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가 X에게 - 편지로 씌어진 소설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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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없는 것은 영원한 것의 반대말이 아니에요. 영원한 것의 반대말은 잊히는 것이죠.


전자책으로 읽으면서 종이책이 갖고 싶었던 작품이었다.

종이책을 구매하고 언제 읽을까 싶었는데 이번에 #독파챌린지 에 올라와 있길래 이때다 싶어서 재독했다.

몇 년 사이에 내 마음이 변했을까?


처음 읽었을 때의 그 절절함과 애절함 대신에 그들이 처한 현실에 더 관심이 갔다.

편지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감옥에 있는 연인에게 쓴 아이다의 편지와 그 편지 뒷장에 쓰인 남자의 메모가 대조를 이룬다.

아이다의 절절한 그리움에 대비되는 남자의 글들은 정치적이고, 이성적인 생각들이다.

처음 읽었을 때는 그 점에 스스로 상처를 받았던 거 같다.

아이다에게 너무 이입이 됐었나?


재독하면서 사비에르가 처한 상황에 좀 더 몰입하면서 그가 남긴 메모들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하는 거 같았다.

독방에서 자신이 선택한 길에서 괴로운 현실을 잊기 위해 끝없이 자신을 다그쳐야 했던 사비에르는 아이다의 편지를 받고 그녀를 그리워하는 만큼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믿는 신념들을 적어갔으리라...



존 버거는 이 편지 뭉치를 발견했다고 말한다.

소설적 장치를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현실처럼 느껴진다.

아이다와 사비에르가 어딘가에서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고 있을 거라는 느낌은 재독 후에도 여전하다.


우리나라에도 저런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한국의 아이다와 사비에르가 어느 시대에 살았었다고 생각하니 정치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잘못된 리더의 신념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넘쳐나야 하는 세상.

<A가 X에게>를 다시 읽으며 단순히 절절한 연애편지로 대했던 첫 번째 읽기를 업데이트한 기분이다.



불의를 합법화하는 악법들이 있다. 그런 법은 어설프지 않다. 왜냐하면 그런 법들이 적용되면 그 법들이 가용하려는 바로 그것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법들에 대해서는 저항하고, 무시하고, 도전해야 한다. 하지만 물론, 동지여, 그런 법들에 대한 우리의 저항은 어설프다!



그때 당신의 그 손등만큼 나에게 확신을 준 말은 없었어요. 


우리를 두렵게 하는 건 작은 일이에요. 우리를 죽일 수도 있는 거대한 일은, 오히려 우리를 용감하게 만들어 주죠.


"어떤 역사도 침묵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역사를 아무리 많이 점유하고, 깨부수고, 그에 대해 거짓말을 하더라도, 인간의 역사는 입을 다물기를 거부한다. 무관심과 무지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시간은 현재의 시간 속에 계속해서 째깍째깍 소리를 내고 있다."


내가 아는 건 나의 인생이 온통 나를 당신에게로 이끌었다는 것.




존 버거를 처음 만난 작품이기도 한 <A가 X에게>.

뭔가를 강요하지 않아서 좋다.

그저 온전히 그들의 감정을 혼자 음미해 보며 그들의 고통과 희망과 애정과 용기를 느껴보는 시간이 좋았다.


종이책의 물성이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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