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과>는 내가 처음 읽은 구병모 작가의 책이자 아마도 내 기억이 맞다면 내가 처음으로 완독한 전자책이기도 하다.
전자책으로 처음 완독한 책으로 기억하고 있으나 이전 리뷰을 살펴보니 그에 대한 언급은 없다.
어쨌든 나는 <파과>를 읽으며 새로운 작가와의 만남에 열광했었다.
내가 생각하는 '조각'은 대한민국 5천 년 역사상 가장 강렬한 캐릭터였다.
60대의 여성 킬러라는 사실은 그 어떤 서사를 가진 여성 캐릭터를 다 눌러버리는 기세였다.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조각'의 모습은 '윤여정'선생님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왜 이름이 '조각'일까.
이 궁금증은 개정판 작가의 사인과 함께 쓰인 글에서 채워졌다.
부서지지 않을 한 조각의 마음...
그래서 '조각'일 거라 혼자 믿어본다.
이번에 파과가 새롭게 리커버 되어 나왔다.
그리고 영화화되기를 고대했는데 뮤지컬로 먼저 세상에 선보였다.
파과의 파격적 행보다.
'분명 글인데 작가의 말소리가 들리는 거 같다.
무성영화 한 편을 보면서
변사의 해설을 듣는 기분.'
전에 썼던 리뷰에 이렇게 적어놨다.
그 느낌은 여전하다.
작가가 끝없이 내 귀에 속삭이는 느낌이다.
조각의 끝을 알고 있는 이야기는 그래서 더 애잔하다.
전에는 속도감 있게 읽었다면 이번엔 음미하며 읽었다.
달콤하고 상쾌하며 부드러운 시절을 잊은 그 갈색 덩어리를 버리기 위해 그녀는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펼친다. 최고의 시절에 누군가의 입속을 가득 채웠어야 할, 그러지 못한, 지금은 시큼한 시취를 풍기는 덩어리에 손을 뻗는다.
<파과>라는 제목의 이중적 의미처럼 인생의 끄트머리에서 움직이는 조각의 삶은 위태위태해 보인다.
그러나 전 생애를 긴장 속에 보낸이답게 그는 절대 머뭇거리지 않는다.
살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젊었을 때와 다르게 몸이 움직이지는 않지만 수 십 년 몸에 밴 결기와 본능은 지켜야할 것을 지킨다.
늘 지키기 보다 해치기를 했었던 조각에게 이제야 지킬것이 생겼다.
스스로 한 약속이지만 지켜지지 않을 약속이다.
인생이 그렇다.
언제나 변수가 작동한다.
나는 이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지기를 원한다.
윤여정 선생님이 이 역을 맡았으면 좋겠다.
그분만큼 조각과 매치되는 배우는 없다.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네일 아트를 한 한 팔을 높이 들어 올리며 생애 처음을 맛보는 조각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을 쓸어내린다.
얼마나 남았는지 모를 남은 시간들을 전과는 다른 것으로 채워갈 조각을 응원한다.
어딘가 내 시선이 닿는 곳.
그러나 의식하지 못한 채로 조각은 흘러갈 것이다.
내 곁 어딘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