
제목 <친애하는 슐츠 씨>의 슐츠는 만화 <피너츠>의 작가다.
그가 <피너츠>에 넣은 흑인 캐릭터 프랭클린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살해된 직후 해리엇 글릭먼이라는 여성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그 시대에 이 캐릭터를 만들어 이야기에 등장시킨 슐츠같은 사람이 많아진다면 이 사회의 변화가 빨라지지 않을까?
이 책이 초등학교 필독서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차별은 어릴 때부터 알아채야 하니까..
얼마나 많은 차별이 무지에서 비롯되는가? 이런 역사를 꾸준히 발굴하고 대중에게 알려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