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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연극 ㅣ 킴 스톤 시리즈 4
앤절라 마슨즈 지음, 강동혁 옮김 / 품스토리 / 2023년 11월
평점 :
사건의 답은 과거에 있었다.
킴 스톤 시리즈 4번째 이야기는 듣기만 해도 으스스한 시체 농장이 배경이다.
3편을 건너뛰었는데 3편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돌김 언니에게 핑크빛 모드가 잠깐 전개되었나 보다.
그러나 이 철벽녀 킴 스톤은 그 달달한 로맨스를 당차게 떠밀어 버린다.
독자로서는 안타깝지만 아직은 그때가 아니라는 걸 안다.
킴 스톤은 과거에서 아직도 빠져나오는 중이니까..
시체 농장은 기증받은 시체로 다양한 상황에서의 부패와 곤충들의 관계를 연구하는 법의학 연구소다.
시민들에게는 비밀에 붙여져 있지만 법의학에 있어서 귀중한 자료들을 수집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곳에 보스의 명령으로 견학을 간 킴은 다양하게 연출된 시체들 틈에서 몇 시간 전에 살해된 진짜 시체를 발견한다.
얼굴은 알아볼 수 없게 뭉개져 있고, 입속엔 흙이 가득 들어 있고, 제모가 된 여성 시체.
단서도 없고, 신원도 파악하기 힘든 와중에 또다시 시체가 발견된다!
이번엔 살아있었다. 피해자이자 목격자인 여성은 병원에 실려가서 의식을 찾지만 모든 기억을 잃어버렸다.
우리나라 같으면 지문 검색으로 누군지 알아낼 수 있겠지만 영국은 그런 시스템이 아닌가 보다.
이 부분이 엄청 답답했다. 게다가 뭔가 미국과도 다르고 우리와도 다른 경찰 시스템이 돌아가는 모습은 고구마 백 개 먹은 느낌이다.
게다가 어디서 냄새를 맡았는지 전작에서 별로 안 좋은 인연이었던 거 같은 트레이시 프로스트 기자가 한밤중에 전화해 시체 농장에 대한 이야기를 묻는다.
거기에 하나 더 미결 사건이자 킴 스톤의 담당 사건도 아닌 사건을 늘어놓으며 킴을 분노케 한다.
이런 스트레스들이 몰아칠 때 킴은 오토바이를 조립한다.
양아버지가 될 뻔했던 분의 취미였지만 킴에게도 감정을 다스리는 취미가 된 오토바이 조립.
그리고 그녀에게 동반자가 생겼다.
바니라는 이름의 반려견.
조금도 틈을 주지 않는 킴 스톤에게 생간 어마어마한 변화다.
추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지만 성폭행은 매시간, 매 분, 매초 되풀이되는 것이라고 했다.
절대 잊히지 않고 계속 되풀이되는 그 지옥 속에서 살아갈 수 없었던 사람.
치욕을 당하고 절대 잊어버릴 수 없어서 자신에게 그 치욕을 안겨준 이들을 처단하기로 마음먹은 사람.
잠깐 놀린 거라고 생각했던 가해자들은 절대 알지 못했던 그 수치심이 시간이 흘러 칼날 같은 비수로 되돌아왔을 때 가해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킴 자신의 과거도 동화책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녀는 정신병, 상실, 학대, 잔인함의 온갖 형태를 경험했다. 그 시절의 기억이 킴의 내면에 살아 있긴 했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그것들의 힘에 굴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그런 것들을 추진력으로 삼았다.
온갖 안 좋은 기억을 죄다 가지고 있는 킴.
그래서 피해자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꿰뚫고 있는 킴.
그런 이유로 가해자가 되어 버린 사람들을 용서하지 못하는 킴.
나는 그래서 킴 스톤이 좋다.
킴은 그 모진 시련을 겪고도 법의 수호자가 되었으니까.
그래서 그녀는 끈질기게 범죄를 파고든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몰아가는 게 킴의 장기다.
그런 그녀의 모자란 인간관계 대응력과 조직에서의 정치력을 메워주는 이가 바로 파트너 브라이언트이다.
사건 외에는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킴의 곁에서 그녀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브라이언트가 있어서 안심이 된다.
우디 경감이 브라이언트를 킴 곁에 두는 이유를 알 거 같다.
이번에도 몸을 사리지 않는 킴 언니.
그래서 죽음에 한 발자국 다가가게 된 킴 언니.
사건도 해결하고, 몸도 다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킴 스톤 시리즈에 애착이 가는 이유는 킴은 그 어떤 형사들 보다 피해자를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들의 아픔을 알기에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킴 스톤 같은 형사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안전하게(?) 스릴을 즐길 수 있다.
자신이 살아온 세월을 모두 잊어버린 사람조차도 킴에게서 위로를 받고,
킴을 적으로 생각했던 사람조차도 그녀에게서 믿음을 발견한다.
퉁명스럽고, 곁을 안 주고, 말도 잘 안 섞는 언니지만, 그 겉모습 안에 한없이 부드럽고, 따스한 온기를 가진 사람이라는 걸 은연중 알게 되기에 한 번 독자가 되면 계속 킴 스톤을 응원하게 된다.
보슈와 홀레에게 빠져 있으면서도 그런류의 여형사가 없어서 서운했었는데
킴 스톤이 그 자리를 삼켜버렸다.
여전히 거슬리는 표현들이 있지만 그건 아마도 킴 스톤 시리즈 전체의 분위기를 마땅하게 표현할 우리 말을 찾기 어려워서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5편이 기다려진다.