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데몬 코퍼헤드
바버라 킹솔버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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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나는 알에서 태어났다.

첫 문장은 판타지였다.

그 이후의 문장들은 올리버 트위스트 21세기 버전이었다.

이 이야기가 디킨스의 <데이비드 코퍼필드>의 21세기 버전이라고 한다.

나는 그 작품은 읽어보지 못해서 비교불가지만 올리버 트위스트는 읽었기에 올리버 트위스트의 그 불행함은 데몬 코퍼헤드와 쌍벽을 이룬다고 말하고 싶다.

불행에도 DNA가 있는 거 같다.

데몬은 18살 약쟁이 엄마에게서 태어났다.

페곳 가족의 트레일러를 빌려 엄마와 사는 동안 엄마보다 더 엄마 같았던 페곳 아줌마와 그녀의 손자 매곳과는 형제처럼 자랐다.

그나마 짧았던 행복이었다.

약쟁이 엄마는 정신을 차리고 잘 살아보려 했다.

그래서 스토너라는 남자와 결혼했다. 내가 아는 스토너는 참 점잖은 교수였는데 이 작품의 스토너는 개자식이었다.

데몬의 불행 스토리는 이 지점부터 시작된다.

이야기엔 나와있지 않지만 데몬을 떼어놓으려고 수작을 부린 스토너에게 모두가 당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엄마가 내 엄마로서 출근했다가 같은 날짜에 다시 퇴근했다는 게 아무렇게나 벌어진 일 같지 않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엄마의 죽음은 데몬을 벼랑 끝에 서게 했다.

거지 같은 위탁가정

데몬을 위한 결정을 한다고 했지만 실상은 자기들을 위한 결정을 한 사회복지사들

믿었던 페곳 부부마저 데몬을 맡을 수 없었다.




데몬 코퍼헤드(구릿빛 머리 악마).

이 아이의 삶을 읽어가며 그 무엇에도 지지 않았던 아이가 엄마와 똑같은 모습으로 무너지는 상황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데몬 코퍼헤드의 이야기를 읽는데 미국의 현재가 고스란히 담긴 기분이다.

사회복지사들 손에서 위탁가정으로 넘겨지는 아이들

손쉽게 마약으로 빠지는 길이 아무 곳에 나 널려 있고, 제약회사와 의사 간의 커넥션으로 인한 약물중독으로 가는 길도 너무 쉬웠다.

대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그들만의 리그가 있는 곳이었다.

대기업이 단물만 빨아먹고 버린 탄광촌 사람들

탄광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교육이란 게 필요하지 않으니 뒤로 밀쳐지는 교육의 현실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지고

대기업들은 더 부유해지는 거지 같은 현실.

데몬에게도 날개가 돋았다.

미식축구팀에 들어갔으니까.

하지만 신은 데몬에게 절대 행복함을 선사하지 않았다.

고아 소년이 어찌어찌 친 할머니를 찾아내고 그녀의 지원을 받아 미식축구 선수와 영재로서 빛날 수 있었던 그 짧은 시간조차도 '신'은 시샘을 했다.

무릎 부상으로 인해 점점 약물에 의존해가는 데몬의 모습에 숨이 막혀간다.

너는 절대 그러면 안 돼!

이제 행복할 일만 남았잖아!


내 마음의 부르짖음을 들은 걸까?

아니...

데몬은 스스로를 끌어올리는 생명줄을 가진 아이였다.

멜런전 태생의 아버지의 모습과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은 데몬은 추락에 대한 자제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늪으로 빠져들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답답하기 그지없었던 내 마음은 단비를 맞은 느낌이었다.

이 동네의 아주 오래된 상심이다.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은 날아가 버리고, 실패작들은 남는다.

바버라 킹솔버는 미국 어디에나 있을 외곽지역의 버려진 소도시의 모습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데몬의 불행으로부터 엮어낸다.

배움도 없고, 꿈도 없고, 약에 절어가는 사람들.

정부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땅속에 묻혀있던 보물을 알아보지 못했다.

대기업의 손아귀에 터전을 뺏기고, 건강을 뺏기고, 자식들의 인생까지 뺏겨버린다.

그래도 그들은 의식하지 못한다.

페곳 부부

준 이모

앵거스

백인과 흑인 커플인 암스트롱과 애니 선생님

그들이 데몬에게 삶의 기준이 되어준 사람들이다.

이 모든 일을 겪은 데몬의 나이가 이제야 18세가 된다는 그 사실이 끔찍했고, 그만큼 희망적이었다.

데몬에겐 이제야 제대로 된 인생이 시작된 거니까.

수다스럽게 느껴지는 문장들 때문에 책의 두께를 느끼지 못했다.

데몬의 짧은 인생이 모두 담긴 책 속에 그 짧은 인생을 스쳐간 '악'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데몬의 '의지'는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선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그가 돌아올 수 있도록 기다려준 선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 이야기 한 편에 지금 우리가 직면해 있는 모든 문제들이 곳곳에서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곁에 두고 계속 읽어야 하는 책을 만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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