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저녁의 연인들
서윤빈 지음 / 래빗홀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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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몸 안에 새겨진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이 시대의 노화란 세금과 기억만으로 존재하는 건지도 몰랐다.



몸 안에 장기들을 임플란트로 대체할 수 있는 미래.

머리에 버디라는 기계를 쓰고 살게 되는 미래.

영생을 누릴 수 있을 거 같은 미래지만 결국 돈 때문에 죽어야 하는 미래.

<영원한 저녁의 연인들>의 미래는 신선하면서도 구차하고, 새로우면서도 다르지 않다.

돈 있는 자는 임플란트 구독료를 내고 살아갈 것이고, 그렇지 못한 자들은 최후까지 발버둥을 치다가 죽을 것이니까.

주인공 유온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가애로 살면서 그들이 죽으면 유산을 받아 살아간다.

아내와 아이가 있었지만 아이가 죽고, 아내도 그를 떠났다.

가애로 살면서 그는 자신을 잘 관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술은 익을수록 힘이 덜 들고 자연스러워지는 법이다. 고생해서 이룬 일은 물론 보람차겠지만, 사실 인생은 힘들이지 않고 해낼 수 있는 일에 더 크게 좌우된다.



나는 유온이 쉽게 살아갈 방법을 택했다고 생각한다.

이미 노인인 그의 생각은 현재의 몸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벅차 보인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최선을 다해 그들을 대하지만 정작 자신이 그 자리에 설 날이 올 거라는 생각은 못 한다.

서윤빈 작가의 글은 처음인데 그가 그리는 미래가 너무 현실적이라 마음이 묵직해진다.

머리에 씌워진 버디로 생각을 조정 당하고

임플란트 장기로 채워진 육체의 보존을 위해 세세한 것들을 신경 쓰며 살아야 하는 삶.

숨이 막힌다.

인간의 욕망 앞에서..

이 시대에도 진정한 사랑이 있을까?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가진 것을 모두 내다 팔고, 자신의 기억과 추억까지 팔아야 하는 미래가 달갑지 않다.

유온이라는 뜨뜻 미지근한 이름처럼 그의 인생도 그렇게 흘러가는 거 같다.

그를 떠난 아내는 왜 그를 떠났을까?

아내의 친구였던 은희의 등장은 유온의 인생에 가장 뼈 때리는 등장일 것이다.

유온의 미온적인 태도로 볼 때 아내 이령은 극복되지 못한 상실감과 무력감으로 좀먹어 갔을 거 같다.

그러나 유온은 자신의 삶을 사느라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자신들이 잘 살아가고 있었다고 믿었다.

그래서 아내의 그만두자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가 마지막까지 살려고 바둥거리는 그 모습이 나는 좀 환멸스러웠다.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살려고?

<영원한 저녁의 연인들> 제목은 로맨스 같지만 이것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언제든 찾아올 준비가 되어 있는 죽음에 대해 우리가 대비하는 건 뭘까?

나는 이 세계에 살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이 이야기 속의 세상은 지금 현재를 고스란히 가져다 놓은 미래다.

지금 이 현실의 부조리함을 미래라는 탈을 씌워서 보여준다.

그래서 더 씁쓸하고, 신맛이 난다.

한 달 구독료 10억 5000만 원.

이것을 마련하기 위해서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할까?

인생을 살면서 제일 잘 준비해야 하는 것이 바로 '죽음'인 거 같다.

노후 준비란 언제든 다가올 죽음을 잘 이해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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