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 정보라 연작소설집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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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 눈을 돌려 과학의 이름 뒤로 도피하고 싶은 사람들과 생계는 물론 생명까지 위협받게 된 사람들의 충돌은 부드럽게 끝날 수 없었다. 이 충돌은 완벽하게 무의미했다. 방사능 폐수를 바다에 버리는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가 서로 욕하고 소리치는 동안에도 폐수를 바다에 계속 신나게 버리고 있었다.

 

 

 

문어, 대게, 개복치, 해파리, 고래.

이 바다 동물들은 인간의 먹이이기도 하다.

마침 결혼해 포항에서 살게 된 정보라 작가에게 포항의 물성들은 새로운 시선을 가지게 했다.

실생활에서 접하게 된 작가적 시선으로 쓴 이 이야기들을 읽으며 환경에 대해, 노동자의 현실에 대해 이 사회가 가지고 있는 부조리와 부당함을 색다르게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색다름은 우리의 '앎'을 자꾸 건드린다.

'앎'에서 끝나지 말고 '행동'해야 하는 때라는 걸 알려준다.

 

정보라 작가가 포항에서 살 게 된 이유도 다 신이 안배해 둔 걸까?

진지한 이야기를 진지한 글이 아니라 SF의 탈을 쓰고 전달하니 그 이야기가 자꾸 새롭게 해석되고 부풀려진다.

이것은 비단 해양 생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직접적인 문제다.

다만 아직도 다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중일뿐.

 

닥쳐온 재난 앞에서

그에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지구를 오염시키는 무자비한 인간들.

그 무자비한 인간들을 단죄하지 못하고 휩쓸려 버린 사람들.

그들의 단물을 쪽쪽 빨아먹고 지들만 다른 행성으로 도망가려 하는 것들.

 

나는 내 나라가 외국자본에게 무상으로 땅을 주고, 각종 세금을 깎아주는 그런 선심을 정직하게 노동으로 먹고 살려는 자국민들을 위해 쓴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연신 생각하게 됐고.

오염수 방출을 막지 못하고 오히려 찬성하는 범죄를 범한 대가를 우리와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 고스란히 치른다고 생각하니 너무 열이 뻗친다.

 

바다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지만 그 방법을 알지 못하고

하나뿐인 바다를 어떻게 해야 지켜낼지 방법을 강구하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이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는 지금 세상이 돌아가는 행태가 어떤지를 문어, 대게, 개복치, 해파리, 고래를 통해서 보는 느낌이 들었다.

 

검은 덩어리들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주인공들을 어딘가로 데려가 똑같은 질문을 계속 해대는 상황 앞에서 무력감에 거품 물게 되고

시어머니 병실과 남편의 병실을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상황 앞에서는 돌봄에 대한 무거움을 느꼈고

좁은 수족관에 갇힌 드넓은 바다의 생물들이 입을 뻐끔 거리는 걸 보며 내가 우리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아주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과 같은 이야기를 읽었다.

그럼에도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았다.

현실의 불운과 부당함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와닿은 이유가 뭘까?

 

그 까닭을 작가 이야기를 읽으며 깨달았다.

실전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였다.

그래서 SF의 탈을 쓰고도 정확하게 느껴졌다.

 

고통의 현장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모든 것들이 이 책에 담겼다.

우리가 우리 일이 아니어서 그저 듣고 만 이야기들이 내 이야기가 되어 버리는 순간이다.

 

포항에서 또 어떤 이야기가 전해질지 기대된다.

바다에는 아주 많은 생물체가 살고 있고, 그들이 들려줄 이야기는 무한할 거 같으니 정보라 작가의 이야기는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그의 삶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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