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척의 배 - 트로이아 전쟁의 여성들
나탈리 헤인스 지음, 홍한별 옮김 / 돌고래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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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앞으로는 혼자 있을 때가 없으리란 걸 알았다. 전쟁이 끝나면 남자들은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여자들은 목숨만 빼고 모든 걸 잃었다.



수많은 영웅들을 배출한 트로이아 전쟁의 서사는 웬만하면 모두 꿰고 있을 것이다.

남자들의 시선으로 남자들의 전쟁담과 모험담을 이야기하는 트로이아 전쟁.

<천 척의 배>에선 남자들의 그늘에 가려져서 한 문장으로 표시되었던 <여자>들의 시선으로 트로이아 전쟁을 그려낸다.

트로이아 전쟁은 테티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헤라, 아프로디테, 아테나 앞으로 황금 사과를 던지면서 시작됐다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한 여신의 고달픔에서 비롯되었다면?





'가이아'는 대지의 여신이었다. 그녀는 인간들의 무게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나날이 늘어가는 인간들은 대지 위에서 자라나는 모든 것들을 파괴했다.

풍요로움으로 가득했던 가이아는 더 이상 인간들의 파괴와 무게를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제우스에게 자신의 고통을 덜어달라 말했다.

모든 신들의 왕 제우스는 그의 첫 번째 아내 '테미스'와 계획을 짰다.

"인간이 너무 많아." 제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나치게 많지."

"가이아가 당신한테 고통스럽다고 했군." 테미스가 말했다. "인간의 무게가 가이아가 지탱하기에 너무 버거워."




대지에서 인간들을 효과적으로 없애는 방법은 바로 '전쟁'이었다.

가이아의 고통으로부터 시작된 '전쟁'의 기운은 '황금 사과'로 장전되었고, 왕자로 태어났으나 트로이아를 멸망시킬 거란 예언 때문에 양치기의 아들로 자란 파리스는 권력과 지혜 보다 아름다움을 선택했다.

아가멤논이 이끌고 온 그리스 대군은 철옹성 같은 트로이아를 바로 함락 시킬 거라 생각했지만 이 전쟁은 10년을 끌게 된다.

트로이아가 불타는 광경으로 시작한 <천 척의 배>는 전쟁 속에서 살아남은 여자들의 시선으로 전쟁을 이야기한다.

스파르타의 왕이 왕비를 잃었다는 이유로, 100명의 왕비가 왕을 잃어야 했다.

"메시지를 들었잖아, 안테노르. 오늘 밤에 활동을 개시할 걸 알잖아."

"아닐지도 몰라." 안테노르의 목소리가 떨렸다. "어딘가 가까운 곳에서 대기하고 있다고만 했어."

"어딘지 알잖아." 테아노가 콧방귀를 뀌었다. "그 목마 안에 있어. 틀림없어."

안테노르가 테아노의 말을 들었다면,

프리아모스가 헤카베의 의심을 받아들였다면,

수많은 남자들이 여자들의 말을 듣지 않아서 긴 세월을 신들에게 놀아났다..

아들과 남편을 잃고, 노예가 되어 트로이아를 떠나야 했던 여자들.

헬레나 하나 때문에 남편과 아들을 전쟁터로 내보내야 했던 여자들.

전쟁이 끝난 후 돌아오지 못한 남편과 아들을 가진 여자들.

외간 남자랑 바람난 여동생 때문에 전쟁의 제물로 바쳐진 딸을 가진 여자.

오랜 세월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던 여자.

아폴론의 수청을 거절함으로써 능욕 당하고 미래에 대한 예언을 하지만 아무도 예언을 기억하지 못해 미친년처럼 살게 된 여자.

전쟁이 끝나도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구혼자들을 물리치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여자.

님프였지만 양치기 남자를 사랑해서 아이까지 낳았지만 그 남편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자에게 미쳐서 버림받은 여신.

모든 신들에게 왕따 당해서 속상했던 여신.

인간을 품고 풍족하게 해주었지만 인간들의 탐욕에 지쳐버린 여신.

아들 하나 때문에 많은 아들과 남편과 딸들의 죽음을 목격해야 했던 여자.

아킬레우스 못지않은 영웅의 아내였지만 자기 부모를 죽인 남자의 아들에게 자신의 아들을 잃고, 그 남자의 노예가 되어야 했던 여자.

수많은 여자들의 목소리로 듣는 트로이아 전쟁을 읽는 내내 깊은 슬픔과 상실감이 느껴졌다.

끝없는 인내와 고통을 느끼게 되는 <천 척의 배>

그 어떤 트로이아 전쟁을 그린 이야기에서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을 <천 척의 배>로 느꼈다.

목숨 빼고 모든 것을 다 잃은 여자들의 이야기가 트로이아 전쟁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신들의 안배에 놀아난 인간 남자들.

현명한 여인들의 말을 새겨 들었다면 이런 전쟁은 없었을 텐데.. 라고 생각하면서도 신들의 뜻을 어찌 꺾을 수 있을까 싶다.

모든 것은 현명한 자들과 어리석은 자들의 엇박자의 춤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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