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알 환상하는 여자들 1
테스 건티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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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장의 벽은 굉장히 얇아서 모두의 삶이 나아가는 것을 라디오 드라마처럼 들을 수 있다.


은행나무 출판사의 <환상문학 시리즈> 첫 번째 작품인 <우주의 알>을 가제본으로 읽었다.

이 이야기는 한 소녀의 영혼이 유체이탈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것은 죽음일 수도 있고, 하나의 성장과정의 끝일 수도 있다.


토끼장이라 불리는 빈민가의 닭장 아파트는 옆집의 소리가 고스란히 들려온다.

위탁가정을 전전하던 머리 좋은 소녀는 장학금을 받고 그들만의 리그에 입성한다.


연고 없는 아이.

영리하고 똑똑한 아이.

그러나 어딘지 외계인 같은 아이.

어른스럽지만 결국 아이인 소녀.

그런 소녀들을 먹잇감으로 노리는 선생.


아역 배우로 성공한 어머니의 아들은 버림받은 고아나 다름없이 자란다.

오십이 넘은 나이가 되었어도 어른이 되지 못한 아들은 기행을 벌인다.


한 소녀와 동거 중인 세 명의 소년들

배우가 꿈인 소년과 방에 틀어박혀 그림을 그리는 소년과 개 산책 아르바이트를 하는 소년에겐 그들만의 취미가 있다.

그들 중 두 명은 소녀의 관심을 끌고 싶어 안달이지만 소녀는 본체만체한다.

선생님을 사랑했던 소녀에게 그 소년들은 너무 어리다.


"난 승인의 형태로 가장한 여성에 대한 폭력이 정말 지긋지긋해요." 블랜딘이 말한다.



티퍼니였던 블랜딘은 한때 사랑이었다고 믿었던 사람의 본질을 꿰뚫어 본다.

학교를 자퇴하고, 이름을 바꾸고 세상으로 숨어든다.


화려한 도시와는 동떨어진 쇠락한 동네.

재개발에 들썩이는 개발자들과 하루하루 고단한 삶을 마감하기 위해 토끼장이 필요한 사람들.

불공평한 사회에 경종을 울리려는 어떤 시도.

사춘기 소년들의 빌어먹을 일탈.

유명한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남자.

손쉬운 먹잇감을 노리는 선생.


익숙한 플롯의 이야기지만 색다르게 엮어내는 작가 테스 건티.

티퍼니와 제임스의 사랑 이야기는 빤하지만 서로의 감정을 표현하는 그 간단하면서도 신랄한 사랑의 요약은 읽는 동안 가슴이 일렁였다.

아슬아슬하지만 다가가고 싶고,

서로를 꿰뚫어 보지만 이해하고 싶고,

전부인 거 같지만 얻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그래서 나조차도 속은 이야기.


그러나 소녀는 여성이 되고, 선생은 자신의 수를 들키고 만다.

커 보였던 남자가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순간.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났을 때

그 비명이 들렸을 때 사람들은 무심했다.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또 그러는 게지...


그러나

그런 사람들 속에서도 조앤 같은 사람이 있어 단절된 관계들이 이어지기도 한다.

누군가는 '사소해 보이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누군가는 '아무 사이도 아닌 사람에게' 관심을 준다.


그게 시작이다.

잘못되어 버린 이 세계를 다시 잘 돌아가게 만드는 에너지는 '누군가'의 사소한 관심으로부터 불꽃이 된다.






조앤은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말한다. "깨어 있네요."

방 안에 기묘하게 번쩍이는 빛이 스친다.

"네." 블랜딘이 말을 잇는다. "당신은요?"





이 책을 읽은 나는 깨어있을까?

당신은...?


아무런 정보 없이 읽었던 이야기.

그래서 한 장 한 장 뒤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했던 이야기.

각각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그들의 삶이 하나의 시간에서 마주치게 되는 이야기...


미국을 이야기했지만 결국 우리의 이야기로 해석되는 <우주의 알>...


이 세상 모든

블랜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렴.

조앤, 화이팅~

모지스, 이제 좀 성장하면 안 되겠니?

소년들, 니들이 그럴 줄 몰랐다.. 정신 차릴 거지?

제임스, 지구를 떠나거라~ 




캐릭터들의 감정을 몰입감 있게 묘사한 작가의 시선이 즐거웠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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