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 흑조는 곤란한 이야기를 청한다 - 1928, 부산
무경 지음 / 나비클럽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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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시고개의 여우가 제게 탐정 일을 청했습니다."

마담 흑조.

경성에서 흑조라는 다방을 운영하며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청하는 여자.

경성 최고의 부자이자 최고의 악당 아버지를 둔 부잣집 딸.

천연주이자 센다 아카네.

"스스로 탐정이라 칭한 적은 없습니다. 제게는 다른 이의 곤란한 사정 이야기를 청해 듣길 좋아하는 기벽이 있는데, 그것이 이상하게 알려진 모양입니다. 곤란함을 듣길 좋아하는 버릇과 곤란함을 해결하는 모습은 비슷해 보여도 엄연히 다릅니다."

똑 부러지는 말.

어딘지 이 세상 사람 같지 않은 분위기를 가진 허약한 여자.

서양인 여자를 하녀처럼 대동하고 무엇을 시켜도 절대 실패하지 않는 남자를 데리고 다니는 천연주의 정체는 뭘까?


가제본으로 읽은 <마담 흑조는 곤란한 이야기를 청한다>는 마치 쭉~ 연재되어 온 이야기의 새로운 편을 읽는 것처럼 낯설지 않게 다가왔다.




<마담 흑조는 매구의 이야기를 듣는다>


어딘지 모르게 기이해 보이는 일행.

모든 걸 가졌지만 모든 걸 잃은 듯한 모습의 천연주는 가냘픈 몸으로 부산행 기차에 오른다.

부산역에 거의 다다를 즈음 쓰러진 그녀는 같은 기차에 타고 있던 부산 토박이 손 선생의 도움으로 구포의 면장인 장씨의 집에 머물게 된다.


여우고개에 사는 여우가 일본인의 개를 해쳤다는 소문이 돌아 여우사냥을 당하게 생겼고,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청을 받았다는 연주의 이야기는 이 작품을 묘한 방향으로 이끈다.

과연 일본인이 애지중지 아끼던 개가 죽은 뒤 감쪽같이 사라진 이유는 뭘까?

진짜 여우짓이 맞을까?




<마담 흑조는 감춰진 마음의 이야기를 듣는다>



조선에 처음 와 본 하자마 부부.

호텔 사장의 시끄러운 환대를 받고 호텔에 도착하지만 그곳은 누군가 전체 대관을 한 곳이다.

그러나 특별히 양해를 구하고 두 사람을 투숙시켰다는 호텔 사장의 말에 특별대우받는 느낌이 과히 나쁘지 않다.

직업이 의사인 시로와 부인 스미레 그리고 스미레의 보디가드 야나기가 호텔에서 만난 사람은 바로 마담 흑조의 일행이었다.



영문 모를 말을 하는 센다 씨를 보다가 나는 문득 이질감을, 혐오감을, 거부감을 느꼈다. 조선인이라서 그런 게 아니었다. 그녀는 인간이 아닌, 그저 인간을 닮았을 뿐인 다른 존재처럼 보였다. 인간을 그럴듯하게 흉내 내는...

이 에피소드에서 천연주의 모습은 충격적이다.

온몸에 화상을 입은 모습, 그래서 다리를 절고 그렇게 허약해 보였던 것.

그러나 그녀에게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다.


명망 있는 가문의 데릴사위로 들어간 시로는 자신의 성을 버리고 아내의 성을 쓴다.

간호사와 바람 핀 걸 들켜서 사이가 안 좋은 참에 분위기 전환을 해보려고 조선으로 여행을 왔지만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아내의 보디가드 야나기 때문에 성가시다.


이번 여행이 맘에 안 드는 스미레였지만 온천물에 반하고, 센다와 친구가 되어 분위기는 처음보다 좋게 흘러간다.

그러나 그 좋은 분위기도 하루 만에 반전된다. 목욕을 마치고 나온 스미레가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보는 눈앞에서 살해당한 스미레의 죽음의 비밀은?

센다 아카네이자 천연주 마담 흑조의 사건 풀이는 어떻게 비밀을 풀어낼까?




<마담 흑조는 지나간 흔적의 이야기를 듣는다>


부산에서 여고 선배를 만난 마담 흑조.

선배 상미의 일행은 중산모를  쓴 가난한 남자였다.

두 사람은 일본행 배를 타기 위해 대기하던 중 마담 흑조 일행을 만난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회포를 풀 겸 식사를 하러 간다. 그러나 그곳에서 마담 흑조는 그들을 미행하는 회색 중절모를 쓴 남자를 발견한다.

회색 중절모의 남자는 그전부터 상미 일행을 미행했다고 한다.

불안해하는 상미 일행의 모습을 보고 마담 흑조는 그 회색 중절모를 잡기로 한다.



'이상한 것은 이상해야 할 이유가 있기에 이상해 보이는 것이다.'

여고 때부터 마담 흑조는 탐정에 소질이 있었다.

밝고 찬란했던 천연주의 모습이 2년 사이에 온데간데없고 귀신 보다 못한 파리한 모습으로 바뀐 게 못내 궁금한 상미였지만 왜 그런지를 물어보지 못한다.

그들은 상미 일행을 미행하는 회색 중절모를 쫓지만 잡지 못하고 허탕을 치고 만다.

그렇게 상미 일행은 무사히 일본행 배에 오른다.

그러나 회색 중절모의 사나이는 왜 그들을 미행했을까? 마담 흑조는 정말 그 회색 중절모를 놓쳤을까?



세 편의 이야기는 제목부터 어딘지 모르게 기묘함을 품고 있다.

그리고 마담 흑조의 밝혀지지 않은 과거가 독자의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게다가 마지막 장 기차에서 만난 '유리'라는 남자는 그 예리한 마담 흑조의 모든 걸 알고 있는 거 같다.

그 남자는 어떻게 마담 흑조의 예리함을 피해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알아냈을까?


궁금증만 남기고 끝난 <마담 흑조는 곤란한 이야기를 청한다>

제목만큼이나 흥미로운 이야기가 1928년 부산을 배경으로 벌어진다.


신비로운 옛날이야기와 사사로운 사건들과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가 버무려진 이 새로운 시리즈의 탄생은

다음 편을 고대하게 만든다.


21세기에 만들어진 19세기 탐정 마담 흑조의 이야기가 왠지 롱런할 거 같은 느낌이 든다. 


무경 작가는 <1929년 은일당 사건 기록>의 작가이다.

이 작품을 읽어 보지 못했지만 마담 흑조를 읽고 나니 전작도 읽어 보고 싶어졌다.


우리에게도 고전적 위대한 탐정이 탄생한 느낌이다.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묘한 매력을 가진 마담 흑조의 다음 이야기를 빨리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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