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K-pop보다는 80~90년대 가요를 좋아하고, 일본과 한국과의 오랜 감정싸움도 잘 알고 있고, 한국의 민주화 운동의 본거지인 신촌에서 생활하며 여러 독서모임에도 참석하고, 우리말 겨루기를 즐겨 보고, 떡튀순을 좋아하며, 한국 영화와 책에도 조예가 깊다.
나보다 짧은 시간을 한국에서 보낸 사람인데도 나보다 한국의 정세를 잘 꿰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한국은 이런 나라라고 단정 짓지 않는다.
한국인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알고 한국의 미래를 걱정하지만 우리가 잘해낼 거라는 것도 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우리가 외국인들의 시선에 왜 그리 신경을 쓰는 건지, 왜 그들의 반응에 민감한지에 대해 마음이 쓰였었다.
<한국 요약 금지>를 읽으면서 그 답답함에 대한 답을 얻은 거 같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검증하기 보다 다른 나라의 시선을 통해 우리가 잘 가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거 같다.
좁은 땅덩어리에 살면서 수많은 곡절을 겪으며 5천 년 역사를 이어 온 대한민국인들은 알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한반도의 좁은 시선이 아닌 세계인의 시선으로 검증받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가 잘 해나가고 있는지.
우리가 우리 것을 잘 지켜내고 있는지.
우리가 우리 것만 고집하지 않고 다른 것을 잘 섞어가며 살고 있는지.
이 좁은 땅에서 태어난 수많은 재주꾼들이 자신들의 활동 영역을 잘 넓혀가고 있는지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콜린 마샬은 이런 한국인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사람 같다.
그의 글은 무조건 비판적이지도 않고, 무조건 칭찬만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런 걸 예상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몰랐던 우리를 만났던 시간이었다.
내가 몰랐던 나 자신을 친하다고 생각해 보지 못했던 주변인에게 정확하게 확인한 기분이다.
그래서 마음이 즐겁다.
문제가 많고, 화나는 일들이 많은 요즘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늘 옳은 길로 가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임을 <한국 요약 금지>로 확인했으니까.
그리고 그걸 알아주는 지인이 있다는 사실이, 그 지인이 감정적이지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이 위로가 된다.
한국은 긴 역사 너머로 수많은 전쟁을 치르며 살아낸 나라다.
그런 나라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끈기와 인내와 재주가 삶을 만들어가고 있는 나라다.
그러니 엄청난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그것을 잘 넘어갈 수 있는 생존의 기술을 가졌다.
이 스킬을 발전시키고자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갈구한다.
단 기간에 빠르게 성장한 만큼 사람들의 정서와 생각들도 빠르게 바뀌었다.
그 간극에서 벌어지는 대립은 우리가 쌓아온 스킬로 잘 넘겨야 하는 고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